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진 서강 주지 구국탑불사해 나라 사랑 앞장
부산 기장군 장안읍에는 한국 불교계의 큰 스님들이 수행처로 거쳐 가 전국 최고의 수행처로 알려진 묘관음사가 있다. 바다 가까이에 있는 묘관음사는 사시사철 푸른 자태를 뽐내는 송림 속에 위치해있다. 울산과 부산을 잇는 해안도로를 따라 펼쳐진 바닷가 가까이에 위치한 묘관음사는 그 모습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작은 포구와 깨끗한 백사장을 오른쪽에 두고 야트막한 철마가 다니는 길을 건너 소나무 숲을 지나면 감춰진 자태가 조금씩 드러난다.
법림산 산기슭 평평한 터에 자리 잡은 묘관음사는 푸른 산빛이 가득하고 선원을 둘러싼 송림은 알싸한 바닷바람을 정진하기 안성맞춤이다. 또, 그곳은 볕이 따뜻하고 차분한 분위기 덕분에 산만한 마음이 사라지는 정적인 공간이다. 묘관음사의 대문은 ‘일주문’이다. 크진 않지만 소박한 아름다움이 묻어있는 일주문은 사천왕문을 겸했다. 입구에서 바라보는 묘관음사의 첫인상은 오로지 수행에 힘쓰는 절이라는 느낌이 와 닿는다.
절 입구에는 묘관음사의 발자취가 적혀있고, ‘일주문’을 열고 들어서면 대웅전이 바로 보인다.
대웅전 근처 길상선원 선방에 자리를 잡고 가만히 앉으면 발 밑에서는 파도 소리가 들리고 머리 위로 갈매기의 울음 소리가 그대로 전해진다. 특히 묘관음사의 길상선원은 운수납자들의 수행처로 명성을 널리 알려왔다.
70년 세월의 묘관음사의 길상선원은 한국 근대불교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선원이다. 이곳에 무문관 길로 이끌 수행처를 개창한 이는 근대 선불교의 샛별 경허 스님과 그 제자 ‘삼월’ 가운데 하현달로 이름 높은 혜월 스님의 법을 이은 운봉 스님이다.
묘관음사가 전국 최고의 수행처로 이름을 높인 것은 운봉 스님이 지난 1943년 기장 바닷가의 길지에 토굴을 개설한 후, 향곡 혜림 스님이 1960년 4월 토굴 주변을 가꾸고 수행승들의 귀의처로 선원을 열면서부터다.
묘관음사가 전국에서 가장 이름 높은 수행처로 탈바꿈한 것은 향곡 스님의 임제정맥의 가풍과 중생의 부모 미생전 본래 면모를 찾던 수행승의 분심 때문이었다.
청담, 성철 스님 등과 봉암사 결사를 마친 향곡 스님은 북전강 남향곡으로 불릴 만큼 1960년과 70년대 올곧은 법을 뛰어난 깨침의 상징이었다. 길상선원이 전국에서 최고로 평가받은 이유는 결국 향곡 스님의 법향 때문이었다.
향곡 스님의 수행가풍은 선원 개창 이후 계속돼 안거를 80일 이상이나 지속했다. 해방 후 6ㆍ25 전운이 드리웠던 1949년, 향곡 스님의 평생 도반으로 함께 탁마했던 퇴옹 성철 스님 역시 이곳에서 생식을 하며 장좌불와로 동안거를 지냈다.
사찰 내 깊은 곳에 자리한 조사전에는 일곱 분의 스님들이 모셔져 있다. 성철 스님과 향곡 스님 외에도 성우당, 우봉, 혜명 스님 등 한국불교의 큰 맥을 이으신 분들의 영정을 모신 사찰이라는 점에서 짧은 역사에 비해 그 의미는 매우 깊다.
묘관음사가 소장하고 있는 불자는 조선 말기에서 일제강점기 사이에 우수한 공예수법으로 제작돼 드문 희소가치를 가지는 문화재다.
또, 묘관음사 내 길상선원 역시 또 잘 가꿔진 조경과 자연이 선사한 경관으로 유명하다.
현재 묘관음사의 주지 스님인 금진 서강 스님의 원력으로 대웅전 앞마당에 구국탑 불사를 마쳤다. 석탑을 세우게 된 이유와 동기에 대해 서강 스님은 “이번에 묘관음사에 8각 9층 구국탑을 조성해서 보관하게 됐다” 면서 “조상들이 김해에 황룡사 목조탑을 만들어 주변국가로부터 국력을 보호하기 위해 원력을 실었던 것처럼 북한과 중국, 러시아, 일본 등으로부터 국가를 보호하기 위한 뜻을 담았다”고 말했다.
석탑 조성에 대해 신도들 역시 반색했다. 금진 서강 스님은 “이 시대가 해결해야 할 정신을 담았고 국가의 안위를 기원하는 석탑의 조성을 신도들 역시 기다리는 분위기였다”고 설명했다.
길상선원 왼쪽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올라가면 염화실이 나온다. 향곡 스님이 지은 염화실은 잘 알려진 선실로, 선실을 둘러싼 대나무 잎사귀와 함께 청정하고 고결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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