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21:52 (금)
한 주를 밝히는 시
한 주를 밝히는 시
  • 김영란
  • 승인 2013.08.04 22: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팔꽃
 - 김영란 (1965~) -

    은촛대 생일케익

    알록달록 촛불을 켜는

    어쩌면

    내 영혼의

    눈이 부신 팡파르

    꽃 초롱

    하늘계단에

    송이

    송이

    오

    르

    는

  <약력>
 제주 애월 출생
 201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

 7월이 가고 8월이 기지개를 켜면서 다리를 뻗어 가기 시작하는 무더운 여름이다. 장마라고 하지만 남쪽 지방은 비가 제대로 내리지 않고 마른 장마로 끝이 날 모양이다. 가득 넘쳐야 할 저수지의 물이 오히려 줄어들었을 정도로 비의 양이 적다. 중부는 물난리, 제주는 가뭄, 경상도는 그저 그런 정도지만 더운 건 어디서나 마찬가지다. 매미는 울고 햇볕은 따갑다.

 더위 속에 겨우 잠이 들었다가 아침에 눈을 비비고 마당에 나서면 나팔꽃이 환한 웃음으로 이슬에 젖은 채 울타리를 오르고 있다. 시인은 그런 나팔꽃봉오리를 은촛대 생일케이크에 알록달록 촛불을 켜 놓은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면서 내 영혼의 눈이 부신 팡파르라고 한 것을 보면 꽃잎을 활짝 연 나팔꽃이 매우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가왔던 모양이다.

 울타리를 타고 오르는 나팔꽃 송이송이를 하늘 계단으로 오르는 것이라 표현한 시인의 눈길이 무척 곱다.

 한 줄로 내려쓴 ‘오르는’은 나팔꽃이 울타리를 타고 오르는 모습을 나타낸 것이란 느낌이 들어 재미있다.

 장마로 인해 중부지방은 물난리가 났고 제주는 가뭄이 심하다고 한다. 힘들고 어렵지만, 모두가 나팔꽃의 팡파르를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천성수 시조시인>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