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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정 스님을 추모함(7)
석정 스님을 추모함(7)
  • 김용태
  • 승인 2013.10.16 21: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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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산 김용태 시인ㆍ전 신라대학교 총장
 그래서 새해 인사도 드릴 겸 완성한 원고를 2부 만들어 들고 선주산방으로 갔다.

 한 부는 스님이 보시고, 한 부는 내가 읽어보기 위해서였다.

 다 읽고 난 다음 나는 스님을 쳐다보았다.

 스님께서는 “내가 정말 스님(나)을 잘 찾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말 정성을 들인 명문입니다. 고생했습니다”라고 과찬을 해주셨다.

 그런데 스님께서는 다시 정색으로 나를 쳐다보시면서 “이제 정말 끝맺음을 할 일이 있으니, 반드시 스님이 마무리를 해 주셔야 되겠어요”하신다.

 “또 제가 무슨 더 할 일이 있습니까?”라고 했더니 “사실은 대은 스님의 약전도 만들어 두는 것이 좋겠지만 이 약전을 압축해 스님의 비문을 쓰셔야 됩니다. 최종 목표가 비문입니다. 나도 그림을 그릴 때, 한창 기운이 나면 계속 해냅니다. 글을 쓰는 일도 같겠지요. 내친김에 비문도 써주시지요”하신다.

 대은 큰스님의 비문을 쓴다는 것이 영광이기는 하지만 사실 나는 이 약전을 만드는 데 김이 너무 빠져서 지쳐 있었다.

 그러나 어찌하랴 “감사하게 받아들이겠습니다”했더니 “일이 다 마무리되고 나면 스님의 수고에 대해서는 상당한 사례를 하도록 원명 스님에게 얘기하겠다”고 하신다.

 나는 사례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속으로 큰스님의 비문을 짓는 것이 영광이기는 하지만 금석문을 짓는 일이, 앞의 약전을 만드는 일보다 더 힘들 것이란 생각을 했다. 그러나 석정 스님께서 당신이 그렇게도 존경하는 큰스님의 비문을 나에게 짓도록 해 주시는 그 자체가 은혜로운 일이라 생각하고 “정성과 노력을 다 기울여서 지어보겠습니다”라는 답을 남기고 돌아왔다.

 나는 이 비문을 짓느라 이 해의 봄이 오는지도 가는지도 몰랐다.

 비문을 완성할 단계에 들어갈 때쯤에 스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은행 계좌번호를 불러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스님께 입은 은혜도 많은데 대은 스님의 상좌 원명 스님이 사례를 하겠다면, 제가 받은 것으로 하고, 스님께서 약이라도 사서 드시지요”했다.

 “나도 내 전공이 탱화를 그리는 일인데 공짜로는 하지 않습니다. 스님도 글 쓰는 일이 전공인데 사양이 있을 수 없습니다. 어서 계좌번호를 알려 주시오”하셨다.

 그리고 비문이 완성돼서 앞에서처럼 2부를 뽑아 가지고 가서 한부는 스님이 보시고 한 부는 내가 보면서 읽어드렸더니 만면에 미소를 지으시면서 “정말 큰 고생했습니다. 아무리 드는 솜씨라 해도 그냥 명문을 짓는다는 것과 정성을 담아서 짓는다는 것은 다릅니다. 이 비문이야말로 스님의 정성을 기울인 흔적이 역연한 명문입니다. 내가 보아서 기분이 좋으니 원명 스님이 보아도 기분이 좋을 것입니다. 원래 명작은 아무나 보아도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닙니까”하셨다.

 “내가 원명 스님에게 이 글을 보내고는 부산으로 와서 정중하게 스님에게 인사드리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하셨다.

 며칠이 지나고 다른 일이 있어 은행에 갔더니 통장에 상당한 금액이 입금돼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기분이 좋았다.

 은행에 갔다 돌아오니 택배가 하나 왔다. 겉에 쓴 글씨를 보니 석정 스님의 글씨였다. 풀어보니 물감을 쓴 가지가지의 그림들(소품)이 30장이었다. 나는 웬일인가 싶어서 즉시 전화를 걸어서 어찌된 영문인지 물었다.

 “내가 보낸 그림은, 직지사 녹원 스님이 와서 50장을 부탁하기에 그려 드렸더니 한 장에 30만 원씩을 계산해 주고 갔습니다. 그 정도 가치는 될 것입니다. 내가 이제 다시는 탱화를 그리는 일 외에는 어떠한 그림도 그리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마지막으로 스님에게 내 마음을 담아서 그려 보낸 것입니다. 앞으로 불사를 하실 때든지, 필요할 때 쓰시라고 보냈습니다. 이게 마지막으로 드리는 것이 될 것입니다”하신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스님의 마음 오래 간직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전화를 끊었다.

 9. 스님의 마지막 작품을 받고

내가 전화를 빨리 끊은 것은 ‘마지막’이란 말에 울음이 나올 것 같아서였다.

 이런 일이 있은 며칠 지나고 또 큰 상자가 하나 택배로 부쳐져 왔다. 풀어보았더니 대은 스님의 상좌 원명 스님이 부친 대은 스님 전집이었다. 대은 스님을 뵙는 것 같이 반가웠다. 간단한 원명 스님의 편지도 들어있었다. ‘비문을 명문으로 써 주신 데 감사드리며 조속한 시일 내로 석정 스님과 함께 직접 찾아뵙고 인사드리겠습니다’는 내용이다.

 이런 전화를 받은 며칠 후 아침 일찍 석정스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늘 원명 스님과 함께 ‘원효정사’로 오시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급히 보살에게 점심공양 준비를 정성껏 하도록 시켰는데, 원명 스님은 생식을 한다기에 석정 스님과 둘이서 공양을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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