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06:23 (토)
한 주를 밝히는 詩 /고향집
한 주를 밝히는 詩 /고향집
  • 서일옥
  • 승인 2013.09.22 21: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서일옥(1951~) -

 그때는 몰랐습니다
 집도 아프다는 걸

 금이 간 붉은 흙벽
 치주염에 시달리고
 고요 속 녹슨 자물통
 우울증을 앓는 중

 편두통에 모로 누운
   우물가 앵두나무

 

  늘어진 거친 피부에
  검버섯만 가득한 집

 사람이 살지 않을 땐
 집도 많이 아픕디다
 잘 벼린 낫으로 수술하듯 풀을 베고
 미안하다 미안하다 비질하고 어르면
 비로소
 쿨럭거리며
 반 눈 뜨는 고향집

 
 <약력>

경남 창원(구 마산) 출생

1990년 : 경남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 시조문학 천료

작품집 : `영화 스케치` `그늘의 무늬` `숲에서 자는 바람(동시조)`

수상 : 한국시조시인협회상, 경남시조문학상, 성파시조문학상, 마산시 문화상

(현) 경상남도문인협회 시조분과 회장, 경남문학관 이사, (전) 창녕교육지원청 교육장.

 시골이 고향인 분들이 많다. 그런 분들이 도시로 나와 살게 되자 고향에는 부모님만 남게 되었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가 들어 부모님이 병원에 가 계시거나 세상을 떠나면 고향집은 빈집이 되고 만다. 고향으로 돌아가 부모님이 살던 고향집을 지킬 사람이 없으니 빈집은 시나브로 폐허가 되어간다.

 치주염에 걸린 붉은 잇몸처럼 벽은 황톳빛을 드러낸 채 흘러내리고 자물통은 혼자 남으신 뒤 우울증에 시달리던 어머니를 떠올리게 한다.

모로 누운 앵두나무도 편두통에 시달리던 아버지나 어머니 누워 계시던 모습 같고 마당은 사람이 살지 않아 검버섯처럼 이끼가 끼어 있어 서글프다.

 천정과 방안의 벽도 곰팡이가 끼어 검버섯 돋아 늘어진 피부 같기만 하다.

부모님 계셨을 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빈집이 되어 삭아가니 시인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아프다.

 시인은 그 아픔을 조금이라도 덜기 위해 무성하게 자란 풀을 베어내고 비질을 한다.

 폐허 같기만 하던 빈집이 그나마 사람이 사는 집처럼 바뀌면서 조금은 위안이 되는 듯하다. 부모님이 계시지 않으니 집이 온전하게 눈을 뜨는 것이 아니라 반 눈을 뜨는 것 같다고 말하는 시인의 마음은 내내 미안한 모양이다. 편찮으시던 아버지 쿨럭거리던 기침소리가 들리는 듯하면서…. <천성수 시조시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