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목장을 보며
대목장을 보며
  • 김루어
  • 승인 2014.01.23 19:54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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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루어 시인

 설이 일주일가량밖에 남지 않았다. 단대목에 장을 보기보다는 조금씩 봐두는 게 나을 것 같아 점심을 먹고 집을 나섰다. 바깥 날씨는 어림한 것보다 춥지 않았다. 가볍지만 햇살까지 있었다. 그 탓인지 거리는 골목에서부터 붐볐다. 도로로 질주하는 차량들, 하나같이 두터운 입성으로 오가는 사람들로. 그런데도 내게는, 거리가 잿빛으로 느껴졌고 기분은 쓸쓸했다. 헐벗은 채 바람에 떨고 있는 가로수들 때문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들고 간 쌀을 동네 떡집에 맡겼다. 떡집은 한산했다. 안면이 있는 동년배 여주인에게 물었다. 너무 이르게 온 건가요? 여주인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요즘은 우리또래 이상이 아니면, 떡집에서 가래떡을 주문하는 주부가 없어요. 나는 어떻게 그녀를 위로해야 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녀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하지만 어쩌겠어요, 세월이 변한 탓인걸. 우리 어린 시절 이즈음이면, 마을 방앗간 앞에는 쌀을 담은 다라이들이 줄을 이었는데…
 떡집에서 나와 대형마트가 있는 도심으로 방향을 잡으며 그녀의 말을 되씹어 보았다. 그랬다, 그 시절에는 이즈음이면 마을 방앗간 앞은 장사진을 이루었다. 순서가 늦거나 가래떡을 할 형편이 못되는 집 아이들이, 먼저 떡을 뽑은 집 아이들이 김이 무럭무럭 나는 가래떡에 조청을 발라 볼이 미어지도록 삼키는 모습에, 흐르는 침샘에 바람개비를 물리고 거리를 쌩쌩 내달리는 안쓰러운, 혹은 가슴 아픈 풍경이 있기는 했지만. 지금 그런 풍경은 없어졌다, 누구나 만원 안팎이면 마트에서 한 가족 떡국은 마련할 수 있을 정도의 세월은 된 것이다.
 변한 세밑 풍경중 하나는 마을 공터다. 그 시절 이즈음에는 공터에 어김없이 박산(薄饊)장수가 나타났다. 그러면, 쌀이나 콩 옥수수 등이 든 곡물 자루를 든 부인네들이 몰려갔다. 세찬에는 강정이 있어야 하고 강정에는 박산이 필수이기 때문이다. 저만큼 대형마트가 보인다. 길을 건넌다. 그러나 생각은 여전히 그 시절에 묶여있다. 펑하고 천지가 진동하는 듯한 박산기계 터지는 소리가 나면, 공터 한편에서 팽이를 돌리거나 연을 날리던, 심지어는 마을 앞개울에서 얼음을 지치던 아이들까지 공터로 몰려와 박산장수 주변을 둘러쌌다.
 하지만, 이런 풍경들은 이제 기성세대의 기억 속에나 남아 있는 풍경이다. 마트에 들어섰다. 마트 안은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붐빈다. 카트하나를 밀며 앞사람을 따라 움직인다. 이제 주부들은 떡집에서 가래떡을 주문하지도 않고 박산을 만들러 곡물자루를 들지도 않고 조청을 고우지도 않는다, 마트에 보기 좋게 먹기 좋게 요리하기 좋게 포장된 떡국과 강정과 조청들이 얌전하게 그네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기에. 물론 아이들도 연을 날리지도 바람개비를 입에 물지도 팽이를 돌리지도 얼음을 지치지도 않는다, 그런 놀이보다 더 재미있는 컴퓨터게임과 티브이드라마와 실내스포츠가 넘쳐나기에.
 나는 설차례에 필요한 물품들을 카트에 담았다. 그 시절에 비해 세상은 더 없이 좋아졌다, 특히 아이들이나 여자들에게. 그런데, 뭔가 허전하다.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 세밑에 한정해서 말하자면, 설을 맞는 설레임과 기대ㅡ세찬을 마련하기위해 줄서던 기다림과 조자손(祖子孫) 삼세대가 함께 세찬을 만들던 과정의 설레임과 기대가 없어졌다. 모든 것이 이미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 시대에는, 자판기 앞에 코인을 들고 선 사람들뿐인 것 같다.
 이렇게 변해버린 세월이 불러온 가장 큰 문제는 세대 간에 정서적 유대감이 없어졌다는 사실이다. 아버지와 아들, 어머니와 딸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직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세대 건너인 조손세대를 이어주던 정서적 유대감은 거진 사라져 버렸다. 손자손녀의 놀이를 이해하는 조부모는 극히 드물고, 식습관은 완전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달라져 버렸다. 당신들이 어릴 때 하던 놀이와 먹거리와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점이세대인 자식 세대는 그 중간에서 조정역할을 잘 하지 못한다, 코인을 만드는데 눈코 뜰 새 없기 때문에.
 이 같은 그늘이 이 세월에 없지는 않지만, 이 시대는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 성장기에 비하면 천국이다, 경제적인 측면이나 기술문명의 측면에서는. 하지만, 노년세대들은 이런 좋은 세월을 누리지, 아니 제대로 대접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당신들이 이런 세상을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 기르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종족보존, 자기보존본능이다. 다른 말로하면, 본인은 사라져도 후손에게 자신의 편린이나마 기억되고 싶어서이다. 그런데, 이 세월의 노년세대는 본인이 사라지기도 전에 후손들에게 외면당하고 심하면 매도당하기까지 한다.
 억울하지만 노년세대는 자신을 방어하고 변호할 힘이 없다, 육체적으로 쇠미해졌기 때문만이 아니라 뒷 세대에게 가진 모든 것을 줘버려 사회적인 힘이 없기 때문에. 하지만, 뒷 세대는 이를 과오의 인정으로 착각한다. 자식세대는 그나마 온정적이다, 일정기간 공유한 세월이 있었고 힘을 물려받았기 때문인지. 하지만 그 다음 세대, 즉 손자세대는 핏줄을 이었음에도, 정서적 유대감은 없는, 이들 양 세 대간에는 깊고 넓은 강이 있다, 다리가 없으면 건널 수가 없는 강이. 추석이나 설 같은 명절은, 비록 풍경이 변하긴했지만, 자식세대가 다리의 역할을 하도록 우리 선조들이 천년도 이전에 미리 안배해놓은 축제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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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지 2014-02-03 17:08:40
건강하세요

임종관 2014-01-26 20:57:20
시인님의 글을 읽노라니 어린시절의 추억이 새록 새록 떠 오릅니다
방앗간의 모습이며,딱딱한 가래떡을 난로 위에 놓고 구워 먹으며 겨울밤을 이야기 꽃을 피우며 놀앗던 기억이....ㅎ

이서윤 2014-01-26 00:32:57
어머니 심부름으로 방앗간에 맡겨둔 가래떡의 순서가 어디쯤인지 서너번을 뛰어 다니며 어머니께 알려드린 기억, 잊고 있었던 어린 설을 선생님의 글로 떠올립니다
수증기와 사각 떡판들의 층층탑, 찐떡을 틀에 넣으면 신기하게 마구 뱉아내는 기계, 옆에는 방망이로 쌀을 퉁퉁털어내는 소리,
글을 읽는 저는 미소가 번집니다
어린 저와 젊은 어머니 모습에...
이 얘기를 저의 아이들에게 해줘야겠습니다

설 잘 보내십시오^^

강대선 2014-01-25 19:01:35
대목장에 보았던 풍경들이 생각납니다..

만남과 만남..소리와 소리가 풍성했던 날들..

정말 봄이 오려나 봅니다..

이렇게 비가 내리고 있으니요.

강대선 2014-01-24 12:38:22
세대를 이어주는 다리가 사라져가고 있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예전보다 더 많이 외로워하고
고독해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같이 얼굴을 맞대고 음식을 먹어야 정이 든다는데
함께 하는 것들이 많이 사라져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지금이라도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봐야겠습니다.
윷놀이도 다시 꺼내어
가족이 모여 놀이도 하고
사라졌던 웃음도 다시 꺼내어 놔야겠습니다.
좋은 글에 따뜻해지는 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