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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정체성, 부산 안에 답이 있다
부산의 정체성, 부산 안에 답이 있다
  • 김한근 기자
  • 승인 2013.11.11 21: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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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한 근 사회부 부장
 부산은 바다와 산, 강이 어우러진 천혜의 자연환경과 세계적인 항만을 가진 대한민국 제2의 도시이자 세계적인 해양도시다.

 부산하면 뭐지? 부산의 랜드마크는 해운대 빌딩 숲, 국제영화제, 불꽃축제, 외곽오링도로, 국제물류단지 등 올해 부산광역시 승격 50주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지정학적 입장에서 보면 부산은 우리나라의 동남해안과 일본 관서권을 이어주는 환태평양경제권, 일본 관동과 동해안-러시아 연해주를 잇는 유라시아 경제권의 관문도시이다.

 그동안 부산은 숨 가쁘게 앞만 보고 달려왔다. 해방 당시 28만 명이던 부산의 인구는 1960년에 이르러 116만 명에 달했다. 인구가 갑자기 불다 보니 좁은 도로, 주택난 같은 부작용이 뒤따랐다. 산적한 도시 문제를 풀기 위한 노력 끝에 1963년 1월 1일 광역시로 승격됐다.

 그로부터 50년이 흐른 지금, 부산의 위상은 어떠한가. 부산은 제2의 도시가 아니라 6대 광역시 중 하나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부산시가 내건 `다이내믹 부산(Dynamic Busan)`은 얼마나 위축됐으면 `힘내라 부산`이라고 외치는 절규처럼 들린다.

 부산 사람의 정체성은 뭘까. 물론 한마디로 규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남이가`로 표현되듯이 고립된 개인주의보다 우리로의 합일주의적 성격이 강하다.

 부산의 정체성을 찾는 것은 부산의 내일을 준비하는 필수 작업이며 그 속에 부산이 앞으로 어디로 나가야 할지 방향이 담겨 있어서다. 남과 같이하면 제2의 도시 위상을 되찾을 수 없다.

 부산의 미래의 50년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기 위해서는 부산시의 기존 전략과 정책을 전반적으로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취약한 분야일수록 강점으로 전환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으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부산은 인구 감소, 고령화, 경제력 쇠퇴가 약점으로 지적된다. 인구 감소를 쾌적한 도시 재생의 기회로, 고령화를 고령화 산업 성장의 발판으로, 경제력 쇠퇴를 경제구조 개편의 계기로 삼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부산은 어떻게 먹고살아야 하는가. 시가 추진 중인 부산항 재개발, 동북아 허브항만 육성, 가덕신공항 건설, 강서권 에코델타시티 조성, 영화박물관 건립 같은 굵직굵직한 공공사업은 국가의 백년대계와도 궤를 같이한다.

 이 같은 대역사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부산 구성원들이 한목소리를 내고, 환경문제 등 내부적으로 더 살펴야 할 과제들은 시와 시민, 업계와 전문가들이 논의해서 풀어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부산의 경제지표들은 중소기업 정상조업률이 내리막이고, 수출실적 및 건설 부동산 경기는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실업률은 고공행진 중이다.

 오늘, 지금 부산 시민들은 뭔가 자족감(自足感)이 약한 듯하다. 행복 결핍지수(이런 게 있다면)도 높은 것 같다. 외지인들은 대체로 `부산은 살기 좋은 곳이야!` 하고들 말하는데, 정작 부산 사람들은 `그런가?` 한다. 되는 것보다 안 되는 것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대기업이 없다, 인구가 준다, 인재가 유출된다 하면서도, 정작 내부 인재는 잘 챙기지 않는다. 웬만한 건 중앙정치의 문제로, 서울 집중 탓으로 돌린다. 경계를 고집하며 주변 지자체를 껴안지 않는다. 관료주의 타성을 반성하지 않는다. 지식인들은 제 잘난 맛에 빠져 있는 듯하다. 제2도시 타령을 하면서도 제2도시 품격은 논하지 않는다.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강력하고도 감동적인 리더십이 없잖아. 정치는 고인 물과 같았고, 경제는 낙화유수였다. 사회 분야는 비에 젖은 낙엽신세였으며, 문화는 향기 잃은 꽃이었다. 경제 부흥을 입에 달고 살았지만 하청 지대로 전락했지. 경제의 침체는 수도권 비대화로 인한 빨대 현상 탓이지. 빚이 늘어 재정은 악화됐으며 먹고사는 문제에 허덕여 깜깜한 어둠 속이라고. 아기 울음이 잦아들고 은퇴자만 활보하는 핏기 잃은 도시, 그게 지금 모습이야.

 100년 뒤의 부산을 상상해 본 적이 있는가. 서너 세대가 지날 것이고, 과학 기술의 재촉으로 성큼 100년 후에 이를 것이다. 상상은 이처럼 가볍게 할 수 있지만 인식은 쉽지 않다. 그때까지 살 동시대인은 거의 없을 테니 100년 후는 인식 너머의 역사적 시간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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