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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슬픈 회상 <130>
제9화 슬픈 회상 <130>
  • 서휘산
  • 승인 2013.05.02 22: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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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슬픈 회상 (6)
영봉은 매몰차게 잘랐다. 백지한이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났다는 오만한 착각을 일깨워주듯.

 “그러지 말고 스님을 내 사부로 삼게 해주게.”

 “안될 말!”

 영봉은 매몰차게 잘랐다. 백지한이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났다는 오만한 착각을 일깨워주듯.

 “안되다니?”

 백지한의 얼굴이 사뭇 어두워졌다.

 “난 그대의 스승이 될 자격이 없네.”

 “정녕 스님이 자격이 없단 말인가, 내가 자격이 없단 말인가?”

 “둘 달세.”

 “왠가?”

 “아무튼!”

 영봉의 말은 단호했다.

 “…….”

 생각지도 않은 영봉의 반대에 부닥쳐 실망한 백지한이 반박할 말을 찾고 있는 사이 영봉이 준엄하게 말을 이었다.

 “자넬 기다리는 사람이 있네.”

 “누군가?”

 “어허 이 사람 벌써 수련화를 잊었나?”

 “……!”

 일순 온몸을 전율하며 놀란 백지한이 대답대신 찻잔을 입 속으로 기울였다. 내심 부끄러운 것이다. 사업에 재기할 때까지 잠시 맡긴다 한 것이 벌써 5년이었다.

 ‘수련…….’

 그의 목안에 아이의 이름이 박혔고, 영봉의 시선이 그의 얼굴을 휘감았다.

 “수련화는 하루 한시도 자넬 잊지 않고 기다려왔네.”

 백지한은 긴 탄식을 토했다. 그리고 물었다.

 “그 아이가 지금 몇 살이던가?”

 “이 사람 참, 정말 수련화를 잊었나 보구먼.”

 영봉은 가볍게 실소하며 대답했다.

 “스물 두 살 아닌가.”

 “……!”

 백지한의 가슴이 뜨거워왔다. 벌써 스물이 넘었다니…….

 “이젠 아이가 아닐세.”

 “그래서 계를 줬구만?”

 “그렇네. 지난 여름에……”

 “아무튼 고맙네. 지금 뭐하지?”

 “마산에서 대학 다니고 있네.”

 “대학?”

 감동한 백지한이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그의 온몸에 까실한 전율이 다시 일어났다. 그 전율이 가시기도 전에 영봉이 여유롭게 웃으며 대답했다.

 “경남대에서 역사학을 전공하고 있네.”

 “……!”

 “내심 나는 날 도와주려나 하고 사회복지과를 권했지만, 자네가 재기하면 도울 요량으로 역사 쪽을 택하는 것 같았어.”

 얼어붙었던 백지한이 고개를 수없이 끄덕이고 앞가슴에 합장을 했다.

 “정말 감사하네, 스님.”

 “내 큰 보람일세.”

 영봉은 빙그레 웃고 말을 이었다.

 “만나봐야 할 것 아닌가?”

 “만나야겠지. 그러나…….”

 뇌까리는 듯 하는 백지한의 말을 영봉이 차갑게 잘랐다.

 “그러나고 뭐고 내일이라도 만나보게.”

 “…….”

 “이미 그대와 수련화는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인연을 맺었느니.”

 “끊을 수 없는 인연?”

 백지한이 침묵을 깨자 영봉의 입에서 놀라운 말이 튀어나왔다.

 “그래, 부부의 인연 말일세.”

 “뭐라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백지한의 눈에 불이 일었다.

 “다시 말해 보게.”

 그러나 영봉의 목소리는 남의 말을 하듯 자연스러웠다.

 “죽은 남주보살의 혼이 수련화에게로 옮겨갔네.”

 “이 친구!”

 당혹한 백지한이 그답지 않게 험악한 얼굴로 소리쳤다.

 “이거 순전 땡추 아닌가. 그런 얼토당토않은 말을 지껄이다니.”

 “허허, 오늘 내가 부처와 땡초 사이를 왔다갔다하는구먼. 허허허.”

 “웃지말어 이 사람아.”

 거칠게 말을 토한 백지한이 불만스런 얼굴로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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