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8 11:18 (목)
여행작가 이동근 힐링스토리 정겨운 옛날 이발소
여행작가 이동근 힐링스토리 정겨운 옛날 이발소
  • 이동근
  • 승인 2013.10.10 22: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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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염 깎는 동안 세상 모든 시름 내려놓고 쉼을 누렸다
어릴 적 할아버지 따라 목욕탕에 간 후
단골 이발소에서 ‘서걱서걱’ 수염 깎을 때
그 소리 좋아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는데…
요즘 아버지는 이런 공간 하나쯤 있을까

 ‘이발소라는 작은 공간은 당신에게 정겹게 비춰질 수도 있는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미소를 저절로 머금게 하는 정겨운 풍경에는 언제나 사람과 사람이 있다.

 그 풍경은 이 세상의 비범하며 장엄한 모습을 한 풍경에도 견줄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

 매주 일요일 새벽 5시30분이 되면, 언제나 일상의 한 부분처럼 할아버지는 잠에 취해 있는 나를 깨워 목욕탕에 갈 준비를 하느라 분주하셨다. 아침 잠이 많은 어린이에게는 매주 일요일 새벽마다 일어나는 것은 힘든 일이었지만 목욕탕에 가자는 소리는 내게 너무나 반가운 일이었기도 했다. 나에겐 목욕탕은 일주일 동안 뛰어놀았던 몸을 깨끗이 씻는 장소가 아닌 따뜻한 탕을 수영장 삼아 물놀이를 마음껏 할 수 있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정말 신기했던 것은 남자들의 목욕시간이 여성에 비해 짧기는 하지만 시간을 잰 것도 아닌데 항상 할아버지와 가는 목욕탕은 아침 여섯시 경에 들어가면 한 시간 뒤인 아침 일곱시에 집에 가는것이 무언의 약속이었다. 목욕이 끝나고 나면 할아버지의 단골이발소를 따라 가는게 습관이 돼버렸고, 지루해 할 어린 아이의 마음을 잘 알고 계시던 할아버지는 작은 구멍가게에 들어가 나의 지루함을 달랠수 있는 바나나 우유 하나를 손에 쥐어주곤 하셨다.

 이발소에서는 꼭 머리카락만 자르는 건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가족행사나 특별한 날에는 이발 도 같이 하셨지만 그것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있는 일이었고, 평상시에는 이발소에서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수건을 얼굴에 덮으신 후, 십 분가량을 누워 계셨다. 그리고 수건에서 피어오르던 열기가 식을 때쯤 되면 이발소아저씨께서는 얼굴에 덮힌 수건을 걷어내고 작은 플라스틱 통에 거품을 가득 내어 할아버지의 뺨부터 턱까지 곱게 펴서 골고루 바른 후, 길고 날카로운 면도칼로 “서걱서걱” 소리를 내며 할아버지의 얼굴에 돋아난 수염들을 깎아 내렸다.

 어렸던 나에게 그 소리는 남자가 어른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뜻함이라 생각했다.

 그 소리가 너무 좋아서 나도 이발소에서 리드미컬하게 소리를 내며 면도를 할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어 했다.

 많은 시간이 흘러 마냥 작기만 했던 어린 아이가 어른이 되고 난 이후, 할아버지의 수염을 깎아내는 그 소리는 단순히 어른에게만 자라나는 수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수염을 깎는 그 짧은 순간 동안 하루하루 고달프게 살아가는 어른의 삶, 또 다시 일주일을 견디며 살아내야 할 힘든 현실을 아무런 걱정 없이 20여 분 동안 타인에게 온전히 의지하고, 모든 걱정을 잠시 동안 내려놓을 수 있는 휴식 같은 시간이었다는 것을 지금의 나는 생각하고 있다.

 이발소는 쉴틈없이 모든 걱정을 떠안고 살아가는 모든 가장들에게 작은 도피처였다는 사실을 내가 면도를 해야 하는 어른이 되고 난 다음 알기 시작했다.

 이발소는 오랜만에 동네 친구를 우연히 만나는 만남의 장소 이기도 했다.

 이발을 하며 오랜만에 만난 이웃들과 이런 저런 대화도 나누며 서로의 안부를 묻기도하고 가족들에게도 털어놓지 못할 가장으로서의 넋두리들을 무심결에 털어놓는 그런 장소이기도 했다.

 키가 작은 어린아이에게는 작은 나무 판자를 덧대어 그 위에 올라 앉게 한 다음 머리를 잘랐다. 요즘의 의자는 너무나 좋아져 작동 한번에도 마음껏 의자를 올렸다 내렸다 할 수 있지만 너무나 편하고 좋아졌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그 나무 판자 위에 올라 앉을 수 있었던 때가 더 좋았다고 생각되는 것인지….

 그 나무 판자 위로 신발을 벗고 의자 위로 앉고 싶어도, 지금은 앉지 못할 만큼 커버렸지만 나는 가끔 돌아 갈 수 없는 그날의 풍경들이 너무나 그립다.

 외할아버지가 이발을 하시며 면도를 하는 동안 작은 손이 들기엔 조금 버거운 바나나 우유를 양손에 꼭 쥐고, 할아버지가 면도 하시는 소리를 내 귀로 생생하게 듣던 그 시절.

 오랜만에 찾은 이발소의 풍경은 역시나 내가 기억하고 있던 모습과 똑 같았다. 머리를 자르는 이발사아저씨와 머리카락을 자르러온 손님 그 안에서 오고 가는 대화는 너무나 사적이었으며 정겨운 대화였다.

 이발이 끝나고 난 후, 빨래비누로 머리를 감겨주고 면도까지 해주는 그 모습이 무엇보다 생동감 넘치는 장면이었고, 다 큰 어른으로 살아가는 남자에게, 약한 모습을 가족에게 들키기 싫어하는 강한 모습만을 보여야 하는 남자에게 아무런 걱정 없이 타인에게 자신을 모두 맡기는 순간은 아마도 자신의 머리카락을 잘라주는 이발소에서의 짧은 순간이 아닐까 싶었다. 그들은 그렇게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나누고 공감하며, 30분 남짓한 시간에 다시 깊이 서로를 이해하고 있었다.

 우리 삶 속에 정겹고 아름다운 풍경은 내 주위에서도 항상 느끼며 살아갈 수 있다.

 다만, 항상 가까이 있기에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는것처럼 우리에게 의미라고 생각되지 않을 뿐이다. 흐르는 이 시대에서 존재하는 것들도 한순간에 바람처럼 사라지는것들이 참으로 많다. 그 언젠가 우리들은 이발소라는 단어를 추억속으로 남기게 될지도 모른다.

 이발소는 단순히 우리시대의 아버지 들에게는 유일하게 쉴 수 있는 안식처이며, 가슴깊이 묵혀놓은 사연들과 그 누구에게도 편히 말하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그곳에 털어내며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는 쉼터이기도 했다.

 남자로서, 어깨에 짊어지고 살아가야 하는 것들이 많이 있다.

 지금 이 시대의 아버지 들에게 과연 그런 공간 하나쯤은 허락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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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눈 2013-10-11 23:53:50
무심히 지나치는.것들을 바라보시는 작가님의 시선에 감탄을 하고 갑니다.
앞으로도 좋은 힐링스토리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