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04:00 (금)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1.14 20: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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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50)
 31. 사건의 진상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자료를 수집해 사건의 진상을 대충 간추려 써보기로 한다. 나환자들이 사는 곳의 명칭은 ‘애양원’이었다. 그 당시 애양원 주민들은 300여 명이 살고 있었다. 이들의 거주지는 물도 제대로 나오지 않고 토지도 충분치 않아 불편했다. 그래서 바다 건너에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개척한 과수원이 있는 ‘비토’라는 섬이 있는데 이 섬은 국토로 애양원 주민들이 이 섬을 개간할 계획을 세워 나라에 허가를 내놨다.

 그 후 어느 날 100여 명의 청년, 소년, 아녀자들이 비토섬으로 출발한다. 그날은 축제 분위기였다.

 이 애양원 사람들은 비토섬에 들어가 천막을 치고 기거하면서 섬 개간을 시작했지만, 곧바로 문제가 생겼다.

 섬의 원주민들이 123가구 815명이 어업과 농업을 하면서 살고 있었고 이들은 나라에 지원을 받아 굴 양식도 하고 있었는데, 이 주민들의 생각은 나환자들이 비토섬에 거주하게 되면 자기들 건강도 문제이지만 더욱 피해는 양식한 굴 판매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는 계산을 하고 관청에 진정서를 넣었다.

 그뿐 아니라 비토섬 주민들은 노골적으로 철수하라고 경고를 했다. 또 관청에서도 개간 허가를 취소하고 비토섬을 떠나라는 통보를 내렸다. 그러나 애양원 사람들은 자기들이 개간한 땅이 아까워 차일피일하자 비토섬 원주민들은 독촉을 하고 그 과정에서 충돌이 생겼다.

 참다 못한 비토섬 주민들은 인근 섬 주민들과 합세해 대낮에 대창과 낫, 괭이들로 무장해 100여 명의 애양원 사람들을 습격했다.

 닥치는 대로 찌르고 때렸다. 천막 안으로 도망가는 사람이 있으면 천막에 불을 지르고, 불을 피해 나오는 사람을 그대로 찔러 죽였다. 바다로 도망가는 사람들은 배를 타고 추격해 바다에서 죽였다. 그 자리에서 26명을 살해하고 56명을 중경상을 입혔다.

 애양원 주민 총 300명 중 사상자가 90명이 넘고 90명이 거의 청년층인 것을 간주하면 애양원 자체가 풍비박산 난 격이다.

 천인공노할 참사였다. 참사가 끝나갈 무렵에 경찰들이 들이닥치자 섬 주민들은 도망치고 사건은 끝이 났다.

 엄청난 참사였지만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미비했다. 5명에게 징역 3년, 6명에게 징역 2년, 32명에게 집행유예를 내렸지만, 2심에서는 형량이 가벼워지고 또 실제 형을 산 것은 더 줄어들었다. 그리고 경찰서장의 해임 정도로 사건이 마무리됐다.

 이제는 피부로 느껴지지 않고 전설로만 들려지는 이 사건은 대한만국 땅에서 벌어진 잊지 말아야 할 사건이다.

 ‘피이이리- 피이리리- ’

 보리피리 소리. 나는 그 소리가 아직 잊히지 않는다. 이제는 전설로만 전해져 내려오는 그들만의 슬프고 원통하고 분한 통곡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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