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정 스님을 추모함(6)
석정 스님을 추모함(6)
  • 서휘산
  • 승인 2013.10.15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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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산 김용태 시인ㆍ전 신라대학교 총장
 7. 잊을 수 없는 스님의 따뜻한 배려

 이후, 1984년 가을에, 내가 명색이 주지로 머물던 칠보사(부산 서구 남부민동 소재) 중창 불사를 회향할 때까지 가람배치에 대한 자문도 해주셨고, 불상봉안, 단청, 도량장엄 등에 관해서도, 내가 묻는 대로 일일이 스님의 견해를 말씀해 주셨다. 또 내가 정년 후 대가람 원효정사(부산 북구 금곡동)를 창건할 때도 역시 많은 조언을 해주셨다. 이 두 불사 과정에 나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많이 겪었는데, 이때 스님께서는 자신의 작품과, 상좌 수안 스님에게 요청해 그의 작품까지 수십 점을 얻어 주시면서 “혹시 신도들에게 시주를 권할 때 도움이 될런지 모르니 가지고 가서 유용하게 사용해보라”고 하셨다. 얼마나 고마웠는지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전시회 때 남은 작품들과 새로 얻은 작품을 표구해 칠보사 법당에서 전시회를 갖고 큰 도움이 됐다. 또 원효정사를 창건하고도 칠보사에서 전시를 하고 남은 작품과 나의 소장 서화들을 정비해 108평 큰 법당 대광명전에서 전시회를 해 급한 불을 끄게 됐다.

 석정 스님에 관한 잊을 수 없는 일은 참 많기도 하다. 1988년도에 내가 일본의 고마자와대학에 방문교수로 가게 될 때, 한 일 년간 스님을 뵙지 못하게 된다고 인사차 갔더니 이때, 또 스님께서 나를 생각해주시는 일이 생겼다.

 “언제 출국하느냐”고 물으시기에 “한 3일 후에 출국하게 될 것”이라 했더니 “그럼 내일 오후에 시간이 되면 잠시 들르라”고 하신다. 그래서 갔더니 여러 가지 형상의 달마도를 10여 폭 그려서 주시면서 “혹시 일본에 가서 선물이라도 할 경우가 생기면 내 어줍잖은 그림이지만 이것이나 한 폭씩 주면 체면이 될까 싶어 마련해 보았어요”하셨다.

 지금까지 진 신세도 많은데 또 이렇게까지 배려해 주시니 어쩔 줄을 몰랐다.

 8. 대은당 소하대선사 비문을 쓰다.

 끝으로 한 가지만 더 술회해 두기로 한다.

 2008년 가을, 스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내용은 “원효정사에 건립해 놓은 금호선사의 비문을 좀 보았으면 좋겠다”는 말씀이었다.

 그래서 그 다음 날 바로 컴퓨터에 저장해 둔 비문을 뽑아서 가지고 갔다.

 다 읽어 보시고는 “아버지 비문을 직접 지었으니 심혈을 다 기울였지 싶어서 보고 싶었습니다. 나는 글솜씨도 없지만 석두 스님의 비문을 내가 직접 지었지요. 문중의 여러 스님들이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마음을 써서 지어보았지요. 그런데 이번에 스님(나)에게 부탁을 하나 하고 싶은 일이 있으니 수고를 좀 해 주셔야 되겠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나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슨 일이든지 성의를 다 기울여 해 드리겠습니다”라고 했다.

 스님께서 자필로 쓰신 대은당소하대선사(본명 金泰洽 1894~1989)의 행장의 초기를 내놓으시면서 “이 스님은 근래에 보기 드문 훌륭한 분이시고 한국 불교의 근대화에 절대적인 공을 세우신 분이시며 신행이 구족한 스님이시기에 내가 아주 존경했습니다. 그래서 그 상좌 원명 스님이 기록해 둔 것을 가지고 와서 나에게 정리를 부탁해서 초기를 만들어 보긴 했습니다만 아무래도 전문가의 손을 거쳐야 될 것 같아서 이를 기초로 해 우선 먼저 약전을 만들어야 할 것 같아서 스님을 보자고 했습니다. 좀 수고해 주시지요” 나에게는 너무나 영광스럽고 과분한 부탁이었다. 그래서 나는 사양도 하지 않고 “저도 대은 큰스님을, 부산 대각사에 큰 불사가 있어 오셨을 때 뵙기도 했고, 또 평소에 스님의 많은 저술을 통해서 존경해 왔습니다. 저의 능력으로, 정말 큰스님의 약전이 제대로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심혈을 기울여 써보겠습니다”라고 했다.

 그래서 모든 자료를 받아 가지고 나오면서 언제까지 완성해야 되느냐고 물으니 내년 봄까지만 되면 된다고 하시기에 나는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그 다음 날부터 나는 그 모든 자료를 파악하고 석정 스님이 써주신 초기를 다 읽었다. 그리고는 대은 스님은 정말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위대한 스님이신데 완전한 평전도 아니고 약전으로 스님의 상(像)을 어떻게 그릴까 하는 생각을 계속해서 하게 됐다.

 약 한 달 동안 생각을 하고서야 비로소 붓을 들고 우선 내가 그릴 스님상을 스케치하기 시작했다. 그 기간이 또 20일쯤 걸렸다.

 그리고는, 이런 저런 다른 일도 있고, 생각을 좀 쉬고 싶어서 약 보름 동안 쉬었다.

 쉬고 나니 어느 날 상상력이 발동을 했다.

 때를 놓치면 안 되겠다 싶어 붓을 들고 만들어 놓은 스케치를 바탕으로 다시 완전한 약전을 쓴다는 생각으로 글을 써 나갔다. 한국불교의 근대사에 우뚝하신 큰스님이시기에 단어 하나 하나 세심하게 선택해야 했고, 종결어미를 처리하는데 있어서도 ‘됐다’고 할 것인가, ‘했다’고 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전후문장의 맥락을 보아서 깊이 생각하지 아니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해 약전을 완성하고 나서 다시 이를 교정하면서 단어를 바꾸기도 하고 문장을 고치기도 하면서 해를 넘기고 2009년 정초에, 내 마음에 이 정도면 되겠다고 최종완성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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