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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낯의 시대
민낯의 시대
  • 박재근 기자
  • 승인 2013.07.21 21: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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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재근 본사 전무이사
 언론의 순기능이야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여대생 청부살인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대기업 대표 부인이 대학병원 VIP 병실에서 4년 동안 호의호식한 것을 보도한 것은 최근의 사례다. 또 법을 만든 의원들이 자기 차는 불법으로 개조해 버젓이 타는것이나, 4대강 사업에 대한 감사원의 감사결사도 정권마다 달라지는 이상한 일도 언론에 의해 드러났다.

 이와는 달리 언론을 향해 한쪽만 보지 말라는 호소는 15년이나 억울한 삶을 산 한 희생자의 절규였다. 또 국내 최고의 재벌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의 아들 부정입학 사건 보도는 본질이 빠진 한국 언론의 현실이 극명하게 드러낸 민낯이다. 그런데도 곁가지에 우선 논란을 자초하는 일이 잦다. 국민, 도민들은 본질을 훤히 꿰뚫고 있는데도 그러하다면 언론의 본질과는 다른 `민낯의 폐해`라고 할 수 있다. 영화 `7번방의 선물`은 말한다. 미성년자 강간살해라는 추악한 죄명으로 15년간이나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정모(79) 씨. 그 영화의 모티브가 될 만큼 황당하기 그지없는 일을 당한 그는 언론을 향해 한 가지만 당부한다고 했다. "제발, 한쪽 말만 듣지 말라고."

 1972년 9월, 춘천에서 파출소장의 어린 딸이 숨진 채 발견된 후 시신에서 발견된 체모(體毛) 등이 정씨 것이 아니어서 풀려나기도 했다. 하지만 범인 검거에 날짜까지 명시하면서 다시 체포해 범인으로 몰렸다. 결국 15년간 옥살이를 하고 모범수로 나온 정씨는 2009년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고 이를 근거로 최근 민사소송을 해 23억 6천만 원의 배상판결을 받았지만 국가기관이 가한 어처구니 없는 인권유린과 더러운 오명 속에 살아야 했던 고초에 비하면 약과다. 국가기관의 잘못된 과거지만 이들만큼 부끄러움을 느껴야 할 곳은 언론이다.

 전북 남원에서 목사로 활동하는 정씨는 당시 "언론은 내 얘기에는 눈을 감고 귀와 입을 막았고 변태성욕자ㆍ성도착자로 규정 인격을 말살한 선정 보도를 냈다"고 말했다. 다른 어린애도 건드렸을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은 물론 실명ㆍ나이ㆍ주소지까지 세세하게 보도하여 경찰 이야기만 기사화할 뿐 자신의 주장에 귀를 기울인 미디어는 단 한 곳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체포ㆍ구속 때 호들갑을 떨다가도 이후에는 무죄를 받건 말건 무신경한 우리 언론의 모습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영훈국제중학교 입시비리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아들이 사회적 배려 대상자로 입학한 것에서 촉발됐다. 그 기준이 무엇인지 몰라도 할아버지가 우리나라 최대 재벌 그룹이자 세계적인 기업의 회장이고 아버지가 부회장이면 됐지 중학교 입시에서 그런 배려까지 한단 말인가. 그것만으로도 부족해 성적까지 조작했다니.

 이 중학교가 지난 4년 동안 14명을 부정 입학시키기 위해 867명의 성적을 조작한 것으로 드러나 학부모들에게 돈을 받고 성적 조작을 지시한 혐의로 학원 이사장을 구속 기소하는 등 지난 17일 18명을 사법처리했다.

 이는 특성화 학교가 사실상의 귀족학교로 변질됐으며 우리 사회 특권층들이 신분 세습의 통로로 활용됐다는 사실이 드러난 충격적인 사건이다. 하지만 "이 부회장 아들이 입학한 2013년 입시에서는 학부모에게 돈을 받은 정황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론은 학교 측이 스스로 특정 학생의 성적을 조작, 돈도 받지 않고 알아서 성적으로 조작했다는 말인데 이런 설명은 정말 납득하기 어렵다. 아무튼 이재용 부회장의 아들이 부정 입학했다는 건 이 사건의 성격을 단적으로 드러냈고 기소 때 이재용 없는 영훈중 보도는 사건의 본질을 외면하는 기사란 지적이다. 그 본질을 외면한 게 우리나라 대다수의 언론사다.

 전국 단위 종합 일간지와 경제지 중 수사 결과를 보도하면서 이재용 부회장의 실명을 적시한 언론은 K신문과 K일보, S일보, C일보, H일보 밖에 없었다한다.

 재벌 회장님의 손자가 우리 사회의 어려운 환경에 있는 아이들로부터 이런 기회마저 빼앗아 간다는 것은 `갑질` 중에서도 `더러운 갑질`이 아닐 수 없다.

 언론도 공동선이란 게 없는 것 같다. 이해관계(?)에 따라 보도의 본질을 달리하는 것으로 여겨질 뿐이다. "학교의 추악한 민낯이 드러났다"고 보도하면서도 정작 부유층의 추악한 민낯은 드러내지 않은 게 한국 언론의 민낯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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