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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탐험가 도용복 ‘땅끝을 가다’ - 쿠바2
오지탐험가 도용복 ‘땅끝을 가다’ - 쿠바2
  • 도용복
  • 승인 2013.12.26 21: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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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코히마르 ‘낭만 가득’
▲ 노인과 바다의 배경이 된 코히마르는 고요하고 평화로운 곳이다.
헤밍웨이, 한적한 어촌마을서 ‘노인과 바다’ 영감 떠올려

 세멘테리오 꼴롱 묘지의 가운데쯤에 쿠바의 초대 대통령 세스페데스의 묘지가 있다. 그런데 그 바로 옆에 대통령 묘비보다 훨씬 높고 더 화려한 묘지가 있다. 이 묘지의 주인공의 이야기가 재미있다.

 바로 미국의 대문호 헤밍웨이와 관련이 있는 인물이다. 1950년대 초는 헤밍웨이의 전성시대였다. ‘노인과 바다’로 53년에 퓰리처상을 받고 이듬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헤밍웨이는 툭하면 플로리다에서 쿠바 별장으로 갔다. 쿠바에서 작품 활동을 하던 헤밍웨이의 단골 술집이 아바나에 있는데 그곳이 ‘플로리디따’라는 바였다.

 헤밍웨이는 이 바의 구석자리에 자주 앉아서, 자신이 낚았던 고기 자랑을 하며 칵테일을 마시곤 했다. 흑인 바텐더는 헤밍웨이를 위해 칵테일 ‘다이끼리’(Daiquiris)를 만들곤 했다.

 항상 같은 자리에 앉아서 술을 마시곤 했는데, 그곳의 늙은 흑인 바텐더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술을 마셨다. 이 흑인 바텐더는 헤밍웨이를 위해 새로운 칵테일을 하나 개발했다. 그게 바로 다이키리이다. 우리나라의 칵테일 바에도 다이키리라는 칵테일이 있다. 얼음을 갈아 만든 빙설에 럼과 사탕수수 즙, 레몬을 넣고 만든 이 칵테일을 맛본 헤밍웨이는 그때부터 다이키리만 마셨다.

▲ 플로리디따 바의 벽면엔 헤밍웨이의 글씨와 사진 액자가 벽에 걸려 있다.
 이것이 소문이 나자 돈 많은 미국 관광객이 쿠바의 플로리디따 바에서 다이키리 한 잔을 마셔보지 못했다면 쿠바 여행을 했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이 바는 미국인 부호들이 줄을 섰다.

 사람들은 모두 다이키리를 개발한 흑인 노인이 직접 만든 다이키리를 마시려고 했고, 바 주인보다 가난한 흑인 바텐더가 더 많은 돈을 벌게 됐다. 다이키리 한 잔 값은 50센트였지만 팁으로 열 배, 스무 배의 돈을 번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흑인 바텐더가 플로리디따 바를 사고 그 옆에 딸린 식당까지 사버렸다. 꼴롱 공동묘지의 대통령 묘 옆에 있는 크고 화려한 묘의 주인이 바로 이 흑인 바텐더의 묘이다.

 쿠바에 가면 꼭 가보리라 마음 먹었었던 플로리디따는 분홍빛 단층의 아담한 건물이었다. 외벽의 간판에는 헤밍웨이가 좋아했던 곳, 다이끼리의 원조라는 글이 부착돼 있다. 바는 중앙에 카운터가 있고, ㄷ자 모양의 공간에 몇 개의 테이블들이 놓여 있다. 집기들은 헤밍웨이가 살던 당시 그대로라고 한다. 한쪽의 구석에 바에 앉아있는 헤밍웨이의 동상이 있고, 안쪽의 두 벽면에는 헤밍웨이 관련 사진들 수십 장이 게시돼 있다.

▲ 코히마르에 있는 헤밍웨이의 흉상.
 시간이 늦어 손님은 많지 않았고, 밴드의 재즈 공연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헤밍웨이가 즐겨 마셨다던 다이끼리 한 잔을 마시면서 쿠바를 사랑했던 미국의 대문호가 된 양 분위기에 취해 본다. 연주하던 노래가 끝이 나자 재즈 밴드의 공연이 끝났는지 악기를 주섬주섬 정리를 하기에 염치 불구하고 ‘라쿠카라차’를 청했다. 영어도 잘하지 못하는 검은 머리 동양인의 ‘라쿠카라차! 플리즈~’ 단 두 마디에 다시 악기를 꺼내 연주를 시작한다. 헤밍웨이가 쿠바를 사랑했던 것은 쿠바의 아름다운 자연이나 다이끼리가 아니라 이들처럼 음악을 사랑하고 흥이 있는 쿠바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쿠바를 얘기할 때 헤밍웨이를 빼놓고 얘기할 수 없을 만큼 쿠바 곳곳에는 헤밍웨이의 흔적으로 넘친다. 아바나 동쪽으로 가면 작은 어촌, 코히마르가 있다. 작고 조용했던 해변 코히마르는 유명세를 타면서 커플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됐지만 원래는 헤밍웨이가 낚시를 즐겼던 곳이다. 이 마을에 들어섰을 때의 느낌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고요’이다. 청록을 뽐내고 있는 나무길이 있는 마을을 지나면 확 트인 자연 빛깔의 때 묻지 않은 바다가 눈에 찬다. 헤밍웨이는 이곳에 서서 낚시도 하고 가끔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기도 했는데, 이 코히마르의 평화로운 풍경을 보며, 노인과 바다라는 작품의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이렇게 고요하고 아름다움이 있는 곳이기에 헤밍웨이에게 수많은 영감과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게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옛날 등대였을 법한 성곽은 어림 보아도 몇십 년의 자취를 실감한다. 이곳은 옛날부터 해안 경계를 하는 군사시설이었다고 한다.

▲ 아바나에서는 어디를 가나 신나는 연주를 들을 수 있다.
 헤밍웨이는 1930년대부터 쿠바 혁명이 일어난 다음 해인 1960까지 쿠바에서 작품활동을 했다. 그 때 묵었던 호텔이나 식당이 잘 보존돼 있고, 헤밍웨이가 살던 집은 박물관으로 만들어져 있다. 박물관에는 사슴, 표범가죽, 호랑이 얼굴 등 집안 곳곳에 그의 취미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데 헤밍웨이는 낚시와 함께 사냥도 무척 즐겼다고 한다. 또 대문호답게 밥 먹는 식당만 빼고는 그 어떤 방을 가도 온통 책으로 가득 차 있다.

 3층으로 올라가면 언제나 유유자적 놀기 좋아했던 헤밍웨이가 좋아했던 전망 좋은 방도 있다. 미국의 작가가 지금은 대표적인 반미국가인 쿠바의 중요한 관광자원이 돼 있어 이것도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아바나의 하늘에 노을이 지고 낭만적인 밤이 찾아오면 낮과는 또 다른 매력을 볼 수 있다. 밤이 되자 카페는 더욱 활기가 넘친다. 거리도 춤을 추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열정적인 아바나의 밤이다. 가게뿐 아니라 거리 어디를 가나 신나는 연주를 들을 수 있다. 아바나의 밤이 깊어질수록 아바나는 점점 춤과 함께 뜨거워진다.

 아바나엔 다양한 공연을 볼 수 있는 카페가 많고 플라멩고부터 클래식 연주까지 취향대로 골라서 갈 수 있다. 쿠바의 낮과 밤을 겪어 보면 헤밍웨이가 사랑한 나라 쿠바, 춤과 음악의 뜨거운 열정이 끓는 나라 쿠바를 왜 카리브해의 진주라 부르는지 제대로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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