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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정 스님을 추모함(3)
석정 스님을 추모함(3)
  • 김용태
  • 승인 2013.10.10 2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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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가장 먼저 이 작품들을 가지고, 부산에서 오랜 전통과 이름 있는 ‘태화 인쇄소’로 가서 그림들을 모두 촬영하도록 했다. 이렇게 한 것은, 이 시화 작품들을 책으로 출판해 전시회 때 오는 손님들에게 한 권씩 선물하고, 나머지는 서점에 판매할 작정을 했기 때문이었다.

 며칠 후 촬영이 끝난 다음 작품을 들고 보문당 표구사로 가서 표구를 맡겼다.

 표구를 하는 동안 나는 인쇄소에서 제3시집 선시책 ‘松(송)의 소리’를 출판하는 일에 매달렸다. 이 시집의 제자도 석정스님이 써 주셨고, 표지 그림도 스님의 다기 그림에다 초의선사의 동다송(東茶頌)의 구절을 쓴 작품으로 했다. 이 작품은 스님께서 병진년 내가 지장탱화를 찾으러 갔을 때 즉석에서 바로 쳐 준 것이다.

 이렇게 해 나의 세 번째 시집이 나오게 됐는데, 이 시집은 46배판 양장에다 오른 쪽에는 석정스님의 그림, 왼쪽에는 나의 시가 인쇄된 것이다.

 이해(1978년) 9월 중순에 ‘원화랑’에서 전시회가 이뤄졌는데, 보문당 표구사에서 표구를 해 싣고 온 작품이 작은 트럭으로 두 트럭이나 됐다.

 전시회 첫날 토요일 오후 오프닝을 할 때, 모인 축하 내빈들이 250여 명쯤 됐다.

 이 전시기간 오후에 석정스님께서는 이틀에 한 번쯤 나오셔서 원하는 이들에게 즉석에서 글씨나 묵화도 쳐 주셨다. 이러한 일들은 스님께서 전시회를 성공적으로 치르도록 배려함이었다고 생각한다.

 전시회에 오신 내빈들에게는 미리 인쇄해 두었던, 스님의 그림과 나의 시가 조화를 이룬 시집 ‘松의 소리’를 한 권씩 드렸다. 모두들 칭찬이 자자했다.

 일주일간 전시회를 마감하고 나니 출품한 작품의 절반은 나가고 절반은 남았다. 그러나 ‘관음찬’이란 연작시로 6폭 병풍을 만든 것은 가지고자 하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스님과 의논을 하니, 같은 작품을 또 해드리면 되니, “시간의 여유를 조건으로 하고 들어오는 대로 다 받으라”고 하셨다. 그래서 그 이후 스님께서는 ‘관음찬’ 6폭 병풍의 그림을 여섯 번이나 더 그리셨다.

 시 각 편마다 석정스님의 포관면상관음(布冠面像觀音), 약수좌상관음, 사유좌상관음, 자비입상관음, 반가미소관음, 원시입상관음(遠視立像觀音) 등의 원숙한 그림을 붙였으니 그 6폭 병풍이야말로 절찬을 받았음은 물론, 서로가 갖고자 했다.

 그 밖에 ‘십우송’ 10폭 병풍, 목우송 10폭 병풍, 보현찬 10폭 병풍, 육바라밀 6폭 병풍 등은 갖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나 가격을 높게 매겨뒀기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결산을 해 보니, 오프닝을 하는 날 저녁식사(뷔페) 대금, 일주일간 화랑 대여비, 표구비, 기타 경비 등은 충분히 됐지만 스님의 수고에 대한 사례를 약간 밖에 할 수가 없었다. 스님께 결과를 말씀 드렸더니 “그만하면 성공적”이라 하시며 “작품 남은 것이 남는 것”이라 하시면서 웃으셨다. 그 웃음은, 나에게 부담을 갖지말라는 뜻이라고 그때 나는 받아들였다.

 4. 깊어진 인연, 스님에 관한 시를 짓다.

 이렇게 스님과 인연이 깊어져서 나는 ‘선주산방’을 더 자주 드나들게 됐다. 스님의 살림살이(멋진 생활)의 모습을 보고 문득 신라의 광덕스님이 떠올랐다. 돌아와서 ‘광덕화현(廣德化現)’이란 시 한 편을 얻게 됐다.

 芬皇寺 西쪽 움막

 廣德스님 신 삼는 소리

 오늘 금정산 기슭

 善住山房에서 들린다.

 善住山房 主人은 廣德스님이시다.

 廣德이란 이름 대신에

 오늘 石鼎으로, 봄바람으로

 그 신 삼던 솜씨 붓 끝에 이는

 波羅密이여

 面壁을 거둔 達磨

 깨어진 듯 이룬 한 소식

 먹으로 빚은 茶맛에

 꽃향기가 감돈다.

 그날, 스스로 彌陀刹에 이른 후에

 같이 살던 女人을 아내로만 여겼던

 세상의 부끄러움이여,

 嚴莊의 부끄러움이여

 觀世音, 觀世音 아내로 나투신 大悲

 廣德스님, 廣德스님

 아니, 아니 石鼎스님

 그날 그 낭랑한 소리로

 중생의 願을 스스로 부르짖던

 그 願往生歌 오늘 다시 부를

 그 應身의 觀音은 누구입니까.

 (이 시는 나의 제4시집 ‘유음(遺音)’에 수록돼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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