2024-04-26 00:02 (금)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1.26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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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58)
 결혼식은 영미의 시골집에서 열렸다. 영미집 마당에 병풍을 치고 둘은 마주보고 서서 주례인은 긴 쪽지를 읽어 내려가는 전통 결혼식이었다.

 결혼식이 끝나자 이내 잔치가 열렸다. 큰 결혼식이라 동네 사람들이 다 모이고 음식도 시골에서는 볼 수 없는 진귀한 음식들이었다. 모두 기분 좋게 먹고 즐기고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결혼식은 순조로웠지만 조금 이상한 것은 신랑 측 하객이 아무도 없는 것이다.

 신부 측에서는 연락이 늦어 신랑 하객들이 조금 늦게 오겠지하고 있는데 난데없이 장정 대여섯명이 몰려오더니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잔치 판을 뒤집어 놓았다.

 그 사람들은 신랑의 본부인과 따라 온 장정들이었다. 그렇다. 원래 이 신랑은 자기 고향에서 결혼해 아이가 둘이나 있는 기혼자였는데 신랑이 돈 많고 예쁜 영미와 결혼하기 위해 영미를 속인 것이었다.

 이 사실이 신랑의 시골집에서 알려지고 본부인은 장정 몇과 함께 결혼식장에 몰려와서 난동을 벌인 후 신랑을 데리고 사라져 버렸다.

 그 이후로 신랑은 다시 영미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빛나는 결혼을 꿈꿔온 영미의 꿈이 비참하게 산산조각 났고 영미는 넋을 잃고 주저 앉아 버렸다.

 한번 찾아온 비극은 그것으로 끝이 나지 않았다.

 때는 1950년 초 이승만 정부가 나라의 발전을 위해 대지주들의 토지를 소작인들에게 나눠주는 토지 계획법이 발효되자 영미의 집은 졸지에 모든 토지를 소작인들에게 내놓아야 했다. 하루 아침에 재산을 잃게 된 것이다.

 시련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됐다. 그해 6월에 북한 김일성 정부가 남침을 한 것이다. 그때는 영미는 부산에 머물렀는데, 고향에 있는 부모님이 걱정이 되어 고향 부모님에게 부산으로 피난을 오라고 전갈를 보냈지만 보모님에게서 온 답변은 “나이든 노부부를 아무리 표독스러운 공산당이라도 어떻게 하겠느냐”하는 답변만 오고 부모님은 고향에서 인민군을 맞이했다.

 부모님들의 생각은 빗나갔다. 사천군을 점령한 인민군들은 영미의 고향동네에 들이닥친 후 제일 먼저 영미 부모님을 지주 계급이라며 총살시켰버렸다. 고향 땅에 인민군들이 물러가자 영미는 부랴부랴 고향 집으로 내려갔지만 기다리는 것은 부모님이 무덤뿐이었다.

 부모를 잃고 빈집에서 울며 지내고 있는 영미에게 자기 집에서 종살이 했던 하인놈이 위로를 해준다고 집을 드나들다가 어느 날 영미를 계획적으로 겁탈했다.

 영미의 신세는 기가 막혔다. 사기 결혼에 재산도 몰수 당하고, 부모도 여의고, 게다가 종놈에게 자기 몸도 뺏기고…. 당장 죽고 싶은 생각뿐이었지만 차마 죽을 용기는 나지 않아 조용한 산속으로 들어간다.

 38. 산장의 치욕

 영미는 세상을 등질 생각으로 와룡산 기슭에 있는 한적한 절을 찾아 간다. 그러나 절간의 주지스님은 쉽게 받아 주지않았다. 신앙심으로 절로 찾아 온 불자는 승려가될 확률이 높지만 세상에 버림받고 상처받은 몸으로 절간을 찾아온 사람은 마음에 상처가 낳으면 거진 속세로 되돌아 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영미가 마음을 독하게 먹고 절간 생활을 잘하자 몇달 후에는 주지스님이 영미의 본심을 알았는지, 삭발을 시키고 승려로서 입적을 시켜 주었다.

 크지 않은 절이라 젊은 여승은 영미뿐이여서 주지스님은 영미를 절간 뒤에 있는 산장에서 기거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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