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23:20 (토)
존경받는 ‘갑’ 사랑받는 ‘을’
존경받는 ‘갑’ 사랑받는 ‘을’
  • 신은희
  • 승인 2013.05.23 02:25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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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은희 경영학박사ㆍ인경연구소장
 ‘너 살고, 나 살자.’

 이는 서로 다른 목적과 의견을 가진 두 개의 주체가 갈등관계에 놓여 질 때 그 해결방안으로서 가장 바람직한 형태라 일컫는 ‘윈-윈 전략’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런데, 갈등을 겪는 두 주체가 서로 대등한 위치라면 이 해결방안은 그리 큰 문제가 될 것이 없다. 서로 큰 손해가 없을 만큼 조금씩 양보하며 적당한 협상으로 교섭이 이루어지면 그만인 것이다. 하지만, 상대가 한쪽은 강자인 ‘갑’이요, 한쪽은 약자인 ‘을’의 관계로 형성돼 있을 때 이 ‘윈-윈 전략’은 그 진가를 발휘하게 된다. 즉,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가운데, 상생과 협력의 관계를 이끌어낼 수 있다. 이럴 때 갑과 을의 관계는 함께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있고,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돼 공생의 생태계를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요즈음 유통업체간의 갈등관계에서 나타난 수퍼 갑과 약체 을의 구조적 모순을 보면서 이러한 관계가 단지 일부의 계약과 이행사이에서 일어나는 횡포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근 사회적 이슈와 여론의 붐을 타고 모 기업에서는 협력업체간의 계약서에 아예 갑과 을이란 용어를 기재하지 않는 경우도 있고, 또 다른 기업의 근로계약서에도 이와 같은 표현은 모두 삭제해 버리기도 했다고 한다. 이는 기업의 발 빠른 위기상황 대처능력을 보여주는 것이고, 기업의 이미지 개선에 도움이 되며, 더 나아가 실제로 기업들이 그러한 노력을 해 줄 것을 기대해본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로서 그동안의 수직적인 관계가 온전한 수평적 관계가 되리라고 여기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갑과 을은 크게는 국가와 국가, 대기업과 중소기업, 조직과 조직, 기업과 고객, 그리고 작게는 개인과 개인의 인간관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고 있다. 심지어는 가정 내에서나 연인사이에서도 이 관계가 성립되고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회 속에서 살아가다 보면 알게 모르게 늘 이러한 관계를 이루어 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때로는 갑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을이 되기도 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우리는 갑과 을의 관계에서 느끼는 입장 차이를 수 없이 체험해 왔기에, 어떻게 하면 갑과 을이 서로에게 긍정적인 존재가 되고, 부정적인 존재가 되는지도 알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갑이었을 때와 을이었을 때, 사뭇 다른 입장을 취하게 되기 쉽다. 다시 말하면 갑의 위치에 있을 때 을에게 가졌던 바람을, 을이 되면 역지사지의 입장에 서면 될 것을 그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마찬가지로 을의 위치에 있을 때 갑에게 가졌던 바람들은 막상 어떤 갑이 되면 쉽사리 잊거나, 일부러 생각하려 하지 않는 경우를 경험하기도 한다.

 가까운 관계에서부터 떠올려 보자. 자녀의 입장에서 부모는, 부모의 입장에서 자녀는 어떠하기를 바라는가? 고객의 입장에서 기업은, 기업의 입장에서 고객은 또 어떠한가? 사장의 입장에서 직원은, 그리고 직원의 입장에서 사장은 어떠한 존재이기를 바라며 어떻게 해 주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조직과 조직, 기업과 기업, 국가와 국가 간의 관계에서 갖게 되는 기본 입장도 별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서로 바라는 그것이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실천하지 않는 것이 안타까우며, 그리해 좀 더 이상적인 관계형성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이는 우리의 용기와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아직 이 사회의 여건이 성숙되지 못해서인지는 좀 더 생각해 볼 일이다.

 이제 우리는 이 시대의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가려면 서로간의 다양한 관계를 이루어가야 함은 물론이고, 그 속에서 거부 할 수 없는 갑과 을의 관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는 것도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너 죽고 나 살자’, ‘나 살고 너 죽자’, ‘너 죽고 나 죽자’ 식의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양보나 희생, 비효율적이고 강압적인 타협, 그리고 과도한 경쟁으로 갈등을 키우거나 실패로 끝나는 관계는 만들지 말아야 한다. 너도 살고 나도 사는 관계를 만들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그래야만 서로 신뢰의 바탕위에서 더욱 창조적이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함께 성장해 갈 수 있다.

 ‘갑’과 ‘을’, 절대적인 갑도, 영원한 을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존재할 관계라면 상황에 따라 서로에게 원하는 존재가 되자. 서로에게 꼭 필요한 대상으로 거듭나보자. 그래서 을에게 ‘존경받는 갑’, 갑에게 ‘사랑받는 을’이 돼보자. 이 얼마나 따뜻하고 아름다운 상생의 관계인가? 우리는 이렇게 수많은 갑들과 을들이 공존하면서 함께 키우고 가꿔나가는 행복한 세상에서 살아가길 바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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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희 2013-06-06 22:43:03
amelia님, 글 읽어주시고, 좋은 의견 남겨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행복한 사회에서 기쁜날들 되시기 바랍니다^^

amelia 2013-05-23 22:21:59
늘 명심하고 저도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긍정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