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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 잔에 삶의 향기 날리는 공간
커피 한 잔에 삶의 향기 날리는 공간
  • 이동근
  • 승인 2013.11.10 20:56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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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작가 이동근 힐링스토리

혼자와서 책 읽고 사진 찍고 이야기 나누고…
마음 껏 자유 느끼는 보통 사람들의 휴식처

 쌀쌀한 가을 바람에 옷깃을 여미며 종종걸음으로 어딘가로 향하는 사람들 그 빈틈으로 살며시 보이는 공간을 비집고 들어서 듯 걸었다.

 평소 존경하고 좋아하는 작가가 출간 한 사진집 한 권, 편안한 쇼파, 따뜻한 라떼 한 잔이 있으면 정말 행복할 것 같은 그날은 부산대학교 인근의 카페 골목으로 스며들기로 결심하고 작업실 밖으로 나선 참이었다.

 가을이라고 하기에는 겨울 인 듯, 바람 마저 매섭게 불던 어느날. 거리를 걷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오늘은 왠지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될 것 같은 예감도 드는 11월의 첫번째 수요일 오후 였다.

 길을 걷다 발견한 아기자기한 소품이 가득 들어차있던 왠지 자전거가 많은 일반적인 카페와는 느낌이 달랐던 그곳의 문을 열고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리문을 열자마자 ‘딸랑딸랑’ 소리가 났고 그 사이 너머로 ‘어서오세요’라는 낯선 손님을 반기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장님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차림새가 너무나 독특했다.

 체크무늬 비니모자를 쓰고, 청바지에 하얀색 티셔츠 그리고 바지에는 독특한 체인이 달려있다.

 그 분의 첫인상은 너무나 자유분방해 이 가게를 대신 지키고 있는 종업원인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편안해 보이는 쇼파에 자리를 잡고 가방을 열어 평소 잘 읽지 못했던 책 한 권을 꺼내놓은 후, 따뜻한 녹차라떼 한 잔을 주문했다. 그가 열심히 라떼를 만드는 모습을 보니 흡사, 바텐더의 모습을 보는듯 일사분란하게 우유와 녹차를 섞어 흔드는 전문가 같은 모습에 나도 모르게 그 자리에 꼼짝하지 않은체, 그의 현란한 손놀림에 온통 정신을 빼앗긴 체, 한참을 구경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다 만들어진 라떼를 들고 내게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녹차라떼 나왔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나는 당연하듯 ‘네, 감사합니다’라고 대답했고 그는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보고 싶었던 책을 읽으며 온통 그곳에 시선을 빼앗기고 누군가 내게 다가오는 것도 느끼지 못했다.

 인기척이 느껴져 앞을 쳐다보니, 현란한 손놀림으로 라떼를 만들던 종업원으로 생각하고 있던 그가 내 앞에 다가와 자연스럽게 내게 말을 걸었다. 아마도 항상 들고 다니던 나의 카메라를 보았던 것 같다. 자연스럽게 통성명을 나눈 후, 나는 그가 종업원이 아닌 이 카페의 사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고, 내가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내 나이 역시, 서른 중반의 문턱을 넘어섰기에 그 나이에 맞는 고민이라는 것은 대충 알고 있긴 했다.

 이십대가 모든 과정의 학교를 졸업하고 세상 밖으로 한 걸음 더 깊게 들어가야 하는 ‘취업’에 관련한 고민이 크다면 삼십대의 고민은 무엇보다 ‘결혼’이라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의 대화는 대부분이 그런 것들 이었기에 같은 고민은 하고 있는 나역시, 흘려들을 수만은 없는 이야기들이었고 무엇보다 그들의 고민을 심각하게 들어주던 “형”이라고 불리는 ‘사장’의 조언이 더 직설적이고 필요한 것만 집어준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관심이 더 갈수 밖에 없었다.

 그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털어내는 동생들의 이야기를 듣고 난 이후, 절대로 나이 많은 사람의 말이 흔히 범할 수 있는 자신이 하는 말이 모두 맞는 것처럼 조언을 하는 사람은 아니였다.

 우리가 들으면 흔하게 아무것도 아닌것처럼 느껴지는 고민조차 현재의 그에게는 가장 깊은 고민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듯 대답을 했다. 어차피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은 그 결정권자가 내릴 몫이기도 하다.

 어떤 해답을 결정해놓고, 그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 듯 털어놓는 이 역시 있을 수 있다.

 누가 무엇이라고 대답을 하더라도 자신이 결정한데로 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있으면서도 그 고민에 대한 조언을 열심히 해주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스무 살, 그는 우연한 계기로 인해 ‘바텐더’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어느덧 자신의 나이가 서른 후반을 향해 가고 있으니 17년 이라는 경력이 쌓였다고 한다. 그리고 가깝고 친했던 지인들의 연이은 ‘사고’와 ‘자살’로 인해 그는 살아간다는 것이 덧없음과 ‘삶’과 ‘죽음’의 경계 가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을 알고 난 이후, 그는 삶에 대한 허탈감을 수도없이 느낄 수 밖에 없었다고 했고, 자신의 허탈함 마음을 가지고서는 도저히 한국에 있을 수 없어서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유학 이라기 보다는 도피에 가까웠다고 했다.

 처음 일본에 간 그는 말도 통하지 않는 그곳에서 한동안 아무 것도 하지 못했고 아무 것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일본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동생의 권유로 일본어를 공부해 보기로 마음먹은 뒤 별 생각없이 어학원으로 발걸음을 옮긴 뒤,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고, 권유로 인해 시작한 언어였지만 배울수록 재미가 있어서 나중에는 더 열심히 하게 됐다고 한다. 언어가 늘어가니 예전에는 관심이 없던 일본의 문화에 대해 관심이 가기 시작했고, 일본의 전 지역을 여행을 하듯 다니게 됐다고 한다. 그러면서 일본은 가지고 있지만 한국은 가지지 못한 길거리 예술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다양한 문화와 자유분방한 그들의 모습을 보며 스스로 느끼게 됐다고 했다. 자신이 예전에는 가지지 못했던 무언가를 향한 ‘목적의식’을 가지기 시작했으며 2년이라는 일본 유학생활 동안 다양한 문화를 접한 이후,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실현해볼 마음으로 누구나 편하게 쉬었다 갈 수 있으며, 자유로운 공간을 만들어 보기로 마음먹었다. ‘랑’ 이라는 카페 를 만들었고, 한동안 그 카페는 빈티지 한 분위기와 바텐데 출신의 그가 독학으로 익힌 커피들로 인해 사람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르며 영화촬영지로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 열 평 남짓한 공간 안에서 다양한 손님들과 만나게 됐고,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을 하다보니 지금은 가게를 찾는 손님의 입장이 아닌 ‘형’을 만나러 오는 ‘동생’ 사이처럼 되어버린 것이다.

 그는 필자와도 비슷한 부분이 많았다. 프라모델, 사진, 영화, 사진전시, 자전거 등의 다양한 취미를 가지고 있다. 그 한가지 사실만으로도 필자 와 그는 많은 부분이 비슷하고 닮아있다.

 하지만 그런 부분 만으로는 마음까지 열어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와 대화를 하다보면 무언가 편해서 자연스럽게 다양한 이야기들을 털어놓게 된다는 것이다. 손님으로 가게를 찾았다가 친해진 모두들 같은 말을 하고는 했다. 사람으로서 같은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어른’으로서 우리는 참 물질적으로 풍족해지고 손에 쥘 수 있는 것들은 많아졌지만, 마음 한구석은 언제나 시리다.

 타인을 향해 손을 내밀어 본 것이 익숙하지 않기에 타인이 내민 손을 잡아주는 것이 서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의 카페를 찾는 사람들이 자유로웠으면 좋겠다고 한다. 혼자 와서 책도 읽고, 배가 고프면 밥도 시켜먹고, 사진도 찍고, 좋은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누고 힘든 시대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잠시나마 휴식처 같은 공간이 됐으면 바랄 것이 없다고 한다.

 우리들은 모두가 평범하게 살아가는 보통사람들이며 비슷한 고민들을 안고 살아간다.

 특별하게 살아가는 것보다 평범함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힘든 일이기도 하다.

 부산대학교 인근에 있는 카페 ‘비비’는 그런 보통 사람들이 드나드는 공간이며 커피 한 잔 으로 보통 사람들 이 만나지는 공간 이었다.

 부산광역시 금정구 장전2동 425-14 매장번호:583-7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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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 2014-07-17 23:07:47
아직까지도 살만한 세상

. . . . . 2013-11-12 07:40:25
앉아있으면 걱정을 잊을수 있을것같은 카페같네요

바람의노래 2013-11-11 00:51:15
글만보아도 멋있는 분이신데 정말 좋은일도 마니 하시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