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변호
어떤 변호
  • 김루어
  • 승인 2013.07.02 22:19
  • 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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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 김루어
 여름은 일하기 힘든 계절이다. 날씨 때문이다.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한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하고 싶다고 하고 하기 싫다고 하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이 일이라는 데에 생활인들의 비애가 있다. 그렇게 한다면, 직장인이라면 한 달을 못 넘겨 사직서를 써야 할 것이고, 자영업자라면 일정한 손실을 감수할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머뭇거리면 바로 뒤처질 만큼 경쟁이 치열한 시대, 자고 나면 눈썹까지 치떠야 하는 지금과 같은 고물가 시대에 이런 만용을 부릴 수 있는 이가 있다면,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네는 존경을 받을 지도 모르겠다.
 이럴 때 나는, 첫 직업이 평생 직업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 직업선택에 신중해야 한다, 고 말하는 교과서 기술자들의 말을 반사적으로 되새기게 된다. 그네들 말씀을 기억나는 대로 옮겨 본다. 첫째, 일이 적성에 맞아야 한다. 일이 적성에 맞지 않으면, 일이 즐겁지 않고, 일이 즐겁지 않으면 오래 계속할 수가 없다. 둘째, 생활을 보장해줄 정도의 보수는 담보되는 일이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일에 보람을 느낄 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그네들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자신의 능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 일이어야 한다는 대전제를 든다.
 구구절절이 옳은 말씀이다. 하지만 이는 원칙론 아니, 이상론에 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현실에서 이런 조건을 충족시키는 직업을 갖는 이는 아주 소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직업을 갖지 않을 수는 없다. 일하지 않으면 소득이 없을 것이고, 소득이 없으면, 생존이 위협을 받을 것이기에. 물론, 물려받은 재산이 있어 직장을 구하는데 여유가 있는 계층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평생 놀고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재산을 가진 이는 드물다. 그래서, 전술한 조건에서 일정한 타협을 하여 직장을 선택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실이다.
 타협과 선택을 한다는 말은, 원하는 바는 아니지만 자신의 능력과 상황을 인정하여 현실을 수용한다는 뜻일 터이다. 여기서 주목하여야 할 점은, 타협과 선택이 기준위로 갈수록 정신노동에 가까운 직업이 되고, 기준아래로 갈수록 육체노동에 가까워진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이 기준자체가 플라톤 이래의 깊고 오래된 편견에 뿌리를 둔 이원론을 직업관에 투영시킨, 세로축은 없고 가로축만 있는 좌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좌표에 발을 딛는 이는 누구나 자신의 위상에 따른 평가를 누리거나 감수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어있다.
 현실에서는 이 위상 차이를 근거로 직업은 귀천으로 분류되고, 그 분류는 제대로 된 비판없이 관습적으로 통용되기까지 한다. 하지만 현실을 지배하는 이런 이원론적인 직업관의 잣대는 온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정신과 육체는 상하나 고저로 나뉘어 질 수 있거나, 우열로 평가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신은 육체안에 깃들어 있고 육체는 정신을 감싸고 있다. 정신과 육체는 안과 밖의 관계일 뿐이다. 이를 노동에 적용하면, 사람은 정신만으로, 혹은 육체만으로 일을 할 수는 없다. 단지 어느 쪽을 더 많이 쓰느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정신과 육체 양쪽을 다 쓴다.
 육체를 많이 쓰는 노동 가운데 하나는 아마 농삿일일 것이다. 얼마 전 나는 가까운 문우네 농장에서 일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기껏 하루 일하고 이틀이나 몸살로 드러누웠다. 나 자신의 태타(怠惰)한 일상이 많이 부끄러웠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네들 부부가 안쓰러웠다. 왜냐하면, 일년 내내 쉬는 날 없다시피 땀을 흘린 그네들 노동에 대한 보상이 너무나 초라했던 것이다. 20년 이상을 농사를 짓는 동안 그네들은 딱 한 번 재미를 보았을 뿐 매년 현상유지에 급급해왔다고 한다. 이런 실정은 그네들의 경우만이 아니라 농촌의 일반 현황이라고 했다.
 부가가치의 차이니 협상가격차니 하는, 학생시절에 들은 지식으로 농산물이 공산물과 부등가(不等價)로 교환된다는 것은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지만 현실이 그 정도이리라고는 생각지 못한 내게는 그네들 말은 충격일 수 밖에 없었다. 또 다른 충격은, 사람들이 땀흘리는 일을 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도리없이, 일손으로 외국인 노동자를 쓴다는 사실이었다. 며칠 전, 한중 FTA가 급물살을 탈 것 같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한중 FTA가 체결되면, 가장 타격을 입게 될 농촌에 대한 심층분석 기사가 언론에 드물다는 점이다.
   중국 농산물은 우리 농산물에 비해 가격이 절대 비교우위에 있다. 게다가, 산동반도에서 중국농산물이 선적되면 하루 안에 우리식탁에 오를 수 있다하니 우리 농업에 입힐 타격이 눈에 보이는듯하다. 아마, 정부당국도 이에 대한 대책은 마련하고 있겠지만 좀더 전향적인 자세로, 농업선진국에서 시행하고 있는 부족불(不足弗 : deficiency payment)이나 최저가격 보장같은 제도 도입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소비자들도 가격이 떨어진다고 좋아할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수입 농산물들의 질과 안전성에 대한 불안은 날로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전문가그룹 일각에서는, 우리 사회는 소프트웨어 산업기로 진입했다고 한다. 몇몇 돋보이는 산업의 흥성만으로 볼 때 공감되는 바 있는 말이지만, 그 속뜻이 일차산업은 버리고 되는 산업에 하중을 모두 싣자는 뜻이어서는 곤란하다. 왜냐하면, 하드웨어없이 소프트웨어가 장착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노동력까지 수입되는 시대에 웬 잠꼬대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그 논리대로 하자면, 일차산업에 종사하던 이들은 이 땅을 떠나거나 죽어야 한다. 경제보다 사람이 먼저다. 이 원칙하에, 육체적으로 땀흘리는 계층에 대한 정책적 배려가 아쉬운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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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윤 2013-07-04 10:03:44
안전한 먹거리를 찾아 보지만 가벼운 지갑으론 쉽게 손이 가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직거래 장터를 활성화 한다고 하지만
유통구조를 빤히 알고 있는 제가 납득이 되지않는 가격을 보면
과연 소비자 편의 직거래인가 싶기도 합니다.
값싼 중국산이 밀려온다면,
지금도 여러가지 말이 참 많은데 걱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좀 더 안전한 먹거리 개방에 대한 정부의 현명한 대책을 기대해 보지만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은 뭔지...

이서윤 2013-07-04 09:56:57
직업이란 것.
특히 첫 직장이란 것의 중요성에 대해 솔직히 공감합니다.
저도 평생직장을 들어갔으나 과로로 인한 건강이상으로 도저히 일을 할 수가 없어
퇴직을 하고 말았습니다.
지금의 일을 하기전까지 젊은 저는 제 건강을 일으키려고 안해본 것이없고,
그에 대한 금전적인 부담도 많이 짊어 졌습니다.

그러기에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우리 먹거리란 정말 중요합니다.

한정호 2013-07-04 09:33:00
작가님의 논리적 사고에 백배 공감합니다..
경제관념만 우선하다보니 일에서 얻어지는 즐거움이 사라진지는 이미 오래이고
사회와 일 그리고 생존이라는 균형이 무너진지는 오래전이기에
이사회에서 인간으로서의 행복 권리에 대한 변호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봅니다..
당장의 기계적인 논리에서의 경제정책은 후손의 행복권리마져 빼앗아갈것이기에
사람이 먼저인 경제정책이 필요한 시기가 아닐까 잠시 생각해 봅니다..

이현준 2013-07-03 14:41:32
정부와 관련기관이 제정신을 가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언론과 사회를 리드해가는 집단들, 정치인들, 학자들...모두 제정신 가지고 고민해야 할일이라는 생각입니다. 가격과 품질이 정말 잘 책정된 것인지, 질은 안전한것인지...식품과 관련된 범죄의 처벌, 관련법이 강화되어야 할 것이 많다는 생각도 듭니다. 좁은 지면, 정해진 시간에 편성되는 언로들의 역할에 기대를 하게되지만 시류에 너무 편승된 느낌을 지울수가 없다는...

이현준 2013-07-03 14:35:24
일에 대한 이야기는 차제에 두고 먹거리에 대한 말을 더 하고 싶습니다. 우리 농민들이 외국산과 제대로 경쟁우위에 되게 농사를 짓는다면 문제 없다는 생각입니다. 상인들도 문제지요. 좋은것을 수입하면 될것인데 최하위 등급을 가져와 국내산으로 둔갑시킨다든지, 가격을 조절하여 붙여 폭리를 취한다든지...모두가 우리나라 사람들의 문제라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