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달을 좋아한다. 달에 대한 일차적인 궁금증은 과학의 발달덕분에 이미 벗겨졌지만, 여전히 내게 있어서 달은 자연을 넘어 하나의 꿈이고 동경대상이다. 취학이전까지 내 유일한 친구는 달이라고해도 틀리지 않는다. 나는 어릴 때 유난히 몸이 약해서 제대로 집밖에 나가 놀지 못했다. 나가 놀았다하면, 반드시라고 할 만큼 몸살로 앓아눕기가 일쑤였다.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을 터이다. 당시 농촌 아이들의 놀이라는 것이 대개는 산과 들이나 강변으로 뛰어다니는, 몸을 많이 움직이는 놀이여서 몸이 약한 내게는 놀이 자체가 무리였던 것이다.
당연히 친구가 있기 어려웠던 나는 집안에서만 맴도는 작은 다람쥐였다. 아침을 먹고 하루가 시작되면 어머니나 할아버지 뒤를 쫓아다니다 귀찮아하는 기색이 보이면, 눈치는 있었는지 앞마당 화단에 쪼그리고 앉아 꽃들을 보았다. 채송화ㆍ다알리아ㆍ나리ㆍ붓꽃ㆍ금잔화…… 오랜 시간 꽃들을 들여다 보았다. 붉거나 노란, 자신의 색만으로 다가왔던 꽃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변한다는 것을 그 때 알았다.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지는 꽃잎도 있었다. 그 변화가 슬퍼서 나는 그 슬픔에서 도망쳐 뒤란으로 가고는 했다.
뒤란에는 장독대가 있었고 그 옆에는, 내게 한 아름이나 되는 커다란 오동나무가 세 그루 서 있었다. 할아버지가 젊을 때 심은 나무였다. 고무줄을 두 그루 오동나무 둥치에 묶어 잇고 고무줄놀이를 시작했다. 하지만 혼자 하는 놀이에 이내 싫증이 난 나는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 보고는 했다ㅡ거진 매일이다시피 되풀이 되는 내 유년의 단조롭기 짝이 없는 일상. 이런 일상에 어느 날 변화가 생겼다. 심드렁하게 올려다 본 하늘에, 청록색 오동나무 잎 사이로 눈썹달이 희미하게 웃고 있었던 것이다. 낮에도 달이 뜬다는 것을 그 때 처음 알았다.
그게 다섯 아니면 여섯 살 때 봄이었다. 그 뒤로 내 일상이 바뀌었다. 나는 외롭지 않았다. 친구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더 이상 어머니나 할아버지 뒤를 쫓아다니지 않았다. 혼자 집안 여기저기를 맴돌다 지치면, 대청마루에 무릎 깎지를 끼고 턱을 괸 자세로 앉아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그러나 며칠을 기다려도 그네는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야속하기 짝이 없었다. 모처럼 생긴 친구를 잃은 기분이랄까. 그 상실감이 생각보다 컸던지 나도 모르게 훌쩍이고 있었나 보았다, 마당을 지나던 할아버지가 우는 이유를 물은 것으로 보아.
이유를 들은 할아버지가 달처럼 빙그레 웃었다. 그때 알았다: 그네는 낮에는 한 달에 네 번만 오른쪽 왼쪽 눈썹 달로 온다는 것을. 그것도 날이 맑을 때만 오는 까다로운 친구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 그네를 꽃이나 풀이나 나무처럼 낮에 매일 만날 수는 없지만, 대신 밤에는 하루만 빼고는 마음만 있다면 매일 만날 수 있다는 것을. 물론 이때도 조건은 있었다, 날이 맑을 때라는 조건이. 대신 그네는 꽃이나 풀이나 나무처럼 계절에 변덕스럽지 않았다. 물론, 그네도 변하기는 했다. 그러나 그 변화는 내가 충분히 적응할 수 있는 아주 느욱한 변화였다.
하지만 그네는 때가 되면, 어김없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고마운 벗이었다. 그렇다, 그네는 산하대지와 뭇 사물과 인간을 포함한 뭇 생령들에게 변함없는 벗이었다. 그네는 벚꽃과 개나리가 어우러진 봄밤 하늘에도, 녹음과 물 가득한 여름밤 하늘에도, 만산에 수를 놓는 단풍이 풍염한 가을밤 하늘에도, 산하대지가 눈과 한파로 얼어붙은 겨울밤 하늘에도, 크기와 형태는 달라도, 여여하게 나타나 세상을 비춰 주었다. 그렇다, 그네가 있어 계절은 더 아름다워졌고 덜 쓸쓸해질 수 있었고, 고단한 우리네 삶은 덜 힘들어질 수 있었고 덜 외로워질 수 있었다.
그네가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는, 그네가 한 달에 하루 쉬는 그믐밤을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으리라.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낮달뿐만 아니라 밤에도 달을 보기가 어려워졌다. 하늘을 찌르는 마천루로 가득해지는 도시화와 공업화로 대기가 흐려졌기 때문이다. 사람들도 그전처럼 달을 찾지는 않게 되었다. 달보다 밝은 전기불빛이 밤을 밝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기불빛에는 정감이 없다, 실용성은 있을지라도. 그렇다. 전기불빛에는 꿈이 없다. 신화가 없다. 시가 없다. 그림이 없다. 최소한 내게는 그러하다. 그런데, 과연 나만 그러할까?
‘봄밤 한때는 천 냥에 값하나니, 꽃에는 맑은 향기 달에는 그림자라’ 라는 오래된 싯귀가 있다. 봄밤의 정취와 아름다움을 이만큼 그려낸 절창도 드물 것이다. 그런데 올봄은, 춘래불사춘이라는 싯귀가 어울릴 정도로, 날이 춥고 비가 잦아 꽃과 달이 함께 한 봄밤이 드물었다. 수요일은 드물게 날이 맑은 보름이었고 문화제 전야제였다. 축제에 많은 이들이 모였다. 나처럼 봄밤의 꽃과 달에 기갈 든 이들이 모처럼 꽃과 달에 대한 기갈을 해소한 봄밤이었다. 아직 꽃과 달에 대한 기갈을 해소하지 못한 분들께 참여를 권하고 싶다. 축제는 일요일까지다.
당연히 친구가 있기 어려웠던 나는 집안에서만 맴도는 작은 다람쥐였다. 아침을 먹고 하루가 시작되면 어머니나 할아버지 뒤를 쫓아다니다 귀찮아하는 기색이 보이면, 눈치는 있었는지 앞마당 화단에 쪼그리고 앉아 꽃들을 보았다. 채송화ㆍ다알리아ㆍ나리ㆍ붓꽃ㆍ금잔화…… 오랜 시간 꽃들을 들여다 보았다. 붉거나 노란, 자신의 색만으로 다가왔던 꽃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변한다는 것을 그 때 알았다.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지는 꽃잎도 있었다. 그 변화가 슬퍼서 나는 그 슬픔에서 도망쳐 뒤란으로 가고는 했다.
뒤란에는 장독대가 있었고 그 옆에는, 내게 한 아름이나 되는 커다란 오동나무가 세 그루 서 있었다. 할아버지가 젊을 때 심은 나무였다. 고무줄을 두 그루 오동나무 둥치에 묶어 잇고 고무줄놀이를 시작했다. 하지만 혼자 하는 놀이에 이내 싫증이 난 나는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 보고는 했다ㅡ거진 매일이다시피 되풀이 되는 내 유년의 단조롭기 짝이 없는 일상. 이런 일상에 어느 날 변화가 생겼다. 심드렁하게 올려다 본 하늘에, 청록색 오동나무 잎 사이로 눈썹달이 희미하게 웃고 있었던 것이다. 낮에도 달이 뜬다는 것을 그 때 처음 알았다.
그게 다섯 아니면 여섯 살 때 봄이었다. 그 뒤로 내 일상이 바뀌었다. 나는 외롭지 않았다. 친구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더 이상 어머니나 할아버지 뒤를 쫓아다니지 않았다. 혼자 집안 여기저기를 맴돌다 지치면, 대청마루에 무릎 깎지를 끼고 턱을 괸 자세로 앉아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그러나 며칠을 기다려도 그네는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야속하기 짝이 없었다. 모처럼 생긴 친구를 잃은 기분이랄까. 그 상실감이 생각보다 컸던지 나도 모르게 훌쩍이고 있었나 보았다, 마당을 지나던 할아버지가 우는 이유를 물은 것으로 보아.
이유를 들은 할아버지가 달처럼 빙그레 웃었다. 그때 알았다: 그네는 낮에는 한 달에 네 번만 오른쪽 왼쪽 눈썹 달로 온다는 것을. 그것도 날이 맑을 때만 오는 까다로운 친구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 그네를 꽃이나 풀이나 나무처럼 낮에 매일 만날 수는 없지만, 대신 밤에는 하루만 빼고는 마음만 있다면 매일 만날 수 있다는 것을. 물론 이때도 조건은 있었다, 날이 맑을 때라는 조건이. 대신 그네는 꽃이나 풀이나 나무처럼 계절에 변덕스럽지 않았다. 물론, 그네도 변하기는 했다. 그러나 그 변화는 내가 충분히 적응할 수 있는 아주 느욱한 변화였다.
하지만 그네는 때가 되면, 어김없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고마운 벗이었다. 그렇다, 그네는 산하대지와 뭇 사물과 인간을 포함한 뭇 생령들에게 변함없는 벗이었다. 그네는 벚꽃과 개나리가 어우러진 봄밤 하늘에도, 녹음과 물 가득한 여름밤 하늘에도, 만산에 수를 놓는 단풍이 풍염한 가을밤 하늘에도, 산하대지가 눈과 한파로 얼어붙은 겨울밤 하늘에도, 크기와 형태는 달라도, 여여하게 나타나 세상을 비춰 주었다. 그렇다, 그네가 있어 계절은 더 아름다워졌고 덜 쓸쓸해질 수 있었고, 고단한 우리네 삶은 덜 힘들어질 수 있었고 덜 외로워질 수 있었다.
그네가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는, 그네가 한 달에 하루 쉬는 그믐밤을 생각해보면 쉽게 알 수 있으리라.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낮달뿐만 아니라 밤에도 달을 보기가 어려워졌다. 하늘을 찌르는 마천루로 가득해지는 도시화와 공업화로 대기가 흐려졌기 때문이다. 사람들도 그전처럼 달을 찾지는 않게 되었다. 달보다 밝은 전기불빛이 밤을 밝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기불빛에는 정감이 없다, 실용성은 있을지라도. 그렇다. 전기불빛에는 꿈이 없다. 신화가 없다. 시가 없다. 그림이 없다. 최소한 내게는 그러하다. 그런데, 과연 나만 그러할까?
‘봄밤 한때는 천 냥에 값하나니, 꽃에는 맑은 향기 달에는 그림자라’ 라는 오래된 싯귀가 있다. 봄밤의 정취와 아름다움을 이만큼 그려낸 절창도 드물 것이다. 그런데 올봄은, 춘래불사춘이라는 싯귀가 어울릴 정도로, 날이 춥고 비가 잦아 꽃과 달이 함께 한 봄밤이 드물었다. 수요일은 드물게 날이 맑은 보름이었고 문화제 전야제였다. 축제에 많은 이들이 모였다. 나처럼 봄밤의 꽃과 달에 기갈 든 이들이 모처럼 꽃과 달에 대한 기갈을 해소한 봄밤이었다. 아직 꽃과 달에 대한 기갈을 해소하지 못한 분들께 참여를 권하고 싶다. 축제는 일요일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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