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12 19:12 (금)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인생만화경(人生漫畵鏡)
  • 최경탄
  • 승인 2014.01.09 20: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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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삼천포 시절(47)
 괭이를 들고 밭일을 하는 농부는 얼굴에 흰 천이 감겨있었는데 그 흰 천에는 이상한 물이 흘러내리고 있었고 또 괭이를 잡은 양손은 붕대를 감았는데 손가락도 보이지 않았다.

 영락없는 나병 환자였다. 소문으로만 듣던 그들의 은둔지가 바로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외진 오솔길을 혼자 걸으면서 잔뜩 무서움에 움츠려있었는데… 정말 낭패다. 머리털이 오싹하고 하늘로 솟았다.

 저 문둥이는 나를 보면 잡아먹을 것도 같고 또 병균이 바람을 타고 와서 나도 병에 걸릴 것 같았다. 뒤로 도망가려니 30분이나 걸어온 것이 아깝기만 했다. 그래서 그 앞을 살금살금 고양이 발걸음으로 지나갔다. 농부 앞을 지난 나는 그때부터는 불이 나게 앞만 보고 도망쳤다.

 그 나병 환자는 한참을 물끄러미 쳐다볼 뿐 나를 따라오지는 않았다. 나는 몸에 땀이 범벅이 된 채로 그곳을 빠져나왔다. 나는 그렇게 어렵게 이모 집에 도착했다.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된 나는 당시 그 나병 환자 입장에서 본다면 자기 신세가 얼마나 서글펐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기는 아무 생각 없이 밭일만 하고 있는데 어떤 소년이 자기 앞을 지나다가 자기를 보고 아이는 자기가 잡아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자기 병이 옮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살금살금 걸어 자기 앞을 지난 후 급하게 도망치는 모습을 보고 얼마나 자기 처치가 비참해 했겠는가 하고….

 지금은 우스운 해프닝이지만 그때 일은 나에게는 일생일대의 위기였고 그 아저씨에게는 자기 처지로 인해 비통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나병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한 가지는 심하게 발병해 온몸에서 이상한 물이 나오고 한다. 그리고 한 가지는 병이 완치된 환자들이다. 그런 환자들은 이상한 물이 나오지는 않지만 몸에는 병이 들었던 흔적이 남아있다.

 삼천포 시내에 5일마다 다가오는 장날이 되면 인근 면의 사람들이 다 모이는데 이들 중에는 실안에 은둔해 사는 나병 환자들도 가끔 보인다. 그들은 눈썹이 없고 손은 말라 어그러져 있고 얼굴 피부가 쭈글쭈글해 언뜻 봐도 나병 환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삼천포 시내 점포마다 다니면서 물건을 팔기도 하고,또 시장에 가서 물건을 사고 팔기도 했다. 그리고 종종 우리 집 점포에 물건을 팔러오는 나병 환자도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마음씨 좋은 아버지는 자주 물건을 사주시고는 하셨다.

 또 우리 집 앞으로 나병 환자들이 자주 지나다녔는데, 그들 중에 키가 크고 검은 안경을 쓰고 다니는 멋쟁이 아저씨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 아저씨가 닭을 키워 팔아 부자라고 했다. 그들은 삼천포 시내로 오게 되면 자연스럽게 사람들과 거래를 하기 위해 접촉을 하는 데 사람들은 그들을 좋게 대할 때는 ‘문상’이라고 부르고 기분이 나쁠 때는 ‘문디’라고 불렀다. 우리 집은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작은 집으로 이사 와서 살게 되면서 어머니는 계속 아이를 낳아 이제 여동생들이 4명이나 되었다.

 그래서 집이 좁아 나와 형은 저녁밥을 먹으면 300m 정도 떨어져 있는 할머니 집으로 가서 잠을 자고,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우리 집으로 와서 아침을 먹고 학교로 가고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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