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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밝히는 선화(禪畵) 그리는 ‘불교계 스타’
마음 밝히는 선화(禪畵) 그리는 ‘불교계 스타’
  • 송준
  • 승인 2013.10.14 21:05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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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송준의 명인열전-한국 불교계의 국보 ‘수안스님’- 상

대불방광(大佛方光) 선화만리(善畵萬里) 전설의 천재화가 수안(殊眼ㆍ73) 스님, 러시아 국립미술관 블라디보스토크 분원서 선화(禪畵)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한국전통 가치를 세계만방에 알리는 역할을 자임, “세계 인정 받자”는 취지로 30년 전 해외 전시를 시작했다.

 목탁 표시가 들어간 그림으로 유명하다. 불화장(佛畵匠) 석정 스님과 인연으로 수안인보집까지 펴내 그의 선화(禪畵)는 종교보단 아름다운 삶을 중시한다. 수익금은 불우노인과 장애인 돕기에 쓰인다.

“세계 인정 받자” 30년 전 해외 전시 그림에 종교보다 아름다운 삶 중시
불화장 석정 스님과 인연으로 시작 “스승님 반도 못 따라 가죠” 겸손 보여

▲ 수안 스님 2009년 그림전람회 대표작.
 ◇ 한국불교의 국보 수안(殊眼)스님

 한국 불교계에 가장 인기 있는 분이 바로 수안 스님이다. 선화를 하고 전각을 하고 그림을 잘 그리는 분이다.

 그래서 경남과 부산에서는 인기면에서는 범어사의 무비스님과 통도사의 수안 스님을 최고로 치는 이들이 많다. 무비스님은 대표적인 학승이고 강백이라면 수안 스님은 대표적인 선승이자 선화가이며 전각가이자 불교계의 천재화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불자들이 부산 범어사를 찾으면 본원에 있는 무비스님을 뵈올려고 하고 양산 통도사를 찾으면 정작 양산 통도사 보다는 옆으로 축서암쪽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있는 즉 통도사에서 약간 떨어진 말사지만 엄밀히 따지면 말사는 아닌 수안 스님이 좌석하고 계신 꽃과 나무가 흐드러진 아름다운 곳 문수원을 찾는 것이다.

 사람들은 안다. 어느 스님이 좋고 인기가 있는지 말이다. 그것은 물따라 세월따라 절따라 가다보면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이다. 스님의 그림도 자꾸 보게 되면 누구의 그림이 좋은지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수안 스님은 부산 경남권에서는 대표적인 인기스타 스님이기도 하지만 전국적으로도 일반 대중에게는 가장 큰 인기와 명성을 가지고 있다. 과거에 이런 말이 존재했다.

▲ 수안 스님이 자신의 작품세계를 찬찬히 설명하고 있다.
 “불사를 이루러면 석정스님이나 수안 스님을 찾아가라.”

 이런 말이 한동안 유행을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런 문구도 수정을 해야 할 시기가 온 것이다. 이제는 수안 스님 한분만이 남아있으니 말이다. 독불처럼 남아 홀로 빛을 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시대에 옛명성을 이어갈 분이 마지막으로 생존해 계신 것 같다.

 지금도 스님이 계시는 문수원에는 스님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아니 다른 절의 큰스님을 찾아뵈어야 할 스님들이 큰절을 마다하고 작은 문수원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수안 스님께 먼저 인사를 하는 것이다. 그것은 수안 스님이 연세로 보나 법랍으로 보나 지금은 큰스님으로 대우를 받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거기에는 역시 불심이 숨겨져 있는 것 같은 느낌도 지울수가 없다. 진정 불심이 깊은 스님들은 작고한 석정스님과 수안 스님 같은 분을 평소에 높이 떠받들고 있으니 말이다. 다만 권력을 탐하고 물욕이 강한 스님네들은 그런 스님들을 환쟁이라고 무시를 할런지는 몰라도 말이다.

 ◇ 사부대중의 지지는 변함이 없어

 그러나 스님네들 중에서 권력중들은 왜 수안 스님 같은 분들이 사부대중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지를 잘 모른다. 또한 스님네들도 수안 스님을 좋아하고 높이 떠받드는지 모른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물질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수안 스님의 손님들 중에서는 스님들이 특히 많다. 즉 스님들이 수안 스님의 그림을 먼저 좋아하고 더 아끼고 자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도들이 따르고 더 높게 평가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스님이 개인적으로 불사를 하거나 아니면 불사관련 봉사단체를 운영하려고 하면 수안 스님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기가 높은 것 같다. 상당수는 수안 스님 같은 인기있는 스님의 그림을 시주받아서 이를 팔아서 그 수익을 충당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런가 각종 불교관련 책자에는 수안 스님의 그림을 표지로 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야 무료로 스님의 그림을 보시받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불우이웃을 돕는 단체에 지속적으로 그림을 보내준 결과 한군데만 해도 도합 100여점을 기부하는 등 과거 통 큰 보시차원의 기부에서 부터 지금까지 대소사 불사관련 기금으로 내놓은 작품도 수천점이 넘는다. 이런 남다른 선행이 오늘에 수안 스님을 있게 한 것이 아닐까.

 최근에 만난 분은 수안 스님의 번거로운 일을 잠깐 옆에서 도왔는데 스님이 고맙다면서 무려 그림 15점을 선물로 줬다고 한다.

 “덕분에 그림 선물하면서 주위에 인사를 톡톡히 받았지요.”

 사람들은 수안 스님 그림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 달라고 애원하기 때문에 안줄수 없었다고 했다. 결국은 지금은 3점 밖에 없다고 했다. 나도 한점 달라고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원래 그림은 그만한 대가를 지불하고 얻어야 하는 것임을 아는 나로서는 그냥 달라고 할 수가 없었다.

 이래저래 스님의 그림은 만천하에 알려지고 더욱 고매한 인격에 전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던 것이다.

 ◇ 부처님의 자비와 광명을 만천하에 알리는 역할 자임

 문턱이 높은 석정은 극소수의 아는 사람만 상대했지만 그래서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했지만 제자인 수안 스님은 부처님의 자비와 광명을 받들어 누구나 차별없이 스스럼없이 만나고는 했기에 더욱 존재가치가 빛났던 것이다.

 덕분에 전국 방방곳곳의 전통식당이나 찻집에 수안 스님의 그림 한두 점이 없는 곳은 “전통의 향기가 머무는 곳”이라는 칭호를 받지 못했다. 간혹 지방을 가다보면 찻집이나 식당에서 수안 스님의 그림을 애지중지하면서 보물이라고 떠받드는 것을 보았다.

 그림의 사인은 바로 목탁표시의 직인이나 낙관이 찍힌 것이었고 수안이라고 적혀있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한국 선화계에 석정과 수안이라는 걸출한 2명의 스타가 있었던 것이었지만 작년을 기점으로 변화가 생겼다. 그것은 두 분의 실력의 차이를 두고서라도 인기는 수안 스님이 더 대중적인 지지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낮은 자세로 임하는 제자였기에 더욱 세간의 평가가 좋았던 것이 아닐까. 그림은 사람을 따라간다고 했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의 수행정신과 인격과 품격에 따라 그림이 재평가 되는 것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작년에 설악산의 어느 사찰에 가서 많은 분들이 석정스님과 수안 스님을 알아보고 특히 많은 분들이 수안 스님에게 더 살갑게 인사를 하는 것을 보고 그 자신도 약간은 놀랐을 것이고 또한 두려웠을 것이다.

 제자가 스승의 인기를 능가하는 것이 얼마나 심적으로 부담이 되었을까. 두 분의 선의의 경쟁과 나름 의도적으로 고려하지 않았던 갈등은 그런 식으로 30년을 지속이 되어 온 것이다.

 “스승님의 반도 못 따라 갑니다. 서법과 서체에서는 스승님은 타의추종을 불허합니다.”

 이런 겸손한 말을 하는 것 같았다. 특히 서법에서 스승의 존재는 절대적이라는 것이다. 아마도 평생 존경했던 스승인 석정스님과 자신을 비교하는 것을 꺼리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세상은 다 안다. 서체 보다는 선화가 더 선호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기는 일반 사부대중의 관심은 수안 스님이 더 높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이제는 수안 스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지금은 그 거칠 것이 없는 천재적인 필봉을 마구 휘두르고 있는 것이다.

▲ ‘오소라’ 시집표지.
 ◇ 독보적인 선화의 경지

 4년 전인가 5년 전에 서울에서 통도사 수안 스님에게 전화를 한 적이 있었다. 그것은 석정스님을 만나 뵐려고 하다가 만나지 못하고 말았던 탓도 있었다.

 석정스님의 화풍은 중국의 천재화가 팔대산인(八大山人)과 석도의 것을 모방한 흔적이 역력하지만 수안 스님은 토종화풍으로 유명했기에 관심의 대상이었으나 스승의 그늘에 가려서 스스로 2인자의 모습을 취하고 있었다.

 그러나 꿩대신 알이라고 석정스님의 애제자이고 선화(禪畵)로 명성이 높은 수안 스님을 택했던 것이다. 만나면 글이라고 한번 써보고 책이라도 한번 내보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석정스님은 옆에서 수발을 들던 여자가 매정하게 못만나게 하는 것이었다. 이런 여자들은 유명한 스님 주위에 많이 있다. 특히 큰스님 주위의 여자들은 전화를 넣으면 칼바람나는 소리를 하지만 돈주는 재벌회장이라고 하면 맨발로 뛰어나오는 자들의 처세를 부린다. 알고보니 석정스님의 애인겸 부인으로 처신을 하는 여자라는 것이다.

 스님이 웬 부인이라는 약간은 의아한 생각에 이후 석정스님은 유명한 불화장이며 인간문화재로 대우를 하기로 마음을 먹고 뒤에 붙는 존칭 스님자를 빼버렸다. 결국 당대의 불화장으로서 또한 인간문화재로서 문턱이 너무 높아서 정말로 만나기 힘든 그분을 포기하고 그분 다음으로 역시 최고의 인기가 있었던 그림으로는 더 뛰어난 수안 스님에게 연락을 했던 것이다.

 전화를 했더니 두말 않고 대번에 “오세요”라는 반가운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턱이 없이 누구나 만나주는 그 인품에 멀리서나마 감동을 했던 것이다. 인간멸시의 지옥같은 어지러운 풍경속에서 오아시스 없는 사막에서 헤매는 머스마를 구해주는, 감로수를 전해주는 부처님을 만난 격이었다. 대불방광(大佛方光)이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그러나 나는 약속을 하고는 가지 못했다. 돗자리를 펴주니 못하겠다고 강짜를 부리는 우리네 속담이나 인정처럼 말이다. 서울에서 양산까지 내려간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마침 뜻하지 않은 약속이 있어 수안 스님을 찾아 뵙지는 못했지만 그 고마운 마음을 잘 간직하고 있다가 이번에 그 약속을 지키게 되었다. 그것도 이번에 내리 2번을 방문했으니 말이다.

 이미 작고하신 석정은 불화장으로서는 천재라고 하고 붓글씨 서체로서 대단했다면 현존하는 수안 스님은 선화장으로서 또한 전각장으로서 그리고 시인으로서 가히 천재인 것이다. 또한 전각가로서도 몽우 화백과 겨룰만큼 국내의 독보적인 실력을 갖춘 천재적인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손님을 맞는 접견실겸 화실에는 표구를 한 작품‘옥잠화’가 있었다.

▲ ‘산이터엉빈날’ 표지.

 “내 사랑하는 아낙

 오랜 전생부터

 꽃 가꾸는 정성이 대단하더니

 죽음이란 아름다운 영혼을 안고

 꽃뱀으로 세번의 생을 살았다

 나는 죽어서 끝없이 날아

 반야세계로

 우아하고 멋있는 학이 된다고

 염불처럼 되내이던

 꽃을 사랑하던 우리 아낙

 

 깨끗하고 청초함만 사랑하던

 내 전생의 아낙이

 고즈넉한 달밤이면

 참빛으로 머리곱게 앞 가리마 탄다

 옹달샘 맑아

 거울로 비칠때

 아른거리는 머리카락도

 아름다운 노래로 읊조리던 아낙이

 청상과부인 제 어미가 남가고 죽은

 옥으로 만든 비녀를

 달밤에만 머리에 꼽던

 우리 아낙

 

 오늘은

 내 작은 뜰악에서

 한 포기 꽃으로 화해

 한없이 한없이 피어 난다

 청록색 치마를 허리에 두르고

 나를 보고 웃고 있다.”

 이 시는 수안 스님이 자작한 것이지만 그림과 어우러져 표구가 된 것을 보니 무아지경의 품격 그 자체였다. 시와 함께 그림이 어우러지는 선화의 백미 같았다. 그동안 시인으로서 5권의 시집이 있었다. 열거하면 오소라, 소옥아, 나의 노래, 산이 터엉빈날, 대방광불화엄경 노래말이 곱습니다 등의 시집들이었다. 이 시집들은 지금도 부산의 행원문화사에서 판매가 되고 있는 시집들이다.

 또한 수필집으로는 ‘참좋다 정말 좋구나’라는 제목의 책자도 있다.

 전부 어머니와 아버님 그리고 아우에 대한 진한 사랑과 미련이 담긴 내용이었고 스님 주변의 사람들에 관한 따뜻한 이야기고 수행의 소회를 간간히 내뱉은 시어로 담아 쓴 것들이다.

 그러니 가슴을 울리는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유명한 스승을 둔 분으로 그런 인품과 실력 그리고 명성을 바탕으로 국내에서는 선화전을 수도 없이 했다. 작품만 나간 경우도 수백번도 더 되었을 것이다. 해외 전시도 그동안 십여번이 넘었고 너무 많아 연도별로 끊어도 대충 6번이나 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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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근순 2013-11-07 17:51:21
선생님 기사내용 중에 석정스님을 어느정도 아시는지 모르지만 기사내용이 지나친것 같습니다
석정스님은 수안스님 은사스님 이신데 선생님 마음에 거설린다고 스님자를 빼고 보살님을 애인이니 부인 비하하는 글이 많이 거슬립니다
수안스님도 보살님과 함께 살고 계시는 건 아는 분은 다아시고 계신데 수안스님 기뻐하시지는 않을것 같아 아마도 마음이 편치는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석정스님을 정말 잘모르시는 군요

고향 2013-10-15 18:21:27
도력 있는 작품이네요. 좋은 기사 갑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