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정 스님을 추모함(2)
석정 스님을 추모함(2)
  • 김용태
  • 승인 2013.10.09 20: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법산 김용태 시인/전 신라대학교 총장
 3. 선시화전을 개최하다.

 이후 나는 석정스님의 무슨 매력에 끌렸는지 학교에서 퇴근을 하면 ‘선주산방’으로 자주 가게 됐다. 이렇게 서로 가깝게 되고 마음이 통하게 됐다.

 1977년 12월 한 해를 보내는 마음이 허전해서 스님을 뵙고 탈속한 얘기라도 좀 듣고 싶어 찾아갔다.

 이때 선에 관한 얘기를 나누다가 내가 류엽시인(1930년대 문장지로 등단)의 저서 ‘멋으로 가는 길’의 내용을 말하면서, 그는 선을 사유수니 정려니 하고 번역하는 것은 다 억지요, 말놀음이라 하고, 선은 멋이요 살림살이라 했으니 정말 한 수 위에서 선을 본 경지라고 했다.

 석정스님은 나의 이 말을 들으시고, 류엽시인은 금강산 시절부터 석두스님(석정스님의 은사이자 아버지)의 상좌였기에 불가로서의 형님(師兄)이라고 하시고, 그 책(멋으로 가는 길)을 읽어 본 나를 더욱 친숙하게 여기셨다. 이때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많은 얘길 나누다가 내가 불쑥 “스님의 그림에 저의 시를 붙여 전시회를 한번 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납니다” 했더니 “교수님 시를 한번 볼 수 있을까요”하셨다.

 반승낙이나 얻은 것처럼 기분이 너무 좋아서 “스님, 저의 시가 스님의 그림에 비한다면 부끄럽지만, 내일 가지고 와서 보여드리겠습니다” 했다. 이때 나의 마음은 둥둥 뜨는 듯했다.

 그길로 돌아와서 그동안 써 두었던 나의 선시 80여 편(연작시 포함)을 원고지에 다시 정서를 하는 데 밤을 새웠다. 그리해 그걸 바로 다음 날 오후에 가지고 갔다. 그날 그 자리에서 스님께서 나의 시를 대충 읽어보시고 하시는 말씀이 다음과 같았다.

 “시들을 읽어보니 필력(畵筆)이 생기를 얻을 것 같습니다. 선방에서 오래 수행해 한 소식 얻은 사람들의 선시를 보는 것 같습니다. 전시회를 한번 기획해 보시지요. 시를 두고 가시면, 내가 주문 받은 탱화를 그리는 사이사이 그림을 그려 보겠습니다” 이러한 말씀을 듣고, 나는 정사년 허전한 12월을, 새봄을 맞이할 기쁜 마음으로 마감했다.

 나는 1978년 새해를 맞이해 신년인사도 드리고, 전시회에 대한 구체적인 의논도 하기 위해서 스님을 찾아갔다.

 스님께서는 전적으로 동의하셨고 다만 표구사 선택에 대해서는 부산에서 표구를 제일 잘 한다는 보문당 표구사를 소개해 주셨다.

 이 표구사 사장의 표구 기술은 부산에서 제일이고, 스님과 스님의 상좌 ‘수안스님’의 모든 작품들을 이곳에 표구를 맡긴다고 하셨다. 찾아가서 상담을 해 보니, 표구의 값을, 싼 집의 2배가량이나 비싸게 달라고 했다. 결과를 스님께 얘기했더니, 그래도 그 집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고 하셨다. 그 이유는 예술작품의 표구는 믿을 수 있는 집에 맡겨야 수명이 오래간다고 하시면서 그 집은 재료를 고급으로 쓰고 접착이 완전하고 건조를 서두르지 않아서 후일 곰팡이가 필 우려가 없다고 하셨다. 그래서 무조건 그 말씀에 따르기로 했다.

 이상과 같은 일들이 있었고, 그 밖에도 여러 차례 스님과 상의하는 과정에서 중국, 우리나라 여러 선승들에 관한 얘기도 많이 나눴다.

 그 중에서 나는 혜월큰스님에 관한 얘기를 많이 했다. 내가 그런 얘기를 많이 하게 된 것은 나의 아버지이자 나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주신 스승이신 ‘금호선사’께서는 혜월큰스님의 손상좌로서, 혜월큰스님을 12년이나 시봉하시면서 겪었던 모든 얘기들을 직접 나에게 생생하게 들려주셨기 때문이었다.

 석정스님께서는 혜월스님에 관한 나의 얘기를 들으시고 “사람의 기억이란 오래 가면 잊어질 수가 있으니 잘 기록을 해뒀다가 언젠가 기회가 되면 문학의 전문가로서 ‘혜월스님 전기’같은 것을 한번 집필해 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는 말씀도 하셨다.

 그리고는 전시회 시화작품에 낙관할 도장이 있느냐고 물으시기에, 나는 “있기는 하지만 예술적인 멋이 없어서 다시 전각을 하고 싶다”고 했더니 “일요일 시간이 나시면 한번 오시지요. 그러면 상좌 수안을 부를 테니 상의를 해, 이 기회에 교수님이 앞으로 사용하실 낙관을 모두 새기도록 하시지요”하신다.

 그렇게 해 수안스님을 처음으로 만나서 지금까지도 사용하고 있는 낙관을 한 벌 장만하게 됐다. ‘無’ 자의 두인과 ‘尋牛’ 음각, ‘김용태’의 양각 또 ‘金容泰’란 음각 등 모두 마음에 드는 낙관들이었다. 이 낙관은 모두 석재들인데 이렇게 여러 개를 새기는 데 상당한 수고를 했다고 생각하고, 내가 사례비를 드리려고 했으나 수안스님은 “스님의 지시이기에 교수님 낙관 한 벌 새겨서 선물하겠다”고 하시면서 사양했다. 참으로 고마웠다. 다 석정스님의 덕분이었다.

 이렇게 석정스님과 마음이 깊이 오가면서 시간도 흘러 이해 7월 중순경, 스님께서 시화가 모두 완성됐다는 전화를 주셨다. 기쁜 마음으로 달려가서 보니 스님의 독특한 상상력으로, 나의 시에 어울리는 그림을 그리고, 나의 시를 스님의 독특한 필체로 직접 쓰시어 말미에 ‘戊午秋 글 尋牛子 짓고 그림 三樂子 그리다’라고 쓰시고 낙관까지 다해 놓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