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한 예식은 장묘다. 장묘란 지금 우리사회에서 행해지고 있는 매장과 묘지를 아울러 이르는 말로 표현되는 신조어다. 시신을 장사 지내는 방법과 산소에서 제사를 지내는 묘제를 통틀어 포괄적인 의미로도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장묘 문화는 시대에 따라 변했다. 기원전 장묘 문화는 고인돌이었고, 그 후 매장과 화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불교에서는 승려가 죽으면 화장을 하는 다비의식을 치른다. 불교를 국교로 삼은 삼국시대와 된려시대는 불교의 영향을 받아 주로 화장을 하기도 했다.
그 후 조선시대에 매장이 주된 장묘절차로 자리 잡게 된 것은 유교의 영향이 컸다. 조선시대의 이념인 유교는 충과 효를 기본 사상으로 하고 있고 또한 예를 중시해 시신 훼손을 금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서 매장과 화장이 반반으로 공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올해 들어 지인들의 장례에 여러 차례 참석했지만 묘택을 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화장해 납골당에 모시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기에 화장제와 매장제가 공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연초에는 선배 한분이, 근간에는 두 명의 후배가 일주일 간격으로 운명을 달리했다. 평소 사랑하고 존경하는 이들이라 발인까지 지켜봤는데 모두 묘택을 잡아 매장하는 것이 아니고 진주 안락공원에서 화장하여 납골당에 모시는 것을 본 바 있다.
장묘 문화가 매장에서 점차 화장으로 바뀌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나라의 대표 장묘 문화가 매장제가 된 것은 조선 중기 이후 풍수지리 사상이 서민들에게 스며들기 시작한 이후부터다. 묘택이 좋고 나쁨에 따라 자손들의 길흉에도 영향을 준다는 풍수지리 사상은 무덤에 죽은 이의 혼백이 머물고 있으므로 그것이 후손들, 즉 나의 삶에도 영향을 준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라 여겨진다.
매장 문화엔 삶과 죽음이 맞물려 있다면, 화장문화는 삶과 죽음의 단절을 의미하기에 매장제가 널리 행해져왔었다. 그러나 불교를 숭상하는 불자들이 늘어나고 불교의 다비의식을 눈여겨 본 사람들은 화장 또한 죽음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혼백의 윤회를 비는 장묘 문화라고 인정하면서 근래 들어 지인들의 장례가 대부분 화장제로 치러졌다.
이 때문에 필자가 진주 안락공원을 수차례 드나드는 동안 안락공원에 대한 불편과 아쉬움을 토로하는 문상객과 상주들은 만날 수 있었다.
진주 안락공원의 2만 9천200㎡ 면적에는 화장동ㆍ납골당ㆍ식당ㆍ주차장이 들어서 있는데 협소하기 짝이 없다. 건물 전체면적이 2천500㎡ 밖에 되지 않아 증축이 절실한 실정이다. 게다가 입구 도로폭도 좁아 장의차 한대가 겨우 지날 수 있을뿐 교차는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이곳을 드나드는 차량들은 언제나 위험하고 불편하다. 또 주차 면적도 부족하다.
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는 상황이다. 예전엔 시에서 직접 운영했지만 지금은 모 종교 단체에서 위탁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불법도 근절됐고 청결도 양호하다는 얘기 도 들려온다. 또한 7기의 화장로에서 하루 28구의 시신을 화장할 수도 있다. 다만 식당과 납골당의 규모, 주차장과 입구도로 등 주변시설의 확장이 필요하다.
부산의 영락공원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겠지만 진주 안락공원도 현대화와 더불어 확장 또한 시급한 시점이다. 사자들의 편안한 쉼터를 마련하는 것도 시정의 우선 목표로 정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안락공원을 찾는 상주들과 문상객들의 불편함도 덜어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