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복지시설 중 최고 아닌 최소의 기준 되길 바라죠”
“전국 복지시설 중 최고 아닌 최소의 기준 되길 바라죠”
  • 원종하
  • 승인 2013.06.07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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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어린 나이 남편과 함께 사회복지시설 운영 뛰어들어
곱지 않은 시선에 시련 겪기도 진정성과 한결같은 마음으로
80명 정원에 75명 이용 꽉 차

즐겁고 건강치매 환자 위한 공원 만들 것

▲ “마음 놓고 쉬고 움직일 수 있는 안전한 치매공원을 만들고 싶다”고 말하는 사회복지법인 보현행원 최분이 원장.
 김해시 주촌면에 산골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사회복지법인 보현행원은 김해시는 물론 경남을 통틀어 노인 복지시설의 선구자로 손꼽힌다. 이곳의 최분이(45) 원장은 20대의 어린 나이에 남편과 함께 사회복지시설 운영에 뛰어들었고 당시 어린 나이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의 사회의 인식과 사회적 풍토 때문에 많은 시련을 겪어야했다. 정부의 지원을 받고도 운영하기 힘든 복지시설을 어려운 사람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일념으로 개인 자산을 들여 사회복지법인 승인을 받아냈다. 인터뷰 도중 힘든 일을 왜 했는냐는 질문에 “최 원장은 어렵다는 것을 알고 시작했기에 힘들지 않다”며 “앞으로도 즐기며 살겠다”는 말을 남겼다. 이렇듯 힘든 것을 알면서도 스스로 평생 봉사의 길, 섬김의 길에 뛰어든 그녀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보자.

 - 개인자산으로 사회복지 사업을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마음으로 시작했나?

 “91년에 남편과 결혼해 함께 불교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불교를 관한 공부를 많이 했다. 믿음이 깊어질수록 무엇인가 깨달음이라 할까? 평생 살면서 해야 할 것 같은 일들이 떠올랐다. 그럴수록 공부의 깊이를 더했고 그 결과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는 법을 알아갔다. 그리고 무엇인가 실천을 해보자라는 굳은 마음을 먹게 됐다.

 94년에 개인자산으로 사회복지법인을 승인 받아 마땅한 땅을 알아보고 여러 가지 준비를 하면서 3년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97년에 이곳에서 처음 시작했다. 시설은 공간이 필요한 것이니 아마 적당한 공간을 찾으러 다니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였다.”

 - 젊은 나이인데 사회 복지 시설을 운영한다는 것은 큰 어려움이었을 것 같다. 시작 초기 이야기를 듣고 싶다.

 “남편이 창원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을 때 복지사업을 시작하고자 도청을 찾아가 문의를 했다. 하지만 당시 복지에 대한 의식이 충분하지 않아 쉽사리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더군다나 젊은 나이라 더 큰 불신을 받아야했다. 젊다는 것은 일을 더 열정적으로 잘 할 수 있는데 경험이 부족한 것으로 판단하고 믿지 않고 지켜보지 않으려 해 많이 속상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진심이란 것을 끊임없이 확인시켜주었고 고아원을 운영하기 위해 허가를 신청했다. 하지만 사회적 흐름과 맞지 않아 포기했다. 그렇다고 거기에서 뜻을 굽힐 수는 없었다. 그래서 경남에서 복지부분에서 부족한 것이 무엇인가 찾아보았다. 그 중에서 노인복지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게 됐고 경난 전체에서 2호, 김해에서는 처음으로 노인복지시설을 시작하게 됐다.”

 - 김해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그렇게 허가를 받고 노인 복지 시설에 적합한 땅을 찾아다녔다. 시설에는 땅이 대단히 중요하다. 왜냐하면 다들 노약자이거나 아픈 분들이니 적당한 바람과 적당한 햇볕과 적당한 나무와 그런 것들이 조화를 이뤄야 사람의 생명도 자연과 함께 조화를 이루면서 건강해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는 스님과 함께 이곳저곳을 적당한 곳을 알아보는데 그 시간만 1년 걸렸다. 그리고 지금 이곳을 선택하게 됐다. 스님이 이곳이 약산이라고 했는데 그래서 그런지 주변에 약초는 물론 건강한 나물도 많이 나며 공기와 물이 너무 좋다. 오시는 모든 분들의 건강도 많이 좋아지고 회복이 돼 만족해하는 것 같다.”

 -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은 어떤 분들인가?

 “80명 정원에 현재 75분이 계신다. 2008년 전에는 65세 이상 기초보호대상자들이 무료로 들어와 이용했다. 하지만 2008년 이후 법이 바뀌어 65세 이상 모든 장애를 가지신 분들은 들어올 수 있게 됐다. 김해시에서 국가가 생계를 책임지는 분, 부양능력이 없는 분,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등 이제는 다양한 분들이 찾아온다.”

 - 주변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벌써 17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동안 가장 힘든 일은 무엇인가?

 “시설에서 돌아가신 분들이 생길 때다. 어떨 때는 15~17년씩 함께 이곳에서 오랜 세월동안 부모님처럼 모시고 생활을 했는데 돌아가셨을 때 마음 놓고 슬퍼하지도 못한다. 이곳에 계신 분들에게는 긍정적인 마인드를 갖도록 웃고 또 희망을 드려야하기 때문이다. 원장인 내가 우울해 있으면 직원들도 우울해 있고 그러다 보면 전체의 분위기가 다 다운이 돼 어르신을 대하는데 소홀히 할 수 있다. 늘 웃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 반대로 가장 기쁠 땐 언제인가?

 “어르신 분들이 ‘여기가 제일 좋다’, ‘고맙다’라는 말을 해줄 때 너무 기쁘다. 무엇을 바라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도 인간인지라 고맙다는 말을 듣고 이곳이 제일 좋다고 하면 또 용기와 힘이 생겨 어르신들이 불편한 점이 무엇일까 고민하고 찾게 된다. 인생살이가 다 그렇게 선순환 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이것에 처음 오시면 쉽게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는 분들도 계시는데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내가 하고자하는 것을 이뤘다는 마음이 든다.”

 - 앞서 어린나이라 심한 불신을 받았다고 했는데 어떤 일들이 있었나?

 “어린나이에 복지 시설을 열었다는 것은 주위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눈총을 받게 만들었다. 한 번은 도청에 자료를 받으러 간 적이 있는데 도리어 심한 호통을 받았던 적도 있다. 김해시(당시 군)에서도 허가를 내 주지 않았다. 그래서 시아버지가 허가를 받아야했다. 시설을 열고 나서도 한동안 이런 눈총은 여전했다. 이제는 다 옛날 이야기가 돼가고 있다.”

 - 그렇다면 어떻게 극복했는가?

 “진정성과 한결같은 마음이라 생각한다. 아직도 비교적 어린 나이라 직접 다니면 많은 눈총을 받는다. 그래서 후원도 직접 받지 않는다. 나가서 홍보하지도 않았는데 진정성을 가지고 이곳에 찾아온 봉사자들이 많이 있다. 찾아오는 봉사자들에게 제대로 설명하고 열심히 한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마음을 움직였다. 지금은 꽤 많은 분들이 후원을 해주고 계신다. 하지만 이렇게 되기까지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 지난 17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나?

 “시설을 열고 얼마 되지 않아 오신 분들 중 몇 분이 기억에 남는다. 김해에 처음 열다보니 여러 가지 상황이 많이 좋지 못한 분들이 많이 오셨다. 알코올 중독부터 당뇨가 심해 시력을 잃으신 분, 그 밖에도 연고가 없거나 이름이 없는 분들도 계셨다. 이름도 만들어드리고 술도 끊게 하고….”

 - 초창기와 지금의 복지는 얼마나 다른가?

 “예전에는 먹는 것조차 해결되지 않아 그것을 해결하는 것을 복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괄적으로 똑같이 취급하고 줬다면 이제는 맞춤형 복지로 변하고 있다.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하는 복지 시스템이다. 주고 싶은 사람의 마음이 아니라 받고 싶은 사람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 이전에는 먹기 위해 음식을 줬다면 이제는 각각의 사람에 맞춰 필요한 음식을 제공한다. 한마디로 개별적 서비스로 정리할 수 있다.”

 - 개별적 서비스를 하기 위해서는 많은 인력이 필요할 것 같다. 또 인건비 충당은 어떻게 하나?

 “그렇다. 우리 보현행원만해도 42명의 직원을 두고 있다. 법적요건인 시설이용자 2.5명 당 1명의 간병인을 두고 있으며 여기에 간호사, 영양사, 물리치료사, 사회복지사 등을 두고 있다.

 인건비는 정부서 제공한다. 운영비가 해결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2008년 이후에는 법이 바뀌어 수가를 받아 운영한다. 그런데 이 수가가 현실적으로 부족한 부분이 있다.”

 - 부족한 예산 속에서도 어떠한 일들을 계획하고 있는가?

 “치매공원이란 것을 만들고 싶다. 우리 시설에도 조그마한 공원이 있는데 치매에 걸리신 분들은 이곳을 이용하기에는 안전사고의 위험이 너무도 크다. 그래서 이러한 분들이 마음 놓고 쉬고 움직일 수 있도록 안전한 공원을 만들어보고 싶다. 밖에 나가고 바람도 쐬고 싶어 하는데 안전 때문에 참 어려움이 많다.”

 - 마지막으로 한 마디 한다면?

 “앞으로 우리 보현행원이 전국 복지시설 등 중에서 최고가 아닌 최소의 기준이 됐으면 한다. 우리 보현행원 앞으로도 많은 노력을 할 것이며 하루하루를 즐기며 운영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시설을 이용하는 분들도 즐거움을 느끼고 건강해질 것이다. 그런데 이런 우리 보현행원이 전국의 최소 복지시설이 된다면 다른 복지시설들은 우리 보현행원보다 좋은 시설이 되는 것이다. 앞으로도 더욱 더 열심히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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