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모래 맛이다. 내 안에 모래가 꽉 차 있기 때문이다. 종일 앉아 있어도 글 한 줄 쓰지 못했다. 요즘 나는 사막에 사는 것 같다, 나무 한 그루 없는 사막에. 오늘처럼 글이 안 될 땐 밖에 나가 바람이라도 쐬는 게 내 버릇이다. 하지만, 앞으로 얼마간은 그럴 수도 없다. 다리가 온전치 않기 때문이다. 열흘 전에, 일 때문에 나갔다 건널목을 건너다 허방을 짚어 발목을 접었다. 파스정도만 바르면 되는 대수롭지 않은 골절쯤으로 여겼는데, 그날 밤 발목이 붓고 못 견디게 아파, 결국 깁스까지 하게 되었다. 3주 이상이나 목발을 짚고 다녀야 한단다.
밖에 나가는 대신, 온종일 음악만 들었다. 민요, 클래식, 가곡, 팝, 가요…… 그런데, 음악들도 모래 맛이었다. 귀에 들어오는 것은 모래알뿐이었던 것이다. 아마, 내 마음이 사막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때때로 요즘처럼 사막에 던져진다. 발목을 다친 일말고도 나를 둘러싼 환경에, 단기간에 풀리기 어려운 몇몇 걱정거리가 생긴 탓이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생긴…… 그렇지만 맞부딪치지 않을 수는 없는 일들. 이러한 것들이 내 삶을 사막으로 만든다. 경험적으로 보아 나는 사막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 걱정거리들이 해결되기까지는.
가슴이 답답해 현관문을 나섰다. 발목 때문에 멀리 나갈 수는 없어 조심조심 목발을 짚고 옥상에 올라갔다, 왜 이런 걱정거리들이 주기적으로 생기는지 모르겠다고 중얼거리며. 옥상은 비어 있었다. 옥상 끝에 간이의자를 당겨 앉았다. 바람이 시원했다. 사는 곳이 고지대라 세상이 내려다보인다. 내려다보는 것은 올려다보는 것보다 좋은 일이다. 세상을 내려다보듯 내 인생도 이렇게 내려다보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고 생각하다, 문득, 누군가가 내 인생을 내려다보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오싹 소름이 끼쳤다. 운명!
젊은 시절, 나는 운명이라는 말을 인생에 적용하는 것 자체에 반감을 가졌다. 이런 자술(自述)은 내가 치기(稚氣)어린 인간임을 실토하는 증거에 다름 아니겠지만, 부끄럽게도 나는 중년에 접어들 때까지도 거기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데, 마흔 좀 넘어 내 삶이 뿌리째 뒤집혔다. 내 잘못이 아닌 일이 원인이 되어 일어난 결과였다. 처음엔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바이런은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유명해져 있더라고 했지만, 유감스럽게도, 나는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사막에 던져져 있었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없는 사막에.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산다는 것은 몸서리치게 두려운 대사업임을. 그리고 그때 비로소 그 이유를 알았다, 왜 몇몇 고인(古人)들이 인생을 나그네길이라는 비유에 부연 특정하여 사막 길로 빗대었는지를. 처음에 나는 이 비유가 뜨거운 기후와 열사(熱砂)의 악조건이 인생길의 험함과 닮았기 때문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 비유에는 더 깊은 뜻이 있었다. 험하기로만 치면, 사막 길 이외 다른 길도 그 못지않게 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길들은 사막 길처럼 있던 길이 없어지고 없던 모래 산이 새로 생기는 것과 같은 돌발성과 의외성은 없다.
길 떠나는 이는 누구나 행장을 최소한으로 줄인다. 인생길도 마찬가지다. 행장을 최소한으로 줄이지 않으면, 몸이 무거워 길이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연과학이 발달해서일까? 아니면, 길 떠남이 비유임을 모르는 탓일까? 요즘 길 떠나는 이들은 그 행장이 산(山)같다. 인생길에서 행장을 줄인다 함은 욕망을 비워낸다는 이야기일 터이다. 법정(法頂)이 평생 화두로 삼은 무소유(無所有)는 그 좋은 본보기다. 이렇게 하더라도 인생길은 사막길이어서 위험하다, 앞을 내다볼 능력이 없는 우리 인간으로서는 대비가 불가능한 돌발성과 의외성 때문에.
나는 이런 돌발성과 의외성에 운명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러면, 이 운명에서 벗어날 길은 없는 것일까? 나는 여기에 대답할 능력이 없다. 있다면, 요즘처럼 사막에서 모래를 씹는 기분으로 생활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몇몇 고인들이 비유하듯, 인생길이 사막길이 맞다면, 물 한 방울 없는 사막에도 그 아래에는 어디엔가 수맥이 흐르고 있다는 금언은 공유하고 싶다. 거기 더하여, 쌍봉(雙峰)낙타까지는 아니더라도 단봉(單峰)낙타 한마리쯤은 사막을 건너는 동반자로 함께 하고 싶다는 바람ㅡ물론, 이 또한 비워야 할 욕망 혹은 욕심이겠지만!
그 강을 건너기 위해 치루워야할 명제들이 삶이라는 이유로
얼마나 큰 감성과 싸워야할까 그런 생각이 드는군요..
사막의 모래 한줌 역시 이유있는 편린이라 생각하기에
작가님의 허기짐에 턱고이며 공감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