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13:55 (목)
왜 진로교육인가?
왜 진로교육인가?
  • 남화철
  • 승인 2013.10.24 21: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남화철 진로진학전문가
 지난 5월 중순 우리지역의 중견 서예가인 친구의 개인전에 들렀다. 개인전 준비를 위해 약 2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작품준비를 하는 모습을 가끔 지켜 보면서 지역의 열악한 환경에서 대부분의 예술인들이 진정한 예술혼이 없이 단순히 생계유지만을 위해 창작활동을 한다면 먹고살기가 참 힘들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평소 틈날 때마다 동서고금의 고전을 정독하면서 옛 선현들의 좋은 글귀를 엄선하고, 엄선된 글귀가 마음에 들 때까지 백 번, 이백 번이고 쓰고 찢었다는 친구의 노력에 진정한 장이 정신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경외심마저 들었다.

 이렇게 오랜 산고 끝에 태어난 훌륭한 전시 작품 중에서 필자는 “隨處作主 立處皆眞”(수처작주 입처개진)이라는 작품의 뜻이 마음에 들어 한 점 구입해 거실에 걸어뒀다. 서예가들이 즐겨 쓰는 글귀로서 우리나라 선종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당나라 선종의 임제선사가 남긴 유명한 선어이다.

 머무는 곳마다 스스로 주인이 되고, 서있는 곳마다 진리임을 깨달으라는 뜻으로 즉 내 삶에 있어서 진정한 주체성을 가진 주인으로 살아가라는 뜻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필자가 굳이 隨處作主(수처작주)를 언급하는 것은 일선에서 오랫동안 진로전문가로서 아이들을 지도할 때마다 느낀 아쉬움이 隨處作主(수처작주)와 진하게 오버랩 되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 교육정책의 화두는 단연 진로교육이다. 소위 우리 아이들에게 꿈과 끼를 찾아주는 진로교육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지금 전국의 각 중고등학교에는 이미 진로전문교사가 배치돼있고, 전국적으로 5만 명의 학부모 진로코치단이 기본 연수교육을 마친 단계에 있지만 턱없이 모자라는 숫자다.

 흔히들 진로 이야기를 할 때 한국인의 IQ는 홍콩에 이어 세계 2위(국가로서는 1위), PISA(국제교육기구협회)에서 발표한 학업성취도는 핀란드에 이어 세계 2위, OECD Factbook 발표 사교육비 지출 세계 1위, 공부시간 세계 1위, 대학진학률(81~84%) 이상, 선진국은 30~40%) 세계 1위, 올림피아드 성적 최상위권(1~3위), 이러한 결과는 고등학교 졸업 전까지 성과지표로 매우 낙관적이다. 그러나 암울하게도 세계 최고의 사교육비 지출과 공부시간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IQ 및 학력대비 인재율 꼴찌(2008년 스위스 취리히大)로 한국과 같은 우수한 수준의 나라 중에서 노벨상 수상자가 제일 적다. 그리고 중고등학교 때 수학, 과학 올림피아드에서 탁월한 성적을 거둔 수재들이 다 어디로 갔을까? 한국 대학생들의 전공 불일치도 60%(2009. 교육과학기술부), 한국대학생의 87%는 전공을 바꾸고 싶다(2010.11.26 조선일보), 아이비리그 중퇴율 대한민국 1위(컬럼비아대 논문), 한국성인의 75% 자아 정체감 폐쇄군, 한국 성인의 86% 꿈 없이 산다(삼성의료원 사회정신 건강연구소).

 정리해 보자면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두뇌가 좋고, 사교육비를 많이 쓰고, 공부를 가장 많이 시키고, 학업성취도가 가장 높고, 대학진학률이 가장 높은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인재가 안 나오고, 꿈이 없고, 대학생들은 사회적 비용을 낭비하고 있는 나라로 정리된다.

 이렇게 된 이유를 여러 학자들은 진로교육의 부재에서 기인한다고 분석한다.

 필자는 진로교육을 하는 과정에 아이들에게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물어보면 대부분은 자신 있게 표현을 하지 못한다. 보통의 아이들은 아직 미성숙한 상태에서 그저 화려하고 좋아 보이는 대상을 목표로 자기의 꿈을 설정하기도 하는데 부모의 입장에서는 마냥 못마땅하지만, 사춘기 아이들과 괜한 마찰을 우려해 제대로 진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공유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학교에서도 교과과정에 진로수업을 하지만, 진로담당 교사 혼자서 전교생을 상대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진로검사하기, 동영상 보여주기, 진로체험 활동 등이 제한적으로 이뤄지고 있으나, 막상 아이들은 뭘 배웠는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진로는 아이한테 몇 가지 검사나 활동을 하고 결과를 처방하는 것이 아니라 과정의 연속이며 자기 성찰이다. 진로는 단순한 직업선택이 아니라 평생 성공계획이다. 진로는 부모의 꿈이 아니라 자녀의 꿈이며, 공부 이외의 대안이 아니라 진짜 공부를 하는 이유다. 진로는 정보를 주는 것이 아니라 꿈을 주는 것이어야 한다.

 본인이 자기의 장래에 대해 깊이 고민해 진로가 과연 무엇인지 인식하고, 부단하게 탐색한 후 최종적으로 본인이 진로를 설계할 수 있는 수준까지 돼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자녀들과 열린 마음으로 함께 고민하고 꿈꾸는 시간이 많을수록, 먼 훗날 우리의 아이들이 진정한 隨處作主(수처작주)의 뜻이 실현되는 행복한 날이 올 것임을 확신해 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