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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정 스님을 추모함(끝)
석정 스님을 추모함(끝)
  • 김용태
  • 승인 2013.10.17 21: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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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산 김용태 시인ㆍ전 신라대학교 총장
 공양 후, 원명 스님이 ‘범패의 기능 보유자’로 인간문화재 등록이 된 분이라 하시기에 그 소리를 한번 들어보고 싶어 입령성을 한번 듣고 싶다고 요청을 했다.

 그랬더니 원명 스님은 “의식을 하지 않을 때는 소리를 하지 않지만 오늘은 스님의 청이니 특별히 한번 해보겠다”고 하면서 정좌를 하시고 목을 고르셨다. 드디어 소리가 흘러나왔다.

 영명성각묘란사 靈明性覺妙難思

 월타추담계영한 月墮秋潭桂影寒

 금탁수성개각로 金鐸數聲開覺路

 잠사진계하향단 暫辭眞界下香壇

 영혼은 본디부터 밝은 것이니, 참된 성품 깨닫는 것 생각하기 어려워라.

 달빛이 가을 못에 떨어지니 계수나무 그림자 차갑기만 하누나.

 금방울(요령) 몇 번 울리는 소리 듣고 각로를 열으시어잠시 진계를 떠나 이 향단으로 내려오소서.

 이 네 구절을 소리로 지어 나가는데 10분도 더 걸렸다. 온 산천이 고요해지고 뜬구름도 멎어서 이 소리를 듣는 듯했다. 힘찬 속에 고요가 있고 고요 속에서도 폭포가 흐르는 듯 힘이 있고, 슬픈 가락인 듯하면서 환희심을 자아내는 이 소리는, 뜻을 알든 모르든, 사람의 영혼을 밝혀주는 ‘소리’가 아닌가. 나는 일어나서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석정 스님은, 나의 표정과 몸짓을 보시고는 “법산 스님이 소리를 잘 분간하시어 알아주시니 오늘 원명 스님이 여기 온 보람이 있겠소”하셨다.

 나는 그때 녹음준비를 하지 못했다는 것을 아직도 후회하고 있다. 후일 원명 스님을 한번 찾아갈 작정을 하고 있다.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고, 서로가 아쉬운 작별을 했다.

 10. 마지막 만남, 선시에 관한 대화

 이러한 일이 있은 후, 나는 나대로 많은 갈등과 번민을 겪었다. 이는 다름이 아니고, 평생 나를 위해서 봉사해주고 희생해 준 보살이 척추 수술을 받고 그 뒤가 좋지 않아서 서울을 오르내리며 치료를 받아도 무효였다. 이런 사정이 생기니 나는 원효정사의 운영에서부터 모든 일들에 위축돼 번민하다가, 결국은 내가 심혈을 다 바쳐 창건한 원효정사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이러한 일이 있어 석정 스님과 약 1년간 단절이 됐다.

 그런 와중에 내가 하고 있는 ‘화쟁문화포럼’의 사무국장인 오기환(수필가, 중등교장 역임) 선생이 스님(나)과 석정 스님이 마주 앉으시어 선시에 관해 대화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하기에, 나는 좋다고 하고 바로 스님께 전화로 그 뜻을 전해 날짜를 잡았다. 그것이 2010년 5월 15일이었다. 스님과 우리 일행이 두 시간 가까이 얘기를 나누었다.

 얘기는, 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떤 틀에 걸리지 말고 서로 생각나는 대로 자유로운 방담이 좋겠다고 하시어서, 생각나는 대로 진행됐다.

 스님께서는 조주, 운문, 덕산 스님에 관한 선게를 주로 말씀하셨고, 나는 금강경 해설 오가 중의 한 사람인 야부 도천 선사의 선게를 주로 얘기했다. 그리고 이때 나는 통도사 극락암에 주석하셨던 경봉 스님도 정말 시정이 풍부한 도인이자 시인이라는 말을 했더니 석정 스님도 내 말이 틀림이 없다고 하셨다.

 시간이 저녁때가 가까워졌기에, 일어서면서 오늘을 기념하는 뜻으로 선주산방 뜰에서 두 사람이 자연스럽게 서서 사진을 촬영하고 돌아왔다. 이것이 석정 스님을 마지막 뵙는 날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끝으로 조시 한 편을 붙여 이 글을 맺기로 한다.

 지금쯤 이승에 오셨겠지요.

 석정스님이시여!

 신라의 광덕스님 같은 보살,

 석정스님이여!

 이미, 이승의 모든 것

 다 방하착放下着하셨으니,

 오래 유계幽界에 머물지도 않으시고

 지금쯤 이승에 오셨겠지요

 어느 불연 깊은

 보살의 무릎에서

 방긋방긋 웃고 계시는 모습

 내 눈에 선연히 보입니다.

 어서 자라시어

 다시 이승에서 불법 굴리시는

 빛나는 화필 펼쳐주소서

 석정스님, 석정스님

 정말 그렇게 해 주소서

 2013년 여름

 원효불원 무애실에서

 法山 김용태 삼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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