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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책갈피>‘도시의 쓰레기 탐색자’‘잽’
<새 책갈피>‘도시의 쓰레기 탐색자’‘잽’
  • 경남매일
  • 승인 2013.06.24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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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시의 쓰레기 탐색자
쓰레기 더미에서 건져 올린 인문학적 고찰

‘도시의 쓰레기 탐색자’
김영배 옮김
(시대의창… 1만 8천원)

 2001년 12월의 어느 날 돌연 강단을 떠난 한 대학교수가 향한 곳은 쓰레기로 뒤덮인 세계였다.

 그는 그곳에서 양복을 벗고 노숙자들이나 입음 직한 넝마를 걸쳤고, 학문을 연구하는 대신 쓰레기 더미에서 쓸만한 것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것도 장장 8개월씩이나.

 비현실적으로 들리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현재 텍사스 크리스천대에서 사회학, 범죄정의학, 인류학을 가르치는 제프 페럴 교수.

 페럴 교수는 미국 애리조나대의 종신교수직을 버리고 고향인 텍사스주 포트워스로 돌아와 뚜렷한 소득 없이 길거리에서 살아가는 8개월간의 대장정을 시작한다.

 신간 ‘도시의 쓰레기 탐색자’는 그 8개월간 페럴 교수가 보고 겪은, 버려진 물건을 재활용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가 만난 사람들은 불법 쓰레기 수집인부터 노숙자, 금속 수집가, 재활용 운동가, 대안건축물 건축가, 아웃사이더 아티스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선택에 의해서든 필요에 의해서든 그들은 폐기업자나 공중위생 관련 기관보다 한발 앞서 나날이 쌓여가는 쓰레기더미를 분류하고 도무지 가치 있는 것이라곤 없어 보이는 것에서 새로운 가치를 찾아냈다.

 이들을 설명하는 ‘쓰레기 탐색자’라는 표현은 적절해 보인다.

 아울러 이 책을 읽고 나면 ‘쓰레기’라는 단어가 전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올 것이다. 얼마든지 다시 활용할 수 있고 심지어는 판매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페럴은 도시의 쓰레기 탐색자들의 일상을 소개할 뿐만 아니라 그 이면에 감춰진 우리의 ‘버리는 문화’를 사회학자 특유의 통찰력으로 예리하게 비판한다.

 과거 어느 때보다도 심각한 소비문화 속에서 그칠 줄 모르는 소비 풍조의 재생산만이 이뤄지는 오늘날의 도시를 부드럽지만 날카롭게 조망한다.

 저자가 직접 찍은 풍부한 사진자료를 통해 ‘소비문화의 그늘’을 엿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360쪽

▲ 잽
뒤죽박죽 곳곳 삶 속에 생겨난 깊은 우물
‘잽’
김언수 지음
(문학동네… 1만 2천원)

 세상이 무너진 것 같은 깊은 낙담 중에도 박지성 선수의 열애 상대가 누군지 궁금한 게 인간이고, 제 손으로 일을 망쳐 맞아들인 불운을 ‘오늘의 운세’ 탓으로 돌리는 게 인간이다. 제 마음의 출렁임도 온전히 알지 못하는 인간들이 엉켜 살면서 빚어내는 무늬에 패턴이나 규칙 같은 게 있을 리 없다.

 하지만 이처럼 뒤죽박죽인 곳곳에 삶의 깊은 우물이 생긴다. 지루하고 속된 삶에서 불쑥불쑥 뿜어져 나오는 우리의 온갖 감정과 욕망을 솔직하게 대면하는 자리다. 김언수(41)의 새 소설집 ‘잽’에는 곳곳에 그런 우물이 있다.

 온통 한심한 인간들이다. 건달 앞에선 꼼짝도 못하면서 같이 사는 술집 여자를 쥐어패는 웨이터(‘단발장 스트리트’), 아버지 약값에 보탤 300만 원을 어렵사리 손에 쥐고는 여자와 한 번 자보려고 수십만 원 날리며 끙끙대는 백수 장남(‘빌어먹을 알부민’), 간신히 전임 자리 얻고 살 만해지니 알코올 중독에 넘어진 대학 교수(‘하구’)까지 멀쩡한 인간이 없다.

 남이 내다버린 물소가죽 소파를 낑낑대며 주워와 놓고 엉망진창인 삶을 소파 탓으로 돌리질 않나(‘소파 이야기’), 반성문 한 장이면 끝날 일을 굳이 백지 반성문 내놓고 졸업할 때까지 앙갚음당하질 않나(‘잽’) 등등 몇 대 패서 철 들게 하고 싶은 인간들이 줄줄이다.

 그런데 이 인간들, 읽다 보면 불쑥 옆에 와 앉아 있다. 직진하고 정면승부하는 게 제일 깔끔한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제 속의 복잡한 심사를 다스릴 수 없어서, 좀스럽고 돼먹잖은 이유를 갖다 붙이며 굳이 어렵게 사는 우리의 얼굴이 이 인간들 얼굴에 촘촘히 박혀있다.

 고전소설은 ‘거룩한 얘기’를 하지만 스스로 ‘너 거룩하냐?’라고 물었을 때 끄덕일 수 없었다는 게 작가 말이다. 명랑하게 찧고 까불고 놀다가도 집에 가는 길에 어딘지 서러워 눈물 뚝뚝 흘리는 인간의 복잡한 속내, 잔인과 재미처럼 서로 어울릴 수 없을 것 같은 것들이 뒤엉켜 인간을 툭툭 치는 삶의 적나라함이 소설집에 담겼다. 2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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