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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 밀양의 의미는
우리 시대 밀양의 의미는
  • 류한열 기자
  • 승인 2013.10.04 00: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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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 한 열 편집국장 직대
현재 경남 최고의 역사 무대는 밀양이다. 가장 살아서 펄떡대고 있다. 역사는 언제나 나라님의 힘에 대항하는 힘없는 백성의 아픔을 기술하지 않았던가. 밀양지역 765㎸ 송전탑 공사가 지난 2일 오전 다시 시작됐다. 지난 2008년 8월 착공 이후 5년 2개월 만이다.

 지금까지 반대해 오던 주민들은 산을 파헤친 곳에 무시무시한 송전탑이 우뚝 솟으면 그걸 보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죽는 날까지 회한을 곱씹어야 할 판이다. 주민들이 반대하는 데도 역사는 힘 있는 자들이 원하는대로 흐른다는 예를 생산하고 있다. 그 가운데 힘없이 쓰러지는 민초의 아픔은 잠시 기억 속에 있다 사위어 지는 것처럼….

 공사현장 곳곳에서 주민과 경찰의 충돌은 예견된 일인데도, 나이든 할머니들의 하소연은 무엇이 중요한지를 되묻는 듯하다. "돈 몇 억을 줘도 정겨운 고향은 살 수 없다", "여기서 끌려나간다면 밧줄에 목을 넣겠다" 고 울부짖는 메아리가 여전히 산줄기를 타고 퍼져 나가고 있다. 한국전력공사가 내세운 공사재개에 따른 호소문보다 더 설득력이 있다.

 지난 여름 폭염 때문에 툭하면 전력수급 비상을 겪은 도민들은 밀양지역에 세워지는 52기의 송전탑이 무슨 `구세주` 같은 흉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그러면서 밀양 단장ㆍ산외ㆍ상동ㆍ부북면 4개 면 주민들에게는 삶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큰일이지만 그외 도민들에게는 강 건너 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송전탑 반대대책위원회는 "제2의 분신, 제2의 용산참사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아 두렵다"며 즉각 공사를 중단하라고 여전히 맞서고 있다. 대책위는 특히 "한전 측의 정전 위험은 과장됐으며 오히려 765㎸ 송전선로가 대형 정전을 일으킬 위험이 훨씬 높다"고 강경한 입장을 쏟아냈다.

 주민 4명은 단식 농성을 벌이면서 마지막 호소를 하고 있다. 이들은 "송전탑 공사가 중단될 때까지 단식을 계속하겠다"고 공사 저지의 뜻을 굽이지 않고 있다.

 신문이나 TV에서 젊은 경찰 앞에서 몸으로 저지하는 어르신들의 모습을 보면 안쓰럽다. 70대 할머니가 실신해 병원으로 이송됐다는 소식은 들으면 서글프다. 주민들이 움막을 치고 그 속에서 생활하면서 공사현장의 접근을 막은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

 지난 2005년 8월 밀양지역에서 주민 설명회을 열면서 갈등은 피할 수 없었다. 초고압 송전선로가 마을 인근에 들어선다는 사실이 그때 알려졌다. 그때부터 한전은 주민들과 갈등을 줄이는데 모든 것을 걸어야 했다. 한전은 처음부터 초기대응이 실패하고 조정이 미흡했다는 소리를 들어도 할말이 없다. 목숨까지 내놓고 저지의 뜻을 접지 않는 어르신들이 내 몸을 밟고 지나가라고 하는데 어쩌겠는가.

 공권력의 속성은 맞서는 약한 자의 목소리를 새겨듣지 않는다. 무조건 밀면 길이 생기는 줄 착각한다. 송전선로가 뻗어나가는 데, 누가 막아설 수 있나 라는 무사안일이 일을 크게 키운 꼴이다. 공권력은 빨리 집행돼야 국가예산이 절약되고 많은 사람이 혜택을 본다. 하지만 여기에 맹점이 있다. 공권력이 마구 휘둘러 진다면 시쳇말로 공권력은 깡패가 된다.

 합의 없는 공사 강행. 주민은 "여기서 결판을 내겠다"고 온몸으로 저지하는 데 공사는 진행되고 있다. 어르신들의 가슴을 헤집고 그 곳에 송전탑이 선다. 공권력의 가장 큰 무기인 법을 내세우면 주민들의 행동은 옳지 않다. 그렇지만 삶을 영위해 온 터전 위로 고압 송전선이 지나간다는 데 누구 가만히 있을까.

 누가 돌을 던져도 공사는 진행될 것이다. 누가 무슨 소리를 해도 철탑은 내년 3~4월에 위용을 드러낸다. 하지만 철탑이 세워질 수록 주민들의 가슴은 무너져 내릴 게 뻔하다. 공사에 불이 붙었는데, 더 이상 주민의 마음을 헤아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면 그건 공권력의 오만이다. 끝까지 반대 주민들의 마음을 위무해야 한다. 그들의 강요된 희생 위에 송전탑이 서기 때문에.

 홀로 공사 현장에서 경찰과 맞선 70대 할머니는 "나이 많은 사람이 무슨 힘으로 버텨. 젊은 사람이 미는데"라고 울음을 터뜨렸다. 몸은 어쩔 수 없이 비켜섰지만 마음은 막아섰다는 걸 잊지말아야 한다.

 현재 밀양에서 벌어지는 역사의 아픔은 그래도 약한 자를 배려했다는 말을 남기 위해서 공권력의 끝없는 겸손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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