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마을 입구 숨죽여 누운 ‘세월 무게’ 겹겹이
화양마을 입구 숨죽여 누운 ‘세월 무게’ 겹겹이
  • 송삼범 기자
  • 승인 2013.05.06 23: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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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 묘산 묵와ㆍ대목리 심씨 고가

묘산 묵와 고가 중요민속자료 제206호

조선조 선조때 윤사성 창건 당시 600평 8채 100여칸 규모
대문채 홀처마에 걸린 편액 ‘묵와고가’ 글자마다 역사 덧칠

 

▲ 묘산면 화양마을 입구에 자리잡은 묵와 고가 전경.
 합천읍에서 해인사 방면으로 도로를 타고 30여 분 달리면 묘산면 화양마을이 나타난다.

 화양마을 입구에서 왼쪽을 보면 아주 오래된 고택의 지붕이 수줍은 듯 살포시 고개를 내밀어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바로 묵와 고가(默窩 古家)이다.

 이곳은 조선 선조때 선전관을 지내고 인조 때 영국원종(寧國原從) 일등공신으로 봉작된 윤사성(尹思晟)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창건 당시 집터가 1천980㎡(600평)이 넘고 한때는 8채나 되는 집이 들어있었고 100여 칸이나 되는 규모였다고 전해진다.

 이 고택은 파평윤씨 가문과 뿌리가 깊다.

 1553년 수양대군은 어린 단종을 유폐시키고 신하들을 참살하면서 왕권찬탈의 쿠데타를 일으켰으며 이때 많은 선비들이 수양대군의 행동을 차마 볼 수 없어 벼슬을 버리고 낙향을 했다.

 이 고택의 입향조인 14대손 사재판서 윤장도 그 시점에 합천 묘산면 화양리로 들어와 살게 됐으며 이 고택을 창건한 윤사성이 후손이다.

 그래서일까. 선조가 세상을 등지고 조용히 살고팠던 마음을 헤아리듯 고택의 이름을 묵와(默 잠잠할 묵, 窩 움집 와)로 지었는 듯 하다.

▲ 묘산 묵와 고가의 사랑채에 ‘묵와 고가(默窩 古家)’ 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묵와고택은 안채와 사랑채, 사당, 대문채 등이 있다.

 대문채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집으로 중앙 칸은 솟을대문이고, 우측 2칸은 헛간, 좌측 2칸은 방으로 구성돼 있다.

 문 안쪽 왼쪽에 있는 4칸의 사랑채는 ‘ㄱ’자형으로 마당보다 훨씬 높은 대 위에 지었다.

 누각 형태의 마루가 앞쪽으로 돌출됐으며, 마루의 남ㆍ동벽은 판벽이고 서벽은 개방됐다.

 전체적으로는 맞배지붕이지만 마루의 앞부분만은 합각을 세우고 팔작지붕으로 했다.

 홑처마에 기와를 이었으며 ‘묵와 고가(默窩 古家)’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사랑채 오른쪽 가까이에 곳간 채가 있다.

 사랑채 동쪽으로 중행랑채가 이어지며, 중문을 지나 내정(內庭)에 들어서면 행랑채보다 1단 높은 댓돌 위에 안채가 있다.

 안채는 ‘ㄱ’자형으로 정면 7칸, 측면 4칸의 맞배지붕집이며, 방 2칸과 부엌을 전면으로 배치하고 돌출된 부분에는 방과 대청을 배치했다.

 기단은 이중기단으로 1층 기단 위에는 화단을 조성했다.

 안마당 오른쪽에는 창고가 있으며, 안채 왼쪽 뒤로 몇 단 높은 곳에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집인 사당이 있다.

 사당은 안채에서 협문(夾門)을 통해 출입할 수 있으며, 외부와는 별도로 내부 담장이 설치돼 있다.

 안채 뒤뜰에는 몇 백년은 족히 된 커다란 모과나무가 조용히 함께하고 있어 이 고택의 역사를 말없이 증명하고 있다.

 고택을 둘러본 뒤 주변에 천연기념물 제289호로 지정된 수령 400년이 넘는 소나무도 볼거리다.

 예부터 화양리 마을사람들이 마을의 수호신이 깃들인 당산목으로 섬기고 있는 나무이다.

□ 대목리 심씨 고가  경남도 문화재자료 제192호
송호 심자광의 살림집 사랑채 1634년께 건립
대문, 담장 안쪽에 자리 진입방향 90도 꺾어 위치

▲ 심씨 후손 25대손이 현재 거주하고 있는 대목리 심씨 고가 전경.
 합천읍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자리잡고 있는 고가(古家)가 바로 대양면 대목리의 심씨 고가이다.

 이 고택은 원래 송호 심자광의 살림집이었다.

 심자광의 본관은 청송이며, 조선선조25년(1592년)에 태어나 1625년에 무과에 급제한 후 훈련원의 참사, 주부, 정을 역임했으며, 병자호란 때 훈련원정으로 참전했다가 남한산성에서 순절한 인물이다.

 사랑채의 상량문에 의하면 이곳 건물은 1634년 무렵에 처음 지어졌다고 한다.

 심씨 고가는 무척 특이한 구성을 하고 있는 가옥으로 대문이 담장 안쪽으로 깊숙한 곳에 진입방향과 90도 틀어서 자리 잡고 있다.

▲ 대목리 심씨 고가 뒤뜰에 놓여있는 굴뚝.
 대문 안으로 들어서면 좌측으로 180도 꺾으면 다시 계단을 오르고 담장을 따라가는 길이 나오는데 대문채와 같은 방향을 한 중문채가 있다.

 가옥의 진입에서부터 안마당까지 이르는 동선은 마치 아녀자들의 출입을 사랑채에서 살필수 있도록 계획한 것처럼 보인다.

 경내에는 안채, 사랑채, 행랑채, 곳간채, 화장실 등이 남아있는데, 안채는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이고 사랑채는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건물이다.

 자세한 문의는 관리인 심채수(24대손) 씨 ☎ 010-2801-0022로 하면 된다.

▲ 큰 방을 데우기 위해 구들을 길게 빼 마당 한 구석에 놓여있는 굴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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