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07:13 (토)
제9화 슬픈 회상 <137>
제9화 슬픈 회상 <137>
  • 서휘산
  • 승인 2013.05.14 22: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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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슬픈 회상 (13)
함초롬이 맺은 백목련과도 같은 하얀 몸에, 오색(烏色)으로 빛나는 영롱한 눈을 가진 아이…….

 “우리 전통 민속씨름하고 일맥상통하는 게 있잖아?”

 “아……! 그래서…….”

 수련이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자 전봉준은 뭔가 뿌듯한 자부심 같은 것을 그 얼굴에 나타냈다. 그리고 이제 그녀에게 어느 전도 확신을 가지고 슬그머니 물었다.

 “시합장에 와 줄꺼제?”

 “예?”

 “……?”

 예기치 못한 수련의 정색에 전봉준이 당황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그가 다음 말을 찾으며 턱을 만지작거리는데 수련의 호출기가 울었다.

 ‘아필 이때…….’

 대답을 못들은 전봉준의 얼굴에 아쉬운 어둠이 깃들고 호출기를 꺼내 들여다보던 수련이 일어섰다.

 “죄송해요. 잠시만예.”

 “그려. 갔다와.”

 # 백지한이 표를 끊어 나오자 살쾡이가 고개를 자웃했다.

 “저 새끼가 어디로 가는 거지?”

 삼랑진 시외버스 터미널 한쪽 길에 정차해 있는 검은 승용차 안이다. 백지한이 올라탄 버스를 확인하고 개구락지가 달려왔다.

 “마산행 찬데요.”

 “그래?”

 행동대장 불곰이 휴대폰을 펼쳐들었다.

 # ‘이게 꿈은 아닌지…….’

 영봉스님으로부터 급작스레 연락을 받고 백지한을 기다리는 수련의 가슴으로 격렬한 그리움이 몰려들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구절초 그 연보랏빛의 목도리가 들려있었다. 영봉수님으로부터 아저씨가 돌아왔다는 연락을 받은 순간 집으로 달려가 가져온 것이다.

 그것은 백지한이 교도소에서 다시 수감돼 있다는 걸 안 그날 저녁부터 한 올 한 올 짜 올린 그리움의 결실이었다. 재회의 벅찬 설레임을 담은 채로…….

 행운이란 우연히 오는 게 아니다. 그것은 기다리고 준비하는 사람에게 바쳐지는 걸작품인 것이다. 지금 수련이 느끼고 있는 벅찬 행복감도 마찬가지였다. 날실 씨실 정성을 다해 짜 올린….

 영원을 꿈꾸며 살아갈 수 있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인생을 얼마나 행복하게 해주던가. 석양이 오른쪽 뺨을 장밋빛으로 물들이며 그녀의 마음을 더욱 조바심 나게 했다.

 한시도 잊지 못했던 사람.

 ‘아저씨…….’

 낙엽 밟듯 길을 걷던 두 발, 우주를 모두 휘어 안 듯 휘적휘적 흔들던 두 팔, 그 특유의 걷는 모습…….

 비를 맞으며 걸어가던 남자의 그 뒷모습이 눈물나게 그리웠다. 그와 추억은 모두 숙명처럼 생각됐고 그 모두가 행복이었다. 그녀는 정말 그를 생각하는 것만큼 만족스럽고 유쾌한 것은 이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할 것 같지가 않았다.

 ‘날 쳐다봐 주던 그 눈빛, 강렬하고도 신비스런 기운이 감돌던…….’

 그녀는 홀로 싱긋 웃었다. 그를 기다린다는 것은 행복이었다. 외로웠지만 행복할 수 있었던 건, 그와 보이지 않는 어떤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와의 묘한 정신적 끈은 더욱 팽팽해지고 있었다.

 # 한편 출감하자마자 머리를 깎고자 했던 의지가 생각지도 않은 영봉의 반대에 부닥쳐 좌절된 백지한이 버스를 몇 번 갈아타고 마산 반월동 언덕에 있는 경남대학 입구에 도착했을 때는 약속시간이 십분 정도 지나 있었다. 약속장소인 정문으로 가는 백지한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어떻게 변했을까?’

 함초롬이 맺은 백목련과도 같은 하얀 몸에, 오색(烏色)으로 빛나는 영롱한 눈을 가진 아이….

 그 신비스런 아이가 당돌하게도 그에게 무조건적인 애착을 가지고 그리워하는 것이었다. 그런 아이가 백지한은 귀엽고도 가여웠다. 그런 연민의 인연이 결국 아이 엄마의 초상을 맡아 치르게 됐고, 그 아이마저도 받아들이게 되었던 것이다.

 그가 아이를 처음 만났을 때 아이는 열 다섯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제 처녀는 스물 두 살의 성숙한 처녀로 성장해 있었다. 게다가 영봉의 엉뚱한 말에 의하면 아이가 그에게 연모의 정을 가지고 있으며, 그와 아이 사이엔 부부의 필연적 인연이 연결돼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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