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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산책로에서
겨울 산책로에서
  • 김루어
  • 승인 2014.01.09 20:18
  •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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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루어 시인
 한겨울이지만 지난 며칠 동안 초봄을 연상시키리만큼 포근하던 날씨가 어제 오늘 들어 갑자기 추워져 겨울의 본색을 드러냈다. 일부지방에서는 눈까지 내린다고 한다. 하지만 내 산책 시정(時程)이 날씨 따위에 영향을 받을 수는 없다. 몸이 약해 잔병이 많은 내가 그나마 건강을 유지하는 최소한의 운동이기 때문이다. 내 일과는 대개 여섯시 전후로 끝난다. 그 시간이 되면 나는 책상 앞에서 일어나 패딩코트를 걸치고 밖으로 나간다.
 밖은 이미 어둡다. 겨울 저녁 여섯시면 벌써 밤이다. 그러나 도리가 없다, 시간이 이렇게밖에 나지 않기 때문이다. 언제나처럼 산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집주위에 녹지가 있다는 것은 도시인으로서는 행운에 가깝다, 더군다나 그 녹지가 ‘녹’의 진원(震源)인 산(山)일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높고 낮은 고만 고만한 크기의 주택가 골목을 한동안 걷는다. 주택들 창에서 나오는 불빛들이 다숩다, 아마, 추워진 날씨로 스산할 만큼 거리에 인적이 드문 탓이리라.
 주택가 끝자락에 있는 작은 공원을 지나 길을 건너면 산으로 가는 입구다. 산길로 들어서자 인적은 끊어졌다. 다만 어둠속에 구불구불하게 이어질뿐인, 양옆으로 나무들만 도열(堵列)해 있는 산길. 하지만, 나는 이 길을 사랑한다. 처음에는 이 길이 무서웠다. 여름에는 제법 산책인들이 있었지만, 봄이나 가을, 특히 겨울 이 시간이면 인적이 드물거나 아주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행히, 시골산길과는 달리, 드문드문 선 가로등이 위안이 되어 주었다.
 그런데 묘하게도 산길을 걸어가다 보면, 이런 두려움은 이내 사라진다. 양옆에 늘어선 나무들이 든든한 벗들처럼 나를 지켜준다는 느낌이 들어서이다. 소나무, 상수리나무, 벚나무, 산사나무, 노각나무, 이팝나무… 하나같이 정겨운 유년의 동무들 같은 이름을 가진 나무들; 이들의 이름을 뇌이다 보면, 나 또한 전생에서는 이들처럼 정겨운 어느 이름으로 불리던 나무였을지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래서인지, 나무들이 나와 무관한 타자(他者)같지가 않다.
 그런데, 이들 나무들이 소나무나 전나무 같은 몇몇 상록수를 제외하고는 잎을 다 떨어뜨리고 맨살을 드러내고 있다. 겨울이기 때문이다. 산길을 따라 계속 올라가다 작은 대숲에 있는 바위에 앉아 잠시 쉬기로 한다, 고질이 된 무릎 때문에. 바람에 서걱이는 대숲을 올려다본다. 한겨울인데도 대는 여름처럼 푸르름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문득 상록인 잎을 가진 나무는 겨울이 춥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대를 나무로 분류할 수 있을지는 논란이 있겠지만.
 나무를 품평할 때 사람들은 늘 푸른 소나무나 잣나무 따위를 앞자리에 두고는 한다. 이 기준은 겨울에도 푸름을 유지하느냐의 여부에 두어져 있다. 대나무가 포함된 세한삼우 따위의 평가도 이런 사고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이런 평가 기준의 전거는 아마도 논어에 있는 歲寒然後知松栢之後凋라는 말일 터이다. 세상에는 이 구절이 ‘세밑이 되어 다른 나무가 다 시든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한 겨울에도) 푸른 것을 알게 된다’ 로 번역 유통되고 있다.
 이렇게 유통되는 것은 소가 웃을 일이고 저작권자인 공자가 눈살을 찌푸릴 번역이다. 정확한 번역은 ‘세밑이 되어서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더디 시드는 것을 알게 된다’ 이다. 더디 시드는 것과 겨울에도 푸른 것은 뜻 차이가 엄연하다. 어쩌면, 소나무를 비롯한 상록수는 겨울에도 푸르지 않느냐, 고 반문하는 이가 있을 수 있겠다. 그런데, 그렇지가 않음을 식물학자들이 보증하고 있다: 상록수로 대표되는 소나무도 2년째에는 그 잎이 시들고 떨어짐을.
 내가 번역한대로 하면, 논어에 전거하여 이조 이래 현대에 이르기까지 소위 선비라는 자들, 또는 학자라는 자들이 인간가치를 재단하는 척도 가운데 하나로 제시한 기준에 혼란이 올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절개나 의리, 믿음 등을 지고한 가치로 강조하기 위하여 공자 말을 금과옥조로 인용한 경우에는. 하지만 이는 내 탓이 아니다, 나는 바르게 번역했기에. 더구나 공자 탓도 아니다. 왜냐하면, 공자는 진실을 말했는데 저들이 자의적으로 왜곡했기에.
 내가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기성가치를 전복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성인 말씀에 대한 풀이나 적용을 자의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이다. 상징대상이 된 나무로 돌아가 말하자면, 나무에 고상과 비천이 있어 겨울에 잎이 유지되거나 지는 것이 아니라 역할에 차이가 있어서라는 말이 된다. 부연하면, 소나무는 겨울에 푸르러 고상하고 가시나무는 겨울에 가시밖에 없어 비천하다고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말! 전나무는 전나무의 역할로 겨울에 미덥고 이팝나무는 이팝나무의 역할로 여름을 꽃피워 그 역할에 귀천은 없다는 뜻! 하여, 이를 우리인간에게 적용하여도 그 철리(哲理)는 동일할수밖에 없다는 대요(大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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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루어 2014-01-16 21:06:17
폐일언하고 단도직입합니다. 님은 의역과 오역을 혼동하고 있군요. 의역이란 원문의 뜻이 상하지 않는 범위안이어야 합니다. 원문의 뜻이 상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은 제 글을 제대로 독해했다면 충분히 납득할수 있을 것이고 그래도 납득이 되지 않는다면 귀하는 불순한 의도로 댓글을 달았거나 독해능력부족입니다. 도와주는 뜻에서 번역을 다시 한번 설명하지요.

김루어 2014-01-16 21:04:40
혹시, 論語集註라고 아시나요. 설명해드리자면, 논어집주는 유교사회인 조선시대에, 論語에 관한한 가장 권위있는 해설서로 성리학의 개산조 가운데 한사람인 朱熹가 논어에 주를 단 저술입니다. 그 논어집주 언해본이 조선시대 서당이나 향교 서원에서 생도들에게 읽혔습니다

김루어 2014-01-16 21:02:35
그 언해본을 그대로 옮겨 봅니다(신문지면이 한글 고어 아래 아를 지원하지 않아, 아래아는 끝에 아를 제외하고는 전부 고어 아래아를 ㅏ로 바꾼 것입니다. 되에 ㅗ도 아래아입니다)

子曰 歲寒然後에 知松栢之後凋也니라

子 갈아샤되 歲寒한 然後에 松栢의 後에 凋하난쥴을 아나니라.

김루어 2014-01-16 21:01:23
더 설명이 필요치 않겠지요? 언해를 현대어로 옮겨 드리는 친절까지는 베풀 생각은 저 또한 없습니다. 왜냐하면, 귀하가 단 방약무레한 멘트 때문입니다. 공부좀 하시고 글을 올리시는 것이 좋겠습니다<ㅡ한문을 얼마나 하셨기에 이런 멘트를 답니까?

김루어 2014-01-16 20:59:50
그런데, 한문을 제대로 공부하신 분이 닉을 千里駒가 아니라 千里馬라고 씁니까? 千里駒가 더 한문다운 말이라는 것쯤은 아실텐데? 물론, 천리마가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일부사전에는 올라 있지 않답니다. 왜냐하면, 駒자를 모르는 무식한 사람들이 자주 써서 단어화된 말이어서 마지못해 올려진 탓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