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06:15 (토)
둥근 도자기는 작은 우주… 문양ㆍ그림 만나 하나 되죠
둥근 도자기는 작은 우주… 문양ㆍ그림 만나 하나 되죠
  • 배미진 인턴기자
  • 승인 2013.10.24 21: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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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가 탁원대 김해분청도자기축제서 도자기+추상회화 만남 선봬
그림에 매료돼 우림도예 설립 후 한국전통도예 계승
새로운 시도에 목말라 이지훈 화백과 합작품 만들어

 모양을 잡은 점토에 날렵한 칼로 무늬를 새기며 화장토를 바른다. 1천200도를 웃도는 뜨거운 가마 속 오랜 시간을 버텨내면 시작은 투박했지만 끝은 섬세한 문양을 자랑하는 분청자가 탄생한다.

 분청자는 세계적으로 한국미의 정수라 평가받는다. 문양들의 모습이 한결같이 자유분방하고 서민적이지만 그만큼 예술성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탁원대 도예가의 작품은 그것에 한국 전통문양의 아름다움까지 더한다. 작업에 몰두하는 그의 손길에서 묻어나는 멋에 작품은 빛이 난다. 분청은 만드는 이의 모습을 담아낸다고 한다고 하는 말이 맞는 것 같다.

▲ 지난 22일 개막한 김해분청도자기축제에서 탁원대 도예가가 분청자 제작을 시연하고 있다. 김명일 기자
 ◇ 도자기와의 인연… 어느덧 20여 년

 시골에서 자란 탁 도예가는 유난히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그가 도자기와 인연이 시작된 것도 젊은 시절 우연히 부산에 있는 공방의 도자기그림을 본 이후다. 그림에 매료돼 지난 1990년 도예에 입문했다.

 저마다의 개성이 있듯 도예가들도 작품에서 강조하는 점이 있다. 청아한 빛깔, 특유의 매끄러운 곡선, 그 누구도 따라하지 못할 새로운 디자인 등… 그는 문양을 중요시 여기고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그는 당시 김해에 위치했던 금강도예에서 청자와 백자 여러 가지를 만지며 공부했고 새벽까지 그리기에 몰두했다. 그러던 중 지난 1999년 김해 진례에 ‘우림도예’를 설립해 가야토기, 분청도자연구와 작품들을 창작하며 한국 전통도예를 계승해오고 있다.

▲ 우림도예 전시ㆍ판매장엔 탁 도예가 부부의 밝은 미소가 기다리고 있다. 김명일 기자
 ◇ 도전, 언제나 뜨겁고 설레

 불의 성질. 유약의 정도, 굽기의 차이 등 얼마든지 다양하게 나오는 도자기의 특성상 일반회화와는 달리 바로 결과물을 얻을 수 없다. 명인이라도 매사 완벽할 수 없는 법. 그는 “결과를 쉽게 예측 할 수 없어 가마 곁을 지켜야 한다. 마치 불의 심판을 받는 느낌”이라며 허허 웃어보였다.

 정교한 솜씨와 불의 기운이 한데 어우러진 완성된 작품들을 보며 가지는 성취감은 한편으로는 그에게 새로운 시도를 하게 만든다. 이지훈 화백과 만나 작업을 하게된 것도 그 일환에서다.

▲ 김해분청도자기축제 전시ㆍ판매장 전경. 김명일 기자
◇ ‘극과 극’ 전통도예ㆍ추상회화의 만남

 작년 10월, 그는 KNB아트갤러리에서 열린 ‘이지훈 화백 개인전’에 초대돼 이 화백과 첫 만남을 가졌다. 이 화백은 피렌체 미술관 등지에서 국제적인 예술활동을 해온 작가이자 국내외 미술계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작가로서 우주와 인간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추상적 풍경들을 선보여왔다.

 그는 한국의 신비스런 토속성과 유럽의 세련된 색채감을 조화시켜 표현한 이 화백의 추상화 작품들을 보며 크게 와 닿아 도자기에 추상회화를 접목시키면 좋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는 “도자기는 작은 우주와도 같다. 자체가 둥글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 표현되는 문양들은 우주처럼 방대하며 시작과 끝을 헤아리기 힘들다. 그런 면에서 이 화백의 작품세계와 도자기가 묘하게 잘 맞아 떨어진다고 생각했다”고 합작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두 사람은 이심전심으로 서로의 작품관을 이야기하고 작업을 시작했다. 단순히 도자기 위에 물감으로 그림을 그린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모든 과정에 서로 맞춰야 할 부분들이 많았다. 하얀 캔버스가 아닌 것에 그림을 그리려면 섬세해야 했고 알맞은 색감을 위해 안료와 화장토의 정교하고 적절한 배합이 중요했다. 가마온도 또한 신경써야 할 부분이다.

▲ 분청사기 조화어문 편병.
 오랜 시간 끝에 탄생한 작품을 본 그는 “전혀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조화로웠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합작품은 지난 22일 개최된 김해분청도자기 축제에 마련된 우림도예 전시ㆍ판매장에 공개됐다. 합작품 5점은 단연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충분해 우림도예 전시장 앞은 구경 온 관람객으로 붐볐다. 은은하고 영롱한 도자기와 화려하나, 과하지 않은 추상화가 만나 강렬한 존재감을 나타냈고, 초벌구이를 거친 뒤 작업해 유약을 얇게 발라 거친 느낌을 준 분청자도 추상화 질감이 강조돼 눈길을 사로잡았다.

 “멀리서 작품이 한 눈에 들어와 구경왔어요.”, “색감이 특이하네요.” 여기저기 두 사람의 합작품에 관심을 가지고 질문이 끊이지 않았으며 그의 부인도 종일 작품설명을 하느라 분주했다. 그는 “주위 도예가들도 관심을 가진다”며 살짝 귀띔했다.

 이 화백은 이번 합작에 대해 “탁 도예가와 작품세계를 공유하다보니 인연은 짧았지만 오랜친구처럼 지냈다”며 “한국적인 모습이 많은 도자기에 컬러풀한 서양화가 만나 아주 재밌는 작품이 나와 흥미롭고 좋은 반응이 기대된다. 탁 도예가 덕에 좋은 경험을 하게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 탁원대 도예가의 도자기와 이지훈 화백의 추상회화가 만나 탄생한 작품들 중 한 점.
 ◇ 발상의 전환으로 변화 꾀하다

 분청자는 표면처리나 표현기법이 다양하다. 분장과 무늬를 나타내는 기법에 따라 상감, 인화, 박지, 조화기법 등 7가지로 분류한다. 그는 7가지 외 새로운 기법을 창출하고 거기에서 나타나는 질감이나 효과들을 발견한다.

 그 결과 지난 2009년 철분이 함유된 사토배합 분장토기법이라는 새로운 도예기법을 개발해 2011년 특허를 받기도 했다. 그는 “거친 흙에서 고운 흙을 바르는 것이 전통 분장기법이라면 이 특허기법은 고운 흙에다 철분이 함유된 거친 흙을 발라 도자기의 표면이 돌출되는 모양이 나타나게 했다”며 “단순히 생각해보면 원리는 단순하나 발상의 전환이다”고 설명했다. 특허기법으로 만든 작품 또한 분청도자기축제 우림도예 전시ㆍ판매장에 전시됐다. 실제로 보면 표면에 모래를 발라놓은 느낌이 아주 특이하다. 이 기법을 사용한 작품 ‘그리운 날’은 2009 김해공예대전 대상, 경남공예품대전 금상을 받게 했다.

 이러한 노력을 인정받아 지난 8월 경남메세나협의회가 경남지역을 대표할 수 있는 예술인 가운데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혼신을 다해 창작활동에 전념하는 작가를 발굴해 후원하는 ‘지역문화 특화사업’에 그가 선정되기도 했다.

 

▲ 산수 양각문 매병.
요즘 그는 ‘재현’에 몰두하고 있다. 전시장엔 두 마리의 물고기를 새겨 넣은 분청사기 편병이 많았는데 이는 음양의 조화, 금슬 좋은 부부, 다산을 상징하기도 하며 한편으론 물고기로 먹거리를 확보하고자 했던 욕망, 불교에서는 부지런한 수행의 의미로 인식되기도 하는 등 재현을 통해 옛 선조들의 관념세계를 엿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 도예가로서 갈 길은 멀다. 취업부진을 이유로 한 대학의 도예과가 없어질 위기에 처하는 등 우리의 전통문화는 대접받지 못하고 맥이 끊기고 있는 것이 현실.

 그는 빠른 현대화에 따라 변화된 주거환경에 대해 아쉬움을 나타냈다. 편의 위주의 간단한 살림을 추구하니 자연히 장식공간이 생략되고 벽면에 액자 걸린 집이 손에 꼽을 정도라며 위축된 전통공예산업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정통과 현대 모두 중요하다. 도자기는 공예품이고 일반사람과 공감하며 쓰임의 기능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기에 두 가지를 충족시킬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며 아울러 “이번 도자기전을 통해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제 생활 속에 파고들어 도자기가 보편화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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