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14:51 (금)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1.15 22: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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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51)
 32. 세월은 약이 되어…

 세월은 쏜 화살 같다. 그 사건은 이제 56년 이 지난 옛날 이야기로 변했다. 2000년 이후 내가 자주 타고 다니는 비행기 회사가 서울 노선이 없어지기 전 나는 서울에서 삼천포로 내려올 때는 늘 비행기를 이용했다. 마중 나온 친구의 자가용을 타고 삼천포 시내로 들어 갈적에는 사천, 사남, 용현을 지나 남양까지 오면 진삼 도로에서 포도밭 사이로 빠지는 샛길로 바닷가 관광 도로로 빠진다. 이 길은 옛날 내가 이모 집에 간다고 오솔길을 택한 음산하고 한적한 비포장길 그 길이지만 지금은 아스팔트로 길을 넓혀 차가 마음껏 달릴 수 있는 관광 도로로 변해 있다.

 이 길을 차를 타고 달리면 옆으로 조용한 바다가 펼쳐지고 바다 뒤로는 병풍 같은 섬들이 바다를 에워싸고 있다. 그 반대쪽 찻길에는 울창한 나무들이 바람을 일으켜 승용차 안의 손님들을 시원하게 맞이한다.

 이 도로 중간쯤 가면 최고의 풍치가 펼쳐지고 그 아래로 깨끗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게 보인다. 나환자들이 모여 살던 바로 그곳이다.

 나는 친구더러 “아직도 나환자들이 살고 있느냐”고 물으니 친구 대답이 아직도 그들이 그곳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또 나는 “경치가 너무 좋은데 저곳에서 호텔이나 위락시설을 만들어 영업을 하면 잘되겠다”고 했더니 친구는 “안 그래도 어떤 회사에서 이들 모두 이주시키고 호텔을 세우려 했지만 나환자들이 거절했다”고 한다.

 참 세월은 무상하다. 옛날에는 갈 곳이 없어 참고 살았는데 세월이 흐른 지금은 더 좋은 곳으로 가라고 해도 이곳이 좋단다. 왜 그럴까? 오랜 세월 살다보니 정들어 그럴까… 아니면 경치가 좋아 그럴까… 그 옛날 부모들의 원이 맺혀 그럴까. 당시의 아픈 기억은 잊은 듯 아직도 그때 그자리에 자녀들이 이어 살고 있다.

 33. 영어 선생에게 찍힌 학생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이야기이다. 삼천포에는 공부 잘하는 청년이 있어 칭찬이 자자 했다. 이 청년은 고등 고시에 1차 합격도 했고 참 성실했다. 그런 분이 우리 골목대장 팀의 일원인 태호의 누나와 결혼을 하게 되었다. 태호 집은 우리 집 옆 옆집의 골목 안에 있는데 아버지가 전기 공사를 하며 생활하는 가족이다. 결혼식 날 태호 집에서 잔치가 벌어져 마당에는 상이 차려지고, 5개가 넘는 상 주위로 수십 명의 손님이 술이랑 음식을 즐기며 시시덕거리고 있었다.

 호기심 많은 나는 태호 집에 들어가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다니다가 어느 한 곳을 들어가게 됐다. 그곳은 내가 손을 뻗으면 겨우 닿을까 하는 높이의 두꺼운 종이로 만든 칸막이가 쳐 있었다. 그리고 굉장히 어두웠는데 칸막이 넘어는 환한 불이 켜져 있어 신비스러웠다.

 그래서 나는 칸막이 너머 환한 곳은 어떤 일이 있는지 궁금해 옆에 있는 의자를 놓고 올라가서 칸막이 너머를 보았다.

 칸막이 너머 맞은편에는 사진사가 카메라를 가지고 사진을 찍으려 하고 칸막이 앞, 바로 나의 턱 아래에는 신랑과 신부가 나란히 서 있었다. 결혼사진을 찍는 중이었다.

 나는 잠시 이 사진 찍는 것을 구경하고 의자에 내려와서 태호 집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며칠 후 우리 골목대장 팀은 놀기 위해 모였는데 태호가 나에게 하는 말이 “형, 우리 누나 결혼사진에 형 얼굴이 찍혔어”하는게 아닌가. 남의 귀한 결혼사진에 동네 개구쟁이 얼굴이 박히다니. 태호의 매형이 나에게 달려와 사진을 망쳤다고 야단을 칠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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