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정 스님과 ‘선묵전’ 이후 유명세 얻어
작품판매 수익 대부분 이웃 돕기 사용
◇ 국내 최고의 전각가
스승과 제자가 구별이 있듯이 작품성향에서도 구분이 있다. 같은 점은 선화를 그렸다는 점이다. 그러나 다른 점을 굳이 꼭 집어서 말을 하라고 하면 스승인 석정이 불화장이라면 제자인 수안 스님은 전각가였다. 국내 전각가로서 최고를 꼽는다는 몽우 화백이다. 그 전각 솜씨에 버금가는 것이 바로 수안 스님의 전각 실력이다.
스승인 김광업 씨 타계 이후 더욱 전각에 정진한 수안 스님은 지난 2009년 5월 2일에 ‘수안인보집(殊眼印寶集)’을 내었다. 그동안 스승이 불화장으로서 말년에 인간문화재로 인정받았듯이 전각가로서의 자신의 행적을 남기기 위해서 이런 전각모음집을 펴낸 것이다.
“탁월한 전각 솜씨입니다.”
아마도 병중의 몽우 화백이 보았다면 이런 말을 했을 것이다. 그것은 수안 스님이 몽우 화백의 책을 대충 한번 훑어 보고 그 자리에서 대번에 “천재화가 맞네요”라고 한 것과 같은 맥락이었을 것이다.
대가는 서로 알아본다고 하지 않던가. 전각의 명인은 상대방 전각의 수준을 바로 알아본다고 한다. 몽우 화백의 전각을 많이 보아온 나로서는 수안 스님의 전각 역시 불심을 파고드는 탁월한 경지라는 것을 대번에 알수 있을 정도였다.
전각작품은 흩어지기 쉽다. 주문을 받은 전각작품이 주인을 찾아가면 결국은 흩어지고 말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전각작품을 한데 모아 책으로 펴낸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집나간 딸자식들을 불러 모으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지난한 일들을 해온 족적을 한데 모은 것 하나만으로도 한국 전각사에 업적을 남겨놓은 것이다. 천하의 전각 명인 몽우 화백도 힘이 들어서 하지 못했던 일들을 수안 스님은 이렇게 알게 모르게 책으로 펴내면서 후학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다.
◇ 전설의 시작 이리역 폭발사고
수안 스님의 선화는 지난 1977년 전북 이리역 폭발사고를 계기로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전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이리역 폭발사건은 경남과 부산의 스님들의 구호기금을 마련하자는 거룩한 뜻을 모으는 계기가 됐다.
수안 스님은 피해자를 돕기 위해 당시 석정 스님과 함께 그의 선화와 전각 작품들을 ‘이리 이재민 돕기 선묵전’에 아낌없이 내놓았다. 부산 여성회관에서 연 전시회는 호평을 받았고 작품은 이내 다 팔렸고 이 때부터 서서히 유명세를 얻었다.
지난 1981년에는 한ㆍ중ㆍ일 고승 선묵전에 나갈 정도로 이미 명성이 높았으니 말이다. 지난 1985년에는 시집 오소라가 출판이 되면서 더욱 시인으로 그리고 선화가로 명성을 얻었다. 사람들은 그 책자를 스님의 시집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선화가 들어있는 책자로 보았기에 책을 구입함으로써 스님의 선화를 얻는다는 생각을 가질 정도였다.
스님의 책은 보시 차원에서 펴낸 것이다. 이후에도 그의 책자와 선화는 다른 이들의 마음을 밝히는 데 쓰였다. 다투어 각종 단체에서나 사찰에서 스님의 그림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보시를 하기도 하고 작품판매가 되면 일부분 스님에게 되돌아오는 금액은 역시 불우이웃을 위해 쓰이게 했다.
지금도 대부분의 작품 판매 수익은 부산 자비원 등을 통해 무의탁 노인과 장애 아동 돕기에 쓰인다. 그런 일환으로 만든 것이 지난 1994년부터 수안 스님 달력 제작이었다. 해마다 정성스럽게 달력을 만들어 배포를 하고 있다. 그 수익금도 역시 남을 돕는 일에 쓰이고 있다.
본인 스스로 문턱을 낮춰 대자대비한 부처님의 모습을 따르려는 인상이 강한 것은 문턱을 높여 우쭐대는 다른 스님들의 처지와 비교를 하면 나름대로 무소유를 실천하는 또 다른 욕심으로 비춰보일 수가 있다고 하지만 수안 스님의 남다른 선행에 대한 생각은 확고하다.
스님의 전시회 중에서 경남과 부산 사람들에게 기억에 남는 것은 바로 KBS부산총국 개국 74주년 기념 초대전이었다. KBS부산총국 갤러리에서 열린 이 ‘수안 스님 그림전람회’라는 타이틀의 전시회는 지난 2009년 9월 18일부터 26일까지 열렸고 그로 인해 수안 스님을 경남ㆍ부산 최고의 화가로 인정받게 한 계기를 만들었다.
“스님이야, 화가야?”
이런 말이 떠돌 정도로 화가로서의 명성이 높아지고 결국 이번에 러시아 정부 초청으로 다시 한번 국제적인 화가로서의 명성도 재확인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서양에선 예술가가 수익금을 지역사회 복지에 쓴다는 점을 높이 사지만 수행자인 자신이 이런 일을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것이다.
이번 러시아 전시회도 오프닝 행사가 끝났지만 팬서비스로 러시아 관람객들을 맞았다. 수안 스님의 즉석 사인겸 그림을 얻으려고 길게 줄을 선 교포들과 또한 미술에 안목이 있는 벽안의 러시아 사람들에게 즉석에서 작품을 만들어 주었다.
이번 러시아 전시회도 수많은 전시회에서 처럼 수안 스님은 관람객들과 대화를 나누고 그들이 원하면 그들의 마음에 필요한 작품을 즉석에서 그려주었다. 이번도 예외는 아니었다. 원래 스님은 옆에서 비스듬히 그림을 그리는 스타일이다.
주먹 쥐듯 네 손가락으로 붓을 잡은 악필(握筆)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 그의 특기이기도 하다. 당연히 스님의 즉석 그림이 완성되자 관람객들은 탄성을 자아냈다.
“프랑스에서 첫 해외 전시를 시작한 지 30여 년이 지났어요. 우리의 문화를 널리 알리는 일에 보람을 느껴요. 그동안 첫 전시회 때 못다 이루었던 목표를 이제는 많이 이룬 셈이에요.”
수안 스님의 작품세계 정진은 아직도 진행형임을 내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