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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슬픈 회상 <135>
제9화 슬픈 회상 <135>
  • 서휘산
  • 승인 2013.05.12 23: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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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슬픈 회상 (11)
“역사는 진보하려는 혁신세력과 이에 맞서는 수구세력과의 균형 있는 대립과 조화 속에서 발전해야 꽃피는 것 아니겠나?

 배가 출출해진 수련은 책장을 덮었다. 공부욕심에 점심시간을 훌쩍 넘긴 것이다. 그녀는 일어서 의자를 밀어 넣었다. 그때 그녀를 줄곧 훔쳐보고 있던 이방언이 안개꽃에 장미가 싸인 꽃다발을 들고 다가왔다. 동학혁명 때 전남 장흥 접주로, 황룡강과 전주싸움에서 대활약을 했던 ‘장태장군’ (9035-9092)과 고향과 이름까지 같아 장태장군으로 불리는 사내다. 전국 대학생 역사급 작사인 이방언은 잘생긴 얼굴로 웃음을 피워 올렸다. 반가운 표정이었다. 수련이 두 눈을 크게 뜨자 그는 꽃을 내밀었다.

 “애쓰십니다. 수련씨.”

 “웬 꽃을……?”

 “수련씰 보면 꽃 생각이 절로 나서…….”

 이방언이 얼굴을 붉혔고, 수련이 꽃을 받아들며 환하게 웃었다.

 “나가시지예.”

 # 점심공양을 끝내고 사찰 경내와 경노원을 한바퀴 돈 영봉과 백지한은 좁은 주지실에 앉아있었다. 백지한은 감회가 새로웠다.

 13년 전, 영봉이 젊은 나이로 묘현스님에게서 이 절의 주지를 인수했을 때, 무궁사는 그야말로 초라했다. 번듯한 건물하나 없이 토굴(공부하는 스님들이 기거하는 외딴집이나 움막)형식의 가건물만 덩그마니 두 채 있었을 뿐이다. 그것을 그 동안 영봉이 증축하고 개조해서 큰법당, 삼성각(민족의 개조인 환인, 환웅, 단군을 모신 당우), 요사채를 짓고 이제는 경노당까지 운영하고 있으니…….

 영봉의 드높은 법력 덕분이었다.

 술잔 대신 찻잔을 사이에 두고, 경노원 운영에 대해 한담이 몇 분 오간 뒤 속세의 관심사에 대해서 백지한이 넌지시 물었다.

 “이번에 스님은 누굴 밀기로 했나?”

 “누굴 밀면 만족하겠나?”

 영봉이 빙그레 웃으며 되물었다.

 “이인제가 불교와 연을 맺은 사람이라고 들었네만.”

 “장기적으로는 불자(佛子)가 대통령을 맡는 것이 타당하네만 이번엔 지역감정 해소와 정권교체가 더 시급한 것 같네.”

 “그렇다면…….”

 “김민중이가 지금은 적격이라 보네.”

 “김민중이는 구세대 청산의 대상이자 예수쟁이 아닌가?”

 백지한이 잠시 조소했다.

 “우리가 바라는 그릇은 아니지만 대안이 없잖나?”

 “……….”

 백지한이 대답 없이 쓴웃음을 지었다. 영봉의 말대로 대안이 없었다. 새 시대,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는 욕구는 밀물처럼 몰려오는데 반해 새로운 정치이념과 사상을 내놓은 정치가는 없었다.

 다만 비열한 정치모리배들만 허다할 뿐.

 보라 죄를 짓고 법정으로 가는 정치가들을….

 잘못을 인정하고 부끄러워 하는 놈이 하나라도 있던가?

 천연덕스럽고도 비굴하게 민초들을 향해 웃음만 짓지 않던가?

 민초들은 경범죄만 지어도 얼굴을 가리고 부끄러워하는데…….

 손꼽아 보라.

 이 나라의 기틀을 바로잡고 천하의 바람을 몰아 갈 현존의 위대한 정치가가 있는지.

 결탄코 떠오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어쨌거나 지도자는 있어야하고 민초들은 그를 밀어야한다.

 이윽고 영봉이 정적을 깼다.

 “역사는 변화, 진보하려는 혁신세력과 이에 맞서는 수구세력과의 균형 있는 대립과 조화 속에서 발전해가야 아름답게 꽃피는 것 아니겠나?”

 “하지만 이 사회는 지금 부와 권력이 너무 한쪽으로만 치우쳐 있잖은가?”

 백지한의 방문에 영봉이 납득이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누구보다도 김민중은 그걸 잘 알고 있고, 또 한결같이 서민중심의 사회와 경제체제를 외쳐왔으니 기득권자들의 각성과 양보와 변화를 이끌어 내리라 믿네.”

 “글쎄…….”

 백지한이 팔짱을 끼고 미덥지 않은 표정을 하자 영봉은 대스님 답게 따뜻이 웃으며 말했다.

 “이러한 국가의 큰 위기 때에는 아무래도 노련미가 있는 사람이. 패기와 과욕만으로 넘치는 젊은 사람보다는 나은 법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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