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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관광 100선, 1위 진주성
한국 관광 100선, 1위 진주성
  • 박태홍
  • 승인 2013.06.10 23: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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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태홍 본사 회장
 진주성으로 들어가는 촉석문 좌측 성벽에는 ‘한국의 관광 100선,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국내 관광지 1위 진주성’이라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지난해부터 한국관광공사가 실시하고 있는 우리나라 유명 관광지 100곳을 선정한 뒤 인기도에 따라 순위를 매기는 한국관광 100선에서 올 3월 진주성이 영예의 1위를 차지한 것이다.

 이 같은 관광지 순위 매김이 뭐에 그리 대수냐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는 몰라도 이 같은 현실이 시사하는 바는 크다. 진주의 자존심과 더불어 지역 경기 활성화에도 큰 비중을 차지함은 물론 진주시의 경사이기 때문이다. 곳곳에 축하 플래카드를 내걸어 자축했으면 하는 심사도 뒤따를 테지만 이를 지키고 보존하는 일이 우선 아닌가 싶다.

 지난해 미국의 뉴스 전문 채널 CNN의 종합여행 CNNGO에서 선정한 한국 관광지 베스트 50에 진주 촉석루가 이름을 올리면서 국제적인 유명세를 탔던 진주의 대표 관광지 진주성이 이번에는 이 같은 결실을 거둔 것이다.

 진주성의 면적은 17만 6천800㎡이며 석성의 둘레만도 1천700m에 달한다. 진주의 역사와 문화가 집약돼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진주인만이 가질 수 있는 자긍심과 더불어 묵상의 장소로도 어느 관광지 못지않음이니라.

 이곳은 천 년을 넘나든다. 고려 태조 때(서기 940년) 진주라는 명칭이 붙여졌으니 천년고도 진주라 할 수 있다.

 촉석문을 들어서 우측 계단을 오르면 호국의 종과 종각이 있고 다시 돌아서 계단을 오르면 진주성 임진대첩 순의단이 거룩하고 웅장한 모습으로 우리를 맞는다. 옷깃을 여미고 되돌아서 잘 포장된 소로를 따라 걸으면 촉석정충단비가 있고 김시민 장군 전공비가 눈에 들어온다.

 진주 목사 김시민이 3천800여 명의 군사로 2만을 넘는 왜적을 물리친 공을 후세에 알리기 위해 1619년 7월에 세운 공적비다. 오솔길을 걸어 나오다 보면 임진왜란 때 사용했던 대포ㆍ천자ㆍ지자ㆍ현자총통이 일렬로 전시돼 있다. 화약 냄새와 피로 얼룩졌을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인 진주대첩, 그때 그 당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다시 서쪽으로 경사진 길을 오르면 영남 포정사가 나온다.

 조선조 말 경상남도 관찰사의 관문 역할을 했던 영남 포정사는 진주의 상징이다. 하지만 부산에 도청을 내주고 지금은 창원으로 옮겨갔다. 이 때문에 진주교를 가설할 수 있었고 혁신도시가 들어서게 됐다는 세간의 카더라 통신에 연연할 수만은 없지만 조선조 말에서 1925년 부산으로 도청이 옮겨가기 전까지 진주는 경상남도 관찰사가 있었고 도청 소재지였다. 병사 및 관찰사 이외의 모든 사람은 말에서 내려가라는 하마비가 아직도 그때를 회상이라도 하라는 듯 영남포정사 앞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곳을 지나면 목사 이수일의 유애비 성이성의 청덕유애비 등 30여 기의 비석군이 잘 정돈 돼 있다. 기록을 돌에 새겨 오늘날까지 전해져 오게 한 선조들의 지혜와 풍습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소로를 따라 걷다보면 고려 공신 하공진을 모신 경절사가 있고 은열공ㆍ정신열ㆍ문충공ㆍ정천익 선생을 모신 청계서원이 있다.

 또 임란당시 승군의 근거지로 이용됐던 호국사가 지금은 불교의 도량으로 성지내 자리하고 있으며 임란 시 공을 세운 이들의 신위와 사액을 모신 창렬사가 고색창연한 모습으로 우리들의 눈길을 끈다. 성지 내 서쪽에는 서장대 북쪽에는 북장대가 정면 3칸, 측면 2칸 팔작지붕 다락집형 건물로 중수는 했지만 지금까지 남아있다.

 성지 내 야외공연장을 지나면 국립진주박물관이 나온다. 이곳을 가면 역사의 향기를 흠뻑 마실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게다가 성지 내 곳곳에는 미술학도들이 이젤을 받치고 풍경화 그리기에 여념이 없다. 그림 구경을 잠시하다 중앙소로를 지나면 3ㆍ1운동기념비, 개천예술탑이 서 있고 큰 행사를 할 수 있는 제법 큰 공터와 매점이 있다. 푸른 잔디로 잘 조성된 이 공터에는 조선시대 우물이 발견된 곳으로 지금은 복원 사업이 진행중이다.

 이 곳을 비스듬히 따라 오르면 제말장군과 그의 조카 제홍록의 쌍충사적비가 정조 16년인 1792년에 세워진 것으로 표기돼 있다. 그 다음이 진주성의 메인 이벤트라 할 수 있는 촉석루가 있고 의암ㆍ사적비ㆍ의기사 등 논개와 관련된 유적이 있다.

 진주성의 수목은 어느 관광지에 비해 손색이 없고 울창하다. 고려시대에서 조선조시대에 이르기까지 심어진 수목은 지금 우리들에게 피톤치드라는 유익한 생물학적 요소를 내품으며 관광객들의 발길을 끌고 있는 것이다. 다만 이 거목이 성벽의 파손을 위협하고 있다하니 심히 걱정스럽다. 아무튼 진주성은 역사의 보고다. 그리고 국민 모두가 한 번쯤은 다녀갈만한 관광지임에는 틀림이 없다. 고로 진주시는 더욱 더 보살피고 가꿔 명실상부한 관광명소 1위의 자리를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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