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4 00:03 (수)
 공치는 날
 공치는 날
  • 김강호
  • 승인 2013.09.29 2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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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강호(1960~) -

 진눈깨비 질겅대다 얼어붙은 공사판

 하루일당 공치고 아랫목에 둘러앉아

 쓰디쓴 취기에 젖어 화투패를 돌린다

 어쩌다가 뜬금없이 팔공산에 달이 뜨면

 매화나무 가지에서 휘파람새 울고 있다

 아, 지랄! 암만 쪼여도 끗발 없는 망통패

 빈손으로 돌아온 슬라브집 처마 끝에

 별들이 쪼르르 모여 딸들처럼 웃고 있다

 대문 앞 주춤거리는 사이 얼어붙은 조각달

 약력

전북 무주 출생, 진안에서 성장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

제19회 샘터시조상 수상

제2회 이호우 시조문학상 신인상

2011년 유심 올해의 좋은 시조상 수상

작품집 : 아버지

한국시조시인협회 중앙위원, 오늘의 시조시인회의 집행위원

 식구들을 건사하기 위한 가장의 역할은 무척 어렵고 힘들다. 직장을 가진 사람도 몇 푼 되지 않은 돈으로는 살아가기가 쉽지 않은 세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직장이 없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날 벌어 그날 먹고 사는 일당노동자들이 진눈깨비가 내려 일을 하지 못하고 아랫방에 둘러앉았다. 빈손으로 돌아가기가 괴로워 쓰디쓴 술을 나눠 마시고 화투패를 돌리고 있다. 돈을 벌지 못하는 시름을 잊기 위해서일 것이다.

 하지만 손에 들어오는 화투패도 일당을 벌지 못하는 빈손처럼 8월 공산에 2월 매화 같은 망통 패만 든다.

 어쩌다가 일이 생겨 오늘은 밥벌이가 되려나 했지만 허탕이다. 망통이다.

 터벅터벅 힘없는 걸음으로 돌아와 낡은 집 앞에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처마 끝에 반짝이는 별들이 마치 웃으면서 맞아줄 딸들의 웃음 같다. 그렇지만 집으로 성큼 들어서지 못하고 주춤거리고 있다. 빈손으로 돌아온 것이 괴롭기 때문이다. 가장은 하늘에 떠 있는 얼어붙은 조각달이 자신과 같다는 생각이 드는 모양이다.

 이렇게 마무리 되는 작품을 읽으면 일당노동자의 괴롭고 힘든 삶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는 시인의 마음이 따뜻하게 느껴진다.

 제목의 `공치는 날`은 일이 없어 `공치는 날`이 아니라 필드에서 `공치는 날`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혼자만의 생각일까?

<천성수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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