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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군 `서불과차 프로젝트` 문제 있다
남해군 `서불과차 프로젝트` 문제 있다
  • 박성렬 기자
  • 승인 2013.07.30 21: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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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 성 렬 제2사회부 국장대우
 중국 진시황의 사신 서불(서복)이 동남동녀 500여 명을 거느리고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남해에 들렀다가 남겼다는 남해 금산 중턱의 서불과차(徐不過此). 동아시아 3개국을 통틀어 유일하게 보존돼 있는 금석문으로 역사적 연구가치가 높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믿어도 될까. 기자가 여행사를 경영할 적에 제주도에 손님들과 함께 여행을 가면 동승한 여행사 안내원들이 매번 사용하던 멘트가 아직도 생각이 난다. 현재 손님들이 탄 버스가 지나고 있는 이곳은 서귀포시인데 왜 서귀포라는 지명이 생겼느냐고 하면 서두에 기술했던 "진시황의 사신 서불(서복)이 동남동녀 500여 명을 데리고 불로초를 구하러 제주도에 왔다가 서쪽으로 돌아갔다고 하여 서쪽 `서`자에 돌아갈 `귀`자와 포구 `포`자를 사용해 서귀포라는 지명이 생겼다"고 하던 안내원의 말이 그것이다.

 왜 남해군은 서불과차라는 석각을 "서불(서복)이 이곳을 지나갔다"는 뜻으로 해석해 역사적 고증도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중국인 관광객을 대거유치 한다며 거액의 예산을 투입해 `서불과차 불로장생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군은 지난 11일 군내 상주면 양아리 서불과차 석각주변 정비를 위한 용역 최종 보고회를 갖고 서불과차(석각) 주변 탐방로 정비에 5억 원, 서불과차 공원(가칭)에 121억 원 등 총 126억 원의 공공사업비와 불로장생 타운 및 글로벌 암각화 공원 조성사업에 707억 원의 민간 투자 등 총 833억 원의 사업비를 투입한다고 한다.

 지난 1974년 경남도 기념물 제6호로 지정 고시된 `서불과차`는 서불이 남해에 들렸다가 한국을 거쳐 일본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새긴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국내 사학자들 사이에도 의견이 매우 분분하다. 일단 학자들은 이 석각을 보고 `서불과차`와 관련된 것으로 보고 있으나 또 다른 사학자들은 `거란족 문자설`과 `선사시대 각석설`, `수렵 선각설`, `고대 문자설` 등 주장이 상반되고 있다.

 현재 학계에서도 정확한 역사적 고증이 이뤄지지 않아 문자인지 그림인지 지금까지 해독을 하지 못하고 있는 현시점에서 거액을 투입해 `서불과차 불로장생 프로젝트`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너무나 성급하다"고 대다수 군민은 말하고 있다. 역사적 고증도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단순하게 중국 관광객을 유치하겠다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꼴이라는 것이다. 금산 중턱에 `서불과차 불로장생 프로젝트` 공원 등을 조성했다고 얼마나 많은 중국인들이 남해군을 방문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한국을 찾아오는 중국 관광객을 상대로 이 사업을 시작한다면 다시 한 번 제고했으면 한다. `서불과차` 최종보고회에서 나왔던 상주면 민의 발언이 아직도 내 귀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프로젝트 자체가 남해만의 특별한 게 있어야 되는데 그런게 전혀 보이지 않는다. 역사성보다 상업성에 주목해 진시황과 불로초 등으로 확대하고 상주면 임촌 마을을 차이나 타운으로 조성하자는 것은 곤란하다" `서불과차` 암각화는 크게 보면 금석문의 일종이다. 남해에는 다양한 형태의 금석문들이 대단히 많이 존재하고 있다. 보존의 손길이 시급한 금석문도 적지 않다. 선소 바닷가에 있는 `장량상 동정마애비`도 중국 관광객들에게는 흥미로운 장소가 될 것이다. 옛 문헌을 살펴보면 서불과 관련된 시문들이 적잖이 눈에 띈다.

 833억 원 이라는 거액이 들어가는 `서불과차 불로장생 프로젝트`는 사업을 위한 사업이 돼서는 안된다. 남해군민 모두가 수긍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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