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20:30 (금)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1.12 20: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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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48)
 30. 지혜로운 흥정

 그러다가 황혼 다방집 아들 영환이가 토끼 키우는 법을 가르쳐줘 나는 할머니 집에서 새끼 토끼 암수 두 마리를 사서 키웠다.

 일 년 가까이 키웠을 때 새끼는 자라 어미가 되었고 새끼 4마리를 낳았다. 나는 돈이 필요했는지 아니면 키우기 싫어서 그랬는지 잘 생각이 나지 않지만 삼천포 장날에 토끼가 사는 사과 상자를 들고 시장으로 나갔다. 나는 시장 한쪽에 자리를 잡고 토끼 상자를 앞에 놓고 팔려고 하는데, 사는 사람도 드물고 또 내가 원하는 가격을 주겠다는 사람도 없었다.

 한 시간쯤 있었을까. 그때 토끼를 사겠다는 아주머니 한 분이 나에게 가격을 물어봤다.

 나는 고개를 들고 그 아주머니 얼굴을 보는 순간 기겁을 했다. 나환자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나는 곧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아주머니와 흥정을 하기 시작했다.

 그때의 흥정 가격은 얼마였는지 지금은 정확히 알 수가 없고 또 그때의 지폐 가치로는 실감이 나지 않으니 편한대로 지금의 지폐 단위로 흥정을 한 것으로 해보겠다.

 아주머니 “학생 토끼 모두 얼마니.”

 나 “어미 새끼 모두 5만 원인데요.”

 아주머니 “4만 원으로 안되겠니.”

 나는 속으로는 4만 원이면 됐다고 쾌재를 부르면서도 “아주머니 안됩니다. 키우느라 얼마나 고생했는데요. 4만 5천원은 주셔야 해요.”

 아주머니 “4만 5천원은 비싸구나. 4만 원이면 사겠는데…”

 아주머니에게 5천원을 어떻게 더 받아낼까 생각하다가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것은 ‘토끼가 든 사과상자까지 주고 값을 올려보자!’였다. 실은 토끼가 팔리면 나에게는 상자는 필요가 없어 버려야 할 형편이었다.

 그래서 아주머니에게 “그럼 상자까지 드릴 테니 4만 5천원 주셔요. 이 토끼 상자 얼마나 좋은데요. 토끼도 제집이 좋지 집이 바뀌면 안 좋아요”라고 말했다.

 그 말이 먹혔는지 아주머니는 활짝 웃더니 “그래. 토끼 상자까지 준다면 좋아”하시면서 주머니에서 4만 5천원을 꺼내 나에게 주시고는 토끼가 든 사과 상자를 머리에 이고 사람들 사이로 묻어 사라졌다. 4만 5천원의 거금을 움쳐진 나는, 잔꾀에 속아 5천원을 더 주고 산 아주머니가 미안하기도, 고맙기도 했다.

 그러나 그 아주머니 입장에서는 내 말대로 다시 토끼장을 만드려면 또 돈이 들텐데, 5천원 더 준다고 손해볼 것 없는 일이었다.

 또 어린 학생이 키우던 토끼를 파는데 제값보다 싸게 팔았지, 바싸게 판것은 아닐테니 바가지를 썼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나 그 아주머니에게 둘 다 이익되는 흥정이었다. 지금 돈의 가치로 4만 5천원은 중학교 1학년에게는 큰 돈인데다 풍족하지는 않지만 자식이 번 돈을 바라는 집은 아니라, 어머니에게 나눠 줬을 리가 만무하니 혼자 그 돈을 나 혼자 다 썼을텐데. 어디다 썼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 당시 나는 용돈이 생기면 골목대장 패들 몇 명을 불러 단팥죽 젠샤이 사 먹거나 서점에 가서 두꺼운 고급 만화책을 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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