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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길 찾기
길 위에서 길 찾기
  • 김루어
  • 승인 2013.05.24 00:38
  •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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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 김루어
 길에는 두 종류가 있다. 눈에 보이는 길과 눈에 보이지 않는 길. 우리 주변에는 눈에 보이는 수많은 길이 있다. 골목길ㆍ고샅길ㆍ마을길ㆍ들길ㆍ산길ㆍ신작로ㆍ국도ㆍ철도ㆍ고속도로, 여기 더하여 지하철도ㆍ뱃길ㆍ하늘길까지. 물론, 이외에도 많은 길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인간은 왜 이렇게 많은 길을 만드는 걸까? 아마, 필요성 때문일 것이다. 고립되어서는 살 수가 없는 존재이기에 인간은 소통할, 그 목적이 교제든 교환이든 약탈이든 간에, 대상이 필요하다. 그 대상은 유정물이 될 수도 있고 무정물이 될 수도 있다.
 결국, 길은 인간이 생존하기 위한 필요성의 산물인 셈이다. 하지만 필요하다고해서, 마음만으로 바로 길이 열리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물리력이 필요한, 눈에 보이는 길을 혼자 힘으로 열기에는 벅차기 때문이다. 길을 만드는 데는 여러 사람의 합심(合心)과 노력이 필요함을, 이미 24세기쯤 전에 맹가(孟軻)는 다음과 같이 우회적으로 말하고 있다. 몇 번 다녔을 뿐인 산속 길도 계속 다니면 길이 만들어지지만 다니지 않게 되면 풀이 자라 길을 막게 된다. 그렇다, 인간이 다니는 길에는 이전 사람들의 기원과 땀과 눈물이 배여 있다.
 어떻게 보면 인간의 역사란 길의 역사라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지도 모른다. 태고 이래로 현재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끊임없이 길을 만들어 왔고, 그 길과 길을 거미줄처럼 이어 왔고, 땅속 길ㆍ뱃길ㆍ하늘길까지 열어 온 것이 이를 명증(明證)한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길이 있다 하더라도 길을 잃을 염려는 거진 없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왜냐하면 지도는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고, 누구에게나 길을 물을 수도 있고, 스마트폰 키 한 번 두드리기만 해도 자신이 어디에 서있는지 바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적지 않게 보거나 듣는다. 남들의 처마 밑 그늘을 따라 걷는 청소년 가출자들을, 게임방이나 술집에 상주하다시피 하며 자신의 청춘을 갉아먹는 젊은이들을, 역전이나 공원의 양지에 모여 공허한 눈빛으로 그들의 어둠을 가려줄 밤을 기다리는 노인들을, 이들 이외에도……. 이들은 분명 집으로 가는 길이나 직장으로 가는 길, 혹은 학교로 가는 길을 잃은 사람들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길 잃은 이들이라 통칭된다. 이때 말하는 길은, 눈에 보이는 길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길이다.
 흔히, 인생은 길 위에 선 나그네에 빗대어져 왔다. 이때 말하는 길은 세월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길이다. 하지만 이 비유는 적절한 비유가 아니다. 길ㅡ눈에 보이는 길에 서거나 눈에 보이지 않는 세월의 길에 서거나 나그네임은 다 같지만 중대한 차이가 있다. 눈에 보이는 길 위에 선 사람은 언제든 출발점으로 되돌아 갈 수가 있지만 세월의 길에 선 나그네는 결코 출발점으로 되돌아 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차이는, 길을 잘못 들었을 경우에, 최소한 그 길에 들어선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는 치명적이다. 하지만 누구 탓을 하겠는가? 자신이 한 선택을…….
 그렇다, 인생길은 누구도 대신 선택해 줄 수가 없다. 천인천로(千人千路) 만인만로(萬人萬路)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선택은 지극히 외로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외로움은 함께 하면 줄어든다. 고래로 인생길의 위험을 피해간 현자들은 이런 외로움을 함께 할 줄 알았다. 어쩌면, 외로움을 함께 할 줄 알았기 때문에 현자가 되었는지 모른다. 청허휴정(淸虛休靜)은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눈을 밟으며 들길을 갈 때/모름지기 허튼 걸음을 말라/오늘 내가 남긴 발자국은/마침내 뒷사람의 길이 되리니(踏雪野中去/不須胡亂行/今日我行跡/遂作後人程).
 이때 눈은 단순히 풍경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구덩이나 늪 같은 위험을 가린 호도물일 테고 내 발자국은 그 위험을 피해간 현자의 지혜일 것이다. 하지만 현대는 휴정같은 현자가 없는 시대다. 지식이 만인에게 공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기심이 시멘트벽처럼 삼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히 현자에 가름할ㅡ휴정이 말하는 ‘我行跡’에 해당하는 시스템은 있다. 그렇다! 우리시대 현자는 정책이나 제도다. 정책이나 제도가 개인의 인생길의 모든 위험을 다 방지해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그 위험을 줄일 수는 있을 것이다. 물론, 그에 앞서 인생길의 위험에 대한 일차적인 준비는 각 개인의 몫이다. 이는 길 위에서 길을 찾아야 하는 인간의 숙명이기도 할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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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호 2013-07-05 21:47:45
작가님의 글을 보노라니 어느 라디오 프로그램 중간 맨트가 생각납니다..
길에게 길을 묻다..
저억시 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길이란것에 대해 갈림길과 선택의 기로에서
많은 시간을 서성이곤 했지만, 그로인해 웃음보단 후회가 더 많았던것도 사실이고
살며 사랑하며란 글귀를 길에서 느끼고 길을 보고 또 보곤 합니다..
분명한건 길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정해야한다는 진리가
늘 저를 가난하게 하는가 봅니다..

이현준 2013-05-24 13:04:58
웬델 베리가 쓴 집에서의 여행이라는 시에 '어두어 지기전에 돌아오는 것, 그것이 나들이의 기술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는 또 '우리의 미래는 과거에 빚지고 있다. 다가올 시간의 자양분인 기 세월동안의 지식'
길-인간의 역사라는 말에 공감을 가진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모두에게 말이다.길위에서 길을 찾게 마련인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늘 김시인의 글에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어 반갑고 고맙습니다.

강대선 2013-05-24 10:41:00
길의 의미^^
보이는 길과 보이지 않는 길
보이지 않는 길, 그 선택의 길에서 많이 방황도 하였지요..
그래서 시인님의 말처럼
누군가 함께 할 수 있는 벗들을 찾나 봅니다.
외로울 때 함께 갈 수 있으면
그 길이 외롭지 않을 테니까요..
오늘도 저는 제가 갈 길을 찾기 위해
요기조기 두리번거리고 있습니다.
날이 더워지고 있습니다.
건강하세요. 길 위에 시인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