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12:33 (목)
사랑
사랑
  • 김루어
  • 승인 2013.05.02 22:54
  •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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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 김루어
 아주 오래된 영화를 보았다. 맨발의 청춘. 함께 보고 난 친구 왈, 현실 정합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유치한 영화! 내용인즉슨, 건달 청년과 귀공녀가 사랑을 하다 여자 쪽 집안 반대로 함께 정사한다는 신파적 줄거리ㅡ하지만 나는 친구처럼 영화를 매도할 수만은 없었다. 내게 영화 속 귀공녀와 비슷한 언니가 있었던 것이다. 언니는 나보다 일곱 살 위인, 많이 배우고 잘난 여성이었다, 내가 닮고 싶은, 내게는 우상과도 같은. 당시 언니는 서울서 교편을 잡고 있었는데, 여고 졸업반이 된 봄 어느 날 하교하니 공휴일도 아닌데 언니가 와 있었다.
 네 언니가 사람을 하나 데려왔다, 결혼할 남자라며…… 어머니가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바짝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아버지의 귀가를 기다리지 못하고, 그 남자가 있다는 사랑방 앞으로 가 손가락에 침을 발라 구멍을 내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그 남자를 본 나는 몹시 실망하고 말았다. 키는 언니보다 더 작았고 인물 또한 볼품없어, 가설극단의 광대역을 연상시키는 데가 있는 남자였다. 그렇다고 교육으로 단련된 지성미가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날 밤, 아버지의 노호와 언니의 울음이 담장을 넘었고, 그 남자는 야밤에 집에서 쫓겨났다.
 그날부터 언니의 투쟁이 시작되었다. 결혼허락을 받지 못하면 죽어 버리겠다, 고 선언하고 자기 방문을 걸어 잠그고 단식에 들어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더 단호했다: 그게 차라리 더 낫다! 다음 날 남자가 다시 찾아 왔지만 결과는 매일반이었다. 그 다음 날도 왔지만, 남자는 이제 대문 안으로 들어 설 수도 없었다. 그러나, 남자는 매일 찾아왔다. 그는, 당시 농촌이라 숙박시설이 없었던 탓에 마을 뒷산에 있는 암자에 숙소를 정하고 있었다. 언니는 안에서, 남자는 밖에서, 아버지를 압박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산처럼 꼼짝하지 않았다.
 마당화단에는 꽃들로 만발한 오월이었지만, 부녀간 대립으로 집안은 겨울처럼 얼어붙었다. 하지만, 언니를 지지하는 가족은 아무도 없었다. 어머니를 비롯한 나머지 가족들은 언니를 설득하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언니는 여전히 방문을 걸어 잠그고 대화자체를 거부하고 있었다. 분가해있던 오빠가 소식을 듣고 서울서 달려와 설득을 시도했지만 그녀는 묵묵부답일 뿐이었다. 일주일 째 되던 날 언니가 쓰러졌다. 준비 없이 시작한 단식이 불러온 결과였을 것이다. 이러다 어떤 무서운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불안이 집안을 짓눌렀다.
 어머니는 설득 방법을 달리하기로 하고, 나를 동반하고 암자로 남자를 찾아갔다. 남자의 몰골도 말이 아니었다. 사랑의 질곡으로 인한 심고도 있었겠지만, 먹거리문제도 있었을 것이다. 암자에는 수십 년째 생식만 하는 칠순이 넘은 묵언노승 한 분만 수도하고 있어서 먹거리를 스스로 해결해야했기 때문일 터였다. 언니상황을 들은 남자의 표정에 고뇌의 빛이 어렸지만 그 태도는 여전히 완강했다. 어머니가 다시 설득했다. 사랑도 사람이 산 뒤의 일 아니겠나? 서로 생각하는 시간을 좀 가지세, 라고. 그제야 남자가 마지못한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언니가 건강을 회복하는 데는 한 달이나 걸렸다. 회복된 뒤에도 그녀는 말문을 닫았다. 가족들도 말을 걸지 않았다. 나 또한 그러했다. 입시생인 탓도 있었겠지만, 그녀를 이해하기 어려워서였다. 암자에서 남자를 만나 본 뒤에는 더욱 그러했다. 배우지 못하고, 가지지 못한 때문만은 아니었다. 출신이 달라서만도 아니었다. 남자는 사랑이라고 말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언니에 대한 소유욕뿐인, 자기감정에만 충실한, 언니의 입장은 조금도 배려할 줄 모르는 원시적 욕망에만 충실한 사람이어서, 여자가 인생을 걸고 사랑할만한 남자는 결코 아니었다.
 집에서 이해받지 못한 탓인지, 아니면 남자의 흔적이 남아서인지, 언니는 뒷산 암자에서 주로 시간을 보냈다. 학교에서 일찍 돌아오는 주말이나 일요일 저녁이면, 아버지 성화에 언니를 부르러 암자로 올라가야했다. 그녀는 탑 앞에 서 있거나 아니면 법당에 혼자 좌정하고 있었다. 어둑한 산길을 우리는 말없이 걸어 내려오고는 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녀는 내게 말을 걸 틈을 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번은 틈을 만들어 언니에게 물었다. 사랑이 인생을 걸만한 거야? 사랑은 불길이야, 넌 몰라! 언니는 짧고 단호하게 말했다.
 진달래도 다 저버린 유월 어느 일요일 저녁이었다. 그 날도 마지못해 암자에 가니 있어야 할 장소에 언니가 없었다. 멍석에 널어놓은 쌀과 솔잎을 걷고 있던 노승에게 물었다. 우리 언니 여기 왔어요? 무연한 눈길로 산 밑을 내려다보더니 노승이 손가락으로 땅바닥에 글씨를 썼다. 去(갔어). 올 것이 온 기분이랄까? 하지만, 나는 여전히 언니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반세기 묵언 정진한 노승은 이해가 되는 것일까? 언니에게 한 질문을 노승에게 해보았다. 노승이 다시 천천히 땅바닥에 글씨를 썼다. 不一而不二(하나가 아니지만 둘도 아니니라).
 이 뒷이야기는 독자제위를 어느 한쪽으로 몰고 갈 위험이 있어서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다만, 때로 현실에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고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사랑이 실제로 있다는 정도는 인지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과년한 딸을 둔 탓일까,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그런 사랑을 내 딸이 하는 것은 두렵다. 그래서 어미된 노파심으로 딸에게 잔소리 같은 말을 하게 된다. 사랑은 달콤할 뿐만 아니라 때로 독일수도 있다는 충고를, 사랑은 不一而不二일 수밖에 없는 속성을 갖고 있다는 계고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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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원 2013-05-07 11:01:35
불혹을 산지도 꽤 된 듯 한데
이것의 정의는 아직 잘 내리지 못하고 있답니다
사랑이라 느끼는 감정이 과연 사랑인지의 의구심만 더해지니...

상대로 하여금 내가 계산적이지 않는게 사랑이라고 한다더군요
상대에게 다 줄 수 있는게 사랑이지 조금의 계산이라도 보태어진다면
사랑이라는 단어의 무늬를 얹은 차용일 뿐이라는,
사랑
이것은 오래 오래 생각해 볼 숙제입니다 ^^

이현준 2013-05-05 23:28:17
나는 남여간의 사랑은 원초적인 끌림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일방의 끌림이 아니라 두 사람이 동시든 순차적이든 끌림이 있어야 할것이라는...타인의 관점이나 판단기준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결국은 두 사람의 책임일테니까. 두사람은 두사람뿐만 아니라 관계자들에게도 책임이 있슴을 자각하고 실천의지를 가져야 하리라...사랑을 위하여...

이현준 2013-05-05 23:19:57
나의 경우 여러가지 상황은 위 글의 남자처럼 타인에게 그리 보였을런지 모른다. 나는 그냥 '네가 좋다, 나 외에 다른 사람과는 결혼할 생각 하지 말라. 나 피할 생각 하지 마라. 뭐 이런식이였으니 그녀가 아예 피하는것을 포기하고 순응한 것인지 모른다. 그렇다고 내가 약속한 세가지는 아직도 유효하고 노력하고 있다. 남여간의 사랑은 타인의 관점과는 다를 수도 있을것이란 생각이다.

이현준 2013-05-05 23:09:17
나는 그 때 그녀에게 땃 세가지 약속을 했다. 밥 안굶길것이고 헐벗지 않게 하겠다. 그리고 그녀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해 주겠다, 그리고 그녀의 가족을 생각하며 살겠다라고 약속했다. 왜 내가 그리 했는가 하면 그녀가 좋았기 때문이라, 사랑하기 때문이라 했다. 아주 단순하고 참 무지막지한 사랑타령이었으니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온다. 지금 약속한 세가지 모두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노력을 하고 산다.

이현준 2013-05-05 22:57:53
위 글을 읽으면서 지금도 이와같은 사랑 이야기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다가 있을 수 있다는 결론부터 내리고 만다. 경우는 조금 다르지만...나의 경우에도 이와 비슷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나 보다는 인물이나 배움이나 어느 면이 훨씬 괜찮은 여성을 내가 반 강제?적으로 쫓아 다녀 결혼했으니 그렇다. 부모의 반대가 아니날 당사자의 거부로 나는 거의 1년을 하루같이 그녀에게 매달렸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