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이 새길 `마지막 잎새`
정치인이 새길 `마지막 잎새`
  • 박태홍
  • 승인 2013.12.16 21: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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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 태 홍 본사 회장
 유난스레 말도 많고 탈도 많은 2013년이었는가 보다.

 정치적으로도 그랬고 문명의 이기가 발달하면서 세상만사 모두가 그랬던 것 같다. 그래도 세월은 흐른다.

 2013년 12월 달력 한 장을 달랑 남겨두고 있다. 그것도 반이나 지났다.

 마지막 한 장 남은 달력을 보면서 필자는 오헨리 원작의 `마지막 잎새`란 단편소설이 문득 떠올랐다. 마지막 잎새의 대강 중거리는 다음과 같다. 존시와 수 그리고 버먼이 주요 등장 인물인 마지막 잎새.

 이들은 가난한 예술가들이고 한 마을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존시와 수는 공동작업실에서 함께 일했고 존시는 폐렴에 걸린 환자였다. 존시는 점점 쇠약해졌고 살 수 있는 가망은 열에 하나쯤이라고 의사는 말한다.

 그것도 뭔가 의욕이 있어야 존시의 수명을 연장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어느날 존시는 창문 밖 담쟁이 넝쿨에 붙어있는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면 자신도 죽을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수는 그런 그녀에게 삶의 의욕을 갖도록 위로한다.

 그러나 존시는 수의 위로를 달갑게 받아들이지 않고 생을 체념하듯 한다. 이럴즈음 수는 실패한 늙은 화가 버먼을 우연찮게 만나게 되고 폐렴에 걸린 존시의 사정을 얘기한다.

 버먼은 존시의 사정을 수로부터 이야기 듣고는 눈물까지 흘리며 존시를 동정하기에 이른다.

 비가 몹시도 많이 내린날 밤, 존시는 마지막 잎새가 떨어질 것이고 자신도 죽게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음날이 돼도 마지막 한 장 남은 잎새는 떨어지지 않았다. 존시는 잎새가 떨어지면 죽으려 했던 것은 죄악이라는 것을 깨닫고 삶에 의욕을 되찾는다.

 마지막 잎새는 계속 창가의 덩쿨나무에 붙어 있었고 존시는 점점 회복되면서 나중에는 완쾌하게 된다. 그러던 날 수는 존시에게 버먼이 죽었다는 말을 한다.

 버먼은 마지막 잎새가 떨어진 것을 보고 그 잎새를 밤새 그려 넣은 것이었다. 버먼은 걸작을 남기고 떠난 것이었다.

 버먼은 평범한 늙은 화가였다. 자신이 그린 그림을 팔아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고 남은 돈으로 술을 사다 마시는 그런 정도의 화가였다. 그러나 존시의 절박함을 알고 그린 마지막 잎새는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걸작품이 된 것이다. 한 생명을 살려보겠다는 열정과 절박함이 명작을 남기고 자신은 죽은 것이다.

 어느 누구든지 자신이 굳게 믿고 있는 생각이나 신념은 바꾸기가 어렵다.

 그러나 존시는 자신도 모르게 그려진 마지막 잎새와 눈맞춤하며 생명의 불꽃을 지펴나가 결국에는 완쾌하기까지 끈질긴 생명력을 보인다.

 이 책이 시사하는 바는 주인공 개개인의 성격 및 사고 등을 여러 측면에서 느낄 수 있다. 병든 존시의 생각 즉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면 죽을 것이다란 사실을 안 버먼의 절박함과 열정이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명작을 남겼다는 것 외에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평범한 늙은 화가 버먼은 병든 존시를 위해 죽을 힘을 다해 떨어진 잎새를 그 자리에 그대로 그려넣고 자신은 죽어간 것이다. 이 얼마나 순애보적인 스토리인가?

 2013년을 보름여 남겨둔 작금의 현실에 이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 모두가 마지막 잎새의 줄거리를 한번쯤 생각해 봤으면 싶다.

 특히 이 나라를 이끌어가고 있는 여ㆍ야 정치인 모두는 얼마 남지 않은 2013년 이지만 버먼과 같은 절박한 심정과 열정으로 아직도 풀지 못한 난제들을 소통과 화합으로 풀어나갔으면 한다.

 `궁하면 통한다`는 옛말이 있지 않은가? 그리해 다가오는 2014년은 더욱 성숙된 정치로 국민들을 말도 탈도 없는 편안한 세상에서 살 수 있도록 해주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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