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묘 문화가 바뀌고 있다
장묘 문화가 바뀌고 있다
  • 박태홍
  • 승인 2013.07.22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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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태홍 본사 회장
 사람은 때가 되면 너나 할 것 없이 죽는다. 울음을 터트리고 태어난 사람은 죽을 때는 소리 없는 눈물로 생을 마감한다.

 죽음에 대한 예식은 장묘다. 장묘란 지금 우리사회에서 행해지고 있는 매장과 묘지를 아울러 이르는 말로 표현되는 신조어다. 시신을 장사 지내는 방법과 산소에서 제사를 지내는 묘제를 통틀어 포괄적인 의미로도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장묘 문화는 시대에 따라 변했다. 기원전 장묘 문화는 고인돌이었고, 그 후 매장과 화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불교에서는 승려가 죽으면 화장을 하는 다비의식을 치른다. 불교를 국교로 삼은 삼국시대와 된려시대는 불교의 영향을 받아 주로 화장을 하기도 했다.

 그 후 조선시대에 매장이 주된 장묘절차로 자리 잡게 된 것은 유교의 영향이 컸다. 조선시대의 이념인 유교는 충과 효를 기본 사상으로 하고 있고 또한 예를 중시해 시신 훼손을 금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면서 매장과 화장이 반반으로 공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올해 들어 지인들의 장례에 여러 차례 참석했지만 묘택을 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화장해 납골당에 모시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기에 화장제와 매장제가 공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연초에는 선배 한분이, 근간에는 두 명의 후배가 일주일 간격으로 운명을 달리했다. 평소 사랑하고 존경하는 이들이라 발인까지 지켜봤는데 모두 묘택을 잡아 매장하는 것이 아니고 진주 안락공원에서 화장하여 납골당에 모시는 것을 본 바 있다.

 장묘 문화가 매장에서 점차 화장으로 바뀌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나라의 대표 장묘 문화가 매장제가 된 것은 조선 중기 이후 풍수지리 사상이 서민들에게 스며들기 시작한 이후부터다. 묘택이 좋고 나쁨에 따라 자손들의 길흉에도 영향을 준다는 풍수지리 사상은 무덤에 죽은 이의 혼백이 머물고 있으므로 그것이 후손들, 즉 나의 삶에도 영향을 준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라 여겨진다.

 매장 문화엔 삶과 죽음이 맞물려 있다면, 화장문화는 삶과 죽음의 단절을 의미하기에 매장제가 널리 행해져왔었다. 그러나 불교를 숭상하는 불자들이 늘어나고 불교의 다비의식을 눈여겨 본 사람들은 화장 또한 죽음의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혼백의 윤회를 비는 장묘 문화라고 인정하면서 근래 들어 지인들의 장례가 대부분 화장제로 치러졌다.

 이 때문에 필자가 진주 안락공원을 수차례 드나드는 동안 안락공원에 대한 불편과 아쉬움을 토로하는 문상객과 상주들은 만날 수 있었다.

 진주 안락공원의 2만 9천200㎡ 면적에는 화장동ㆍ납골당ㆍ식당ㆍ주차장이 들어서 있는데 협소하기 짝이 없다. 건물 전체면적이 2천500㎡ 밖에 되지 않아 증축이 절실한 실정이다. 게다가 입구 도로폭도 좁아 장의차 한대가 겨우 지날 수 있을뿐 교차는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이곳을 드나드는 차량들은 언제나 위험하고 불편하다. 또 주차 면적도 부족하다.

 이는 얼마 지나지 않아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는 상황이다. 예전엔 시에서 직접 운영했지만 지금은 모 종교 단체에서 위탁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불법도 근절됐고 청결도 양호하다는 얘기 도 들려온다. 또한 7기의 화장로에서 하루 28구의 시신을 화장할 수도 있다. 다만 식당과 납골당의 규모, 주차장과 입구도로 등 주변시설의 확장이 필요하다.

 부산의 영락공원과 비교하는 것은 무리겠지만 진주 안락공원도 현대화와 더불어 확장 또한 시급한 시점이다. 사자들의 편안한 쉼터를 마련하는 것도 시정의 우선 목표로 정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안락공원을 찾는 상주들과 문상객들의 불편함도 덜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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