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을 건너는 법
사막을 건너는 법
  • 김루어
  • 승인 2013.06.07 00:15
  • 댓글 5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시인 김루어

   오늘은 모래 맛이다. 내 안에 모래가 꽉 차 있기 때문이다. 종일 앉아 있어도 글 한 줄 쓰지 못했다. 요즘 나는 사막에 사는 것 같다, 나무 한 그루 없는 사막에. 오늘처럼 글이 안 될 땐 밖에 나가 바람이라도 쐬는 게 내 버릇이다. 하지만, 앞으로 얼마간은 그럴 수도 없다. 다리가 온전치 않기 때문이다. 열흘 전에, 일 때문에 나갔다 건널목을 건너다 허방을 짚어 발목을 접었다. 파스정도만 바르면 되는 대수롭지 않은 골절쯤으로 여겼는데, 그날 밤 발목이 붓고 못 견디게 아파, 결국 깁스까지 하게 되었다. 3주 이상이나 목발을 짚고 다녀야 한단다.
 밖에 나가는 대신, 온종일 음악만 들었다. 민요, 클래식, 가곡, 팝, 가요…… 그런데, 음악들도 모래 맛이었다. 귀에 들어오는 것은 모래알뿐이었던 것이다. 아마, 내 마음이 사막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때때로 요즘처럼 사막에 던져진다. 발목을 다친 일말고도 나를 둘러싼 환경에, 단기간에 풀리기 어려운 몇몇 걱정거리가 생긴 탓이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생긴…… 그렇지만 맞부딪치지 않을 수는 없는 일들. 이러한 것들이 내 삶을 사막으로 만든다. 경험적으로 보아 나는 사막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 걱정거리들이 해결되기까지는.
 가슴이 답답해 현관문을 나섰다. 발목 때문에 멀리 나갈 수는 없어 조심조심 목발을 짚고 옥상에 올라갔다, 왜 이런 걱정거리들이 주기적으로 생기는지 모르겠다고 중얼거리며. 옥상은 비어 있었다. 옥상 끝에 간이의자를 당겨 앉았다. 바람이 시원했다. 사는 곳이 고지대라 세상이 내려다보인다. 내려다보는 것은 올려다보는 것보다 좋은 일이다. 세상을 내려다보듯 내 인생도 이렇게 내려다보며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라고 생각하다, 문득, 누군가가 내 인생을 내려다보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오싹 소름이 끼쳤다. 운명!
   젊은 시절, 나는 운명이라는 말을 인생에 적용하는 것 자체에 반감을 가졌다. 이런 자술(自述)은 내가 치기(稚氣)어린 인간임을 실토하는 증거에 다름 아니겠지만, 부끄럽게도 나는 중년에 접어들 때까지도 거기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데, 마흔 좀 넘어 내 삶이 뿌리째 뒤집혔다. 내 잘못이 아닌 일이 원인이 되어 일어난 결과였다. 처음엔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바이런은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유명해져 있더라고 했지만, 유감스럽게도, 나는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사막에 던져져 있었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없는 사막에.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산다는 것은 몸서리치게 두려운 대사업임을. 그리고 그때 비로소 그 이유를 알았다, 왜 몇몇 고인(古人)들이 인생을 나그네길이라는 비유에 부연 특정하여 사막 길로 빗대었는지를. 처음에 나는 이 비유가 뜨거운 기후와 열사(熱砂)의 악조건이 인생길의 험함과 닮았기 때문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 비유에는 더 깊은 뜻이 있었다. 험하기로만 치면, 사막 길 이외 다른 길도 그 못지않게 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 길들은 사막 길처럼 있던 길이 없어지고 없던 모래 산이 새로 생기는 것과 같은 돌발성과 의외성은 없다.
 길 떠나는 이는 누구나 행장을 최소한으로 줄인다. 인생길도 마찬가지다. 행장을 최소한으로 줄이지 않으면, 몸이 무거워 길이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연과학이 발달해서일까? 아니면, 길 떠남이 비유임을 모르는 탓일까? 요즘 길 떠나는 이들은 그 행장이 산(山)같다. 인생길에서 행장을 줄인다 함은 욕망을 비워낸다는 이야기일 터이다. 법정(法頂)이 평생 화두로 삼은 무소유(無所有)는 그 좋은 본보기다. 이렇게 하더라도 인생길은 사막길이어서 위험하다, 앞을 내다볼 능력이 없는 우리 인간으로서는 대비가 불가능한 돌발성과 의외성 때문에.
 나는 이런 돌발성과 의외성에 운명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러면, 이 운명에서 벗어날 길은 없는 것일까? 나는 여기에 대답할 능력이 없다. 있다면, 요즘처럼 사막에서 모래를 씹는 기분으로 생활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몇몇 고인들이 비유하듯, 인생길이 사막길이 맞다면, 물 한 방울 없는 사막에도 그 아래에는 어디엔가 수맥이 흐르고 있다는 금언은 공유하고 싶다. 거기 더하여, 쌍봉(雙峰)낙타까지는 아니더라도 단봉(單峰)낙타 한마리쯤은 사막을 건너는 동반자로 함께 하고 싶다는 바람ㅡ물론, 이 또한 비워야 할 욕망 혹은 욕심이겠지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5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한정호 2013-07-05 21:26:11
사막의 길을 비유하여 레테의 강이라 표현하고 싶습니다..
그 강을 건너기 위해 치루워야할 명제들이 삶이라는 이유로
얼마나 큰 감성과 싸워야할까 그런 생각이 드는군요..
사막의 모래 한줌 역시 이유있는 편린이라 생각하기에
작가님의 허기짐에 턱고이며 공감을 합니다..

이현준 2013-06-10 14:43:16
모아두는 버릇에서 아직도 버리는 것보다 쌓이는 것이 더 많아 가족들로부터 핀잔을 듣는 일이 다반사다. 그래도 나는 매일 버리기를 하고 있다. 가볍게 하기 위해서다. 옛것들을 들여다보면 참으로 한심하게도 무용지물이 어찌나 많은지...그 많은 짐을 지고 예까지 올라 왔으니 이제는 하산해야 할 때, 가볍게 할일이다. 또 이사하게 되면 이삿짐도 줄여야 하리라...욕심이라는 사치가 유혹하지만 버리고 떠나기를 할 일이다.

이현준 2013-06-10 14:36:21
사막은 시인의 말처럼 대비가 불가능한 돌발성이 많으니 우리의 삶의 길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산을 오르는 것과 비유해도 그렇다.짊어지고 있는 무거운 것들과 살아가는 우리네가 다시 마음 고쳐 먹어야 할 일이 많을것 같다. 그냥 한마디로 행장을 줄여 조금은 가볍게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가...나는 요즈음 몸을 가볍게 하는 일도, 가진것들을 정리하면서 버릴것을 찾는 일이 새로이 모우는 일보다 더 많아졌다.

이현준 2013-06-10 14:28:57
오래전 중동에서 일한 적이 있어 사막이라면 경험한 일, 생각나는 추억들이 많다.아라비아 반도, 북 아프리카, 지중홰 근방에서, 아시아의 사막 몽고리아의 고비사막 등등...오늘 시인의 이야기에 공감하는 바가 많다. 인생 살이길이 사막의 여행과 같다는 시인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특히 여행자는 행장을 줄여야 한다는 말은 참으로 좋은 지적이라는 생각이든다.

강대선 2013-06-07 08:13:44
사막이라는 말에...
그리고 그 사막에 수맥이 흐르고 있을 거라는 말에..
외로워졌다가 다시 위안을 받습니다...
물 한 방울 없는 오늘이라도
낙타 한 마리 같이 동행할 수 있다면 ..
모든 이들의 바람이겠지요..
사막 같은 제 삶에도
물을 뿌려봅니다.. 누군가가 있어..
그리 외롭지는 않았다고.
시인님..
빨리 쾌차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