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
고독
  • 김루어
  • 승인 2013.05.09 22:57
  •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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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 김루어
 생명 있는 모든 존재는 고독하다. 때를 기다려ㅡ 새들이 함께 날고, 꽃들이 다투어 피고, 나무들이 더불어 푸른 것이 이를 반증한다. 홀로 나는 새는 무리를 그리워하고 홀로 피는 꽃은 꽃밭을 꿈꾸며 홀로 푸른 솔은 숲을 동경한다. 던져진 존재인 인간 또한 그와 다르지 않다. 인간은 고독이 두려워 가정을 꾸리고 집을 짓고 마을을 만들고 도시를 만들고 국가를 만들어 고독으로부터 달아나고자 한다. 그러나 어림없다! 거기에도, 군중 속에 있는 인간에게도 어김없이 고독은 따라 붙는다. 왜냐하면, 고독은 던져진 존재인 인간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고독은 무엇인가? 고독이라는 말은 환과고독(鰥寡孤獨)에서 비롯되었다. 이는 늙어서 아내가 없는 홀아비와 남편이 없는 홀어미, 어려서 어버이 없는 아이와 늙어서 자식이 없는 사람을 뜻한다. 다른 말로 하면 대화 상대가 없고 자기 외에는 기댈 데가 없는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되겠다. 이 말은 현대에 오면서 고독이라는 말로 축약되어 일반화되지만 묘하게도 뜻은 연장 확대된다. 즉, 가족이나 친구 혹은 동료와 같은 주변인들과의 관계가 단절되거나, 동시대적 가치나 상징, 양식 같은 사회시스템에서 배제되거나 소외된 상태를 이르는 말로.
 여기서 우리는, 가끔 고독과 혼동되거나 동일시되는 센티멘탈리즘을 변별할 필요가 있겠다. 감성과 낭만을 직조하여 즐거움을 추구하는 센티멘탈리즘과, 삶과 죽음의 문제로 이어질 수도 있는 벼랑 위에 선 상태인 고독은 다른 개념이다. 센티멘탈리즘에는 도식적이고 통속적이고 관능적이어서 인간관계를 파편화하고 피상화 시켜 도덕적 무장해제를 조장하는 역기능이 있지만, 고독에 비해서는 오히려 일상생활의 긴장과 피로를 해소시켜 우리를 건강한 일상생활로 되돌아오게 하는 기제역할을 하는 정서적 배설제로서의 순기능이 있다.
 물론 고독에도 순기능이 없지 않지만, 고독은 존재의 본질이나 존재자체를 뒤흔드는, 치유하지 않으면 안 될 병리현상이다. 고독에 빠진 인간은 고독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술을 마시기도 하고 춤을 추기도 하고 혹은 도박에 빠지기도 하는, 관능적인 쾌락에의 도피라는 즉자적인 대응을 하는 성향이 있다. 그러나 이런 행위들은 고독을 일시적으로 잠재우는 마취제에 불과할 뿐이다. 보다 근원적으로 고독을 치유하고 극복하기 위해서는 고독한 인간을 둘러싼 인적관계의 복원이 선행되어야 할 터이고, 사회적 시스템으로의 동화가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고독은 어떻게 치유해야 하는 것일까? 고독을 가장 심도 있게 다룬 사조는 아마도 실존주의일 것이다. 이 사조에서는 두 가지 관점에서 고독에 대응한다. 키에르케고르적 관점과 사르트르적 관점. 전자에게는 고독이라는 말은 절망이라는 말과 소리는 다르지만 뜻은 같은 말이다. 고독은 자기상실에서 비롯되고 이는 절망을 부르며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그는, 절망에 빠졌을 때 인간은 절대자인 신 앞에 단독자로 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단독자로 신과 대화하면 스스로를 자각하게 되고, 스스로를 자각하게 되면 진정한 자기를 회복하게 되어, 인간으로서의 무력감이나 허무감 같은 고독을 떨쳐버리고 완성된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고 조언한다.
 하지만 이는 신이라는 대상, 즉 신앙이 있는 사람에게나 가능한 조언이다.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입장을 대변하는 사르트르에게는 인간이란 스스로가 구상하는 존재이며 또한 스스로가 원하는 존재일 뿐이다. 따라서, 고독에 빠졌을 때에는, 그 자신이외에는 다른 입법자가 없다는 현실을 인식하고, 자신이외에는 그 어떤 것도 자신을 구원하지 못한다는 자각 하에 자신과 대화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렇게 자신과 대화하면, 미래를 향해 스스로를 던져 주체적으로 자기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즉, 자기의 삶은 자신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말이다. 그 선택은 자유이며, 물론, 그 선택에는 책임이 수반된다, 고 첨언한다.
 고독에 대응하는 양자의 공통적 입장은 대화다. 나는 고독에 빠졌다는 말을 주변에 진정한 대화 상대가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키에르케고르나 사르트르 양자의 조언 가운데 어느 쪽을 받아들이더라도 대화는 고독에 빠진 인간에게는 필수인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그 개인적인 조건과 환경이 어떻든 간에 한평생 살아가다 보면 고독, 좀 더 강한 표현으로 하자면 절대고독이라는 위경(危境)을 한 번쯤은 겪는다. 그 고독을 어떻게 이겨내느냐에 따라 우리 삶의 질과 격이 달라지는 것 같다. 많은 인류의 위대한 유산들이 고독을 이겨낸 이들의 노고의 산물임이 그네들의 삶의 술회에서 확인되는 것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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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선 2013-05-14 07:36:02
고독은 두렵기도 하지만..
가끔은 고독 속으로 도피하고 싶기도 합니다..
그런 때 정말 저도
대화를 해야겠습니다..
제 안에 있는 그 누군가와 그리고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소중한 사람들과...
시인님.. 시도 대화를 하는 것 맞죠.^^

이현준 2013-05-10 13:18:03
참으로 시의적절하고 명확한 해석과 고독의 확장성에 대한 글, 다변화되고 불확실성이 난무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유익한 글이라 생각된다. 게재하신 시인께 고마움을 드린다. 누구나 고독하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수 없는 지금이니 더욱 그렇다. 고독은 이겨 낼수 있는것, 치유되는 것이라는 믿음도 있으니...

이현준 2013-05-10 13:11:59
누구나 고독해지기도 벗어나기도 한다. 명쾌한 답을 논리적으로 적시한 시인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신앙의 힘으로, 주체적인 자신의 선택으로 이겨 나갈수 있는것이 고독이라면 벗어났을때의 희열은 얼마나 크겠는가? 고독을 비켜나가는 방법에는 소통 즉, 대화, 인간관계의 복원이 필수적이라는 생각이다. 물론 사회적 시스템이 도울 수도 있겠지만 먼저 인간관계의 복원, 발전시킴이 우선이라는 생각이다.

효원 2013-05-10 09:46:44
신에 의지도 큰 힘이 되지만
결국은 본인의 의지인 것 같습니다
고독의 원어의 확장적 해석에 대해 잘 봤습니다.

이 곳은 비가 내립니다.
뜨거운 커피 잔을 앞에 두고 있는데
'고독'을 담아 휘휘 저어 마셔 버려야 겠습니다

늘 깊은 양식의 글을 볼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진(眞) 2013-05-10 07:41:42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들은 그저 고독을 즐기면서
삶을 살았다고 압니다. 고독하다고 외치지지 않고,
마음으로 삭히면서 살았을 것입니다. 부정적이 아니라
긍정적으로 세상이치를 바라보면서 말입니다.
참된 인간에게 따르는 것이 고독이라니, 저 역시 그 한 대열에서
인생이란 어쩔 수없이 고독이 뒤따를 것이라 칭하며,
빛이 밝은 창문을 열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