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과연 믿어도 될까. 기자가 여행사를 경영할 적에 제주도에 손님들과 함께 여행을 가면 동승한 여행사 안내원들이 매번 사용하던 멘트가 아직도 생각이 난다. 현재 손님들이 탄 버스가 지나고 있는 이곳은 서귀포시인데 왜 서귀포라는 지명이 생겼느냐고 하면 서두에 기술했던 "진시황의 사신 서불(서복)이 동남동녀 500여 명을 데리고 불로초를 구하러 제주도에 왔다가 서쪽으로 돌아갔다고 하여 서쪽 `서`자에 돌아갈 `귀`자와 포구 `포`자를 사용해 서귀포라는 지명이 생겼다"고 하던 안내원의 말이 그것이다.
왜 남해군은 서불과차라는 석각을 "서불(서복)이 이곳을 지나갔다"는 뜻으로 해석해 역사적 고증도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중국인 관광객을 대거유치 한다며 거액의 예산을 투입해 `서불과차 불로장생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군은 지난 11일 군내 상주면 양아리 서불과차 석각주변 정비를 위한 용역 최종 보고회를 갖고 서불과차(석각) 주변 탐방로 정비에 5억 원, 서불과차 공원(가칭)에 121억 원 등 총 126억 원의 공공사업비와 불로장생 타운 및 글로벌 암각화 공원 조성사업에 707억 원의 민간 투자 등 총 833억 원의 사업비를 투입한다고 한다.
지난 1974년 경남도 기념물 제6호로 지정 고시된 `서불과차`는 서불이 남해에 들렸다가 한국을 거쳐 일본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새긴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국내 사학자들 사이에도 의견이 매우 분분하다. 일단 학자들은 이 석각을 보고 `서불과차`와 관련된 것으로 보고 있으나 또 다른 사학자들은 `거란족 문자설`과 `선사시대 각석설`, `수렵 선각설`, `고대 문자설` 등 주장이 상반되고 있다.
현재 학계에서도 정확한 역사적 고증이 이뤄지지 않아 문자인지 그림인지 지금까지 해독을 하지 못하고 있는 현시점에서 거액을 투입해 `서불과차 불로장생 프로젝트`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너무나 성급하다"고 대다수 군민은 말하고 있다. 역사적 고증도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단순하게 중국 관광객을 유치하겠다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꼴이라는 것이다. 금산 중턱에 `서불과차 불로장생 프로젝트` 공원 등을 조성했다고 얼마나 많은 중국인들이 남해군을 방문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한국을 찾아오는 중국 관광객을 상대로 이 사업을 시작한다면 다시 한 번 제고했으면 한다. `서불과차` 최종보고회에서 나왔던 상주면 민의 발언이 아직도 내 귀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프로젝트 자체가 남해만의 특별한 게 있어야 되는데 그런게 전혀 보이지 않는다. 역사성보다 상업성에 주목해 진시황과 불로초 등으로 확대하고 상주면 임촌 마을을 차이나 타운으로 조성하자는 것은 곤란하다" `서불과차` 암각화는 크게 보면 금석문의 일종이다. 남해에는 다양한 형태의 금석문들이 대단히 많이 존재하고 있다. 보존의 손길이 시급한 금석문도 적지 않다. 선소 바닷가에 있는 `장량상 동정마애비`도 중국 관광객들에게는 흥미로운 장소가 될 것이다. 옛 문헌을 살펴보면 서불과 관련된 시문들이 적잖이 눈에 띈다.
833억 원 이라는 거액이 들어가는 `서불과차 불로장생 프로젝트`는 사업을 위한 사업이 돼서는 안된다. 남해군민 모두가 수긍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