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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의 상흔
5월의 상흔
  • 박재근 기자
  • 승인 2013.05.19 22: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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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재근 본사 전무이사
 독재는 아물지 않는 상처를 남겼다. 부에노스아이레스 5월 광장에는 매주 목요일 아르헨티나 어머니들이 모인다. 어머니라지만 백발의 할머니들이다. 이들은 1970~1980년대 군사정부 시절 민주화운동을 하다 숨지거나 실종된 아들, 딸들의 이름을 새긴 하얀색 스카프를 두르고 있다.

 독재가 끝난 지 30년이 지났지만 어머니들은 실종된 자식들을 찾고 관련자들의 처벌이 끝날 때까지 이 집회를 “결코 그만둘 수 없다”고 말한다.

 우리의 5월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5ㆍ16은 혁명이란 긍정적인 것에서 부정적인 쿠데타로, 5ㆍ18은 불순분자와 폭도들이 주동한 난동으로 규정한 부정적인 것에서 민주화운동이란 긍정적 행동의 역사로 바뀐 것에도 역사인식은 아물지 않는 상처를 남겼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2004년 5ㆍ18 기념식 때 노무현 대통령은 광주 민주화 운동 유족 등과 함께 광주 망월동 묘지를 참배했다. 그때 노무현 대통령이 악보를 보지 않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합창을 했다고 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노래는 한때 반체제 노동가요로 찍혀 금기시되기도 했다. 그런 노래를 군악대가 공식적으로 연주하기는 처음이라고 한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격동의 시대, 한 번쯤 들어봤음직한 노래로 민중의 영원한 애국가라는 수식어가 줄곧 따라다녔다. 그만큼 민중가요 중에서는 친숙하고 널리 알려진 곡이다. 하지만 2011∼2012년에는 참석자 제창이 아닌, 합창단만 부르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그 현장에는 또 다시 5월의 봄은 왔건만 그러하다. 현직 대통령이 5ㆍ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 참석한 것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08년 취임 첫 해에 방문한 뒤 5년만이다. 하지만 ‘임을 위한 행진곡’을 둘러싼 논란은 5ㆍ18민주화운동 기념식이 ‘반쪽 행사’로 치러지는 아픔을 남겼다.

 정부는 민주화운동의 상징인 ‘임을 위한 행진곡’에 공식 기념곡에 준하는 지위를 부여하지 않기로 결정했고, 제창은 안 된다는 것이다. 합창 때 따라 부르면 제창일수도 있는데 합창은 OK, 제창은 NO란 것은 꼼수나 다를 바 없지만 공식적으로는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도다.

 또 근래 들어 북한군 개입설 등 온갖 폄훼가 온라인, 출판 시장으로까지 확산은 민주주의 자체를 모욕하는 슬픈 상흔이다. 이에 앞선 5ㆍ16은 군인들이 민주적으로 선출된 장면 정권을 무너뜨린 군사정변이다. 이 사건 본질은 박정희 대통령 18년 집권 기간 절대 빈곤을 몰아내고 경제적 근대화의 토대를 닦은 공(功)이 민주 헌정을 무너뜨리고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인권을 억누른 과(過)보다 크다 할지라도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1996년부터 교과서는 5ㆍ16을 군사정변이라고 쓰기 시작했고 현재 중학교 역사 교과서 9종,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6종 모두 그렇게 쓰고 있는데도 현 정부의 장관들은 인사청문회 때 직답을 피하고 우문우답(愚問愚答)해 보기마저 민망했다. A 장관후보자, 5ㆍ16 군사정변이라는 표현에 공감하는 부분이 있다. B 후보자, 역사의 평가에 맡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C 후보자, 역사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많지 않다. 교과서에 기술된 표현에는 반대하지 않는다. D 후보자, 역사적인 문제에 대해 판단할 만큼 깊은 공부가 안 돼 있다. E 후보자, 장관으로서 정치적 견해를 밝히는 게 직무 수행에 적절치 않다고 답했다. 나라의 장관이 되겠다는 사람들이 인사권자인 대통령의 심기(心氣)를 거스를까 겁이 나 군사정변을 군사정변이라 하지 못하고 말을 돌리는 모습은 측은한 느낌마저 준다.

 하지만 야당 의원들도 “5ㆍ16이 군사 쿠데타냐”는 질문을 하며 추궁하는 것도 한심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결론 내려진 역사적 사실에 대한 질문을 묻고 되묻는 것은 후보자들을 골탕 먹이고 정부에 정치적 부담을 주겠다는 계산임이 다를 바 없다. 아무튼 우리 현대사의 중요 사건인 5ㆍ16과 5ㆍ18은 좀체 아물지 않는 상처를 남겼다. 역사를 비틀어 보려는 좌우의 잔꾀는 슬픔만 더하는 가운데 그, 5월의 상흔은 아물지 않은 채 깊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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