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21:29 (금)
제8화 영웅의 귀환 <120>
제8화 영웅의 귀환 <120>
  • 서휘산
  • 승인 2013.04.18 22: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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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그리운 세월 (8)
백지한이 단전호흡과 택견으로 보내며 마음의 눈을 열어가고 있는 동안, 수련은 검술을 익히며 이제 소녀티를 벗었다.

 수련이 눈을 번쩍 떴다.

 “눈만은 언제나 그 사람의 마음과 일치한다.”

 수련은 영봉의 말뜻을 알아차리려 정신을 집중하며 당돌하게도, 영봉의 눈을 쏘아보았다. 영봉이 칭찬했다.

 “그래, 눈을 보아야한다. 상대의 눈을!”

 그 칭찬에 수련의 가슴이 불꽃처럼 활활 타올랐다.

 대신 어느 틈엔가 소녀의 눈은 영봉의 빛나는 눈을 잔잔히, 침착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눈으로 죽도를 상단으로 치켜들었다. 둥근 달이 그녀의 죽도에 반으로 갈라지고 있었다.

 영봉이 그 장엄한 풍경을 받아들였다.

 “이얏!”

 허공을 가르는 검. 그리고 우지끈 부러지는 솔가지 소리.

 “……?”

 눈의 무게를 못이기고 내려앉은 솔가지의 비명에 놀란 수련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전방을 두리번거리는데 그녀의 뒤에서 너털웃음이 터졌다.

 “허허허.”

 수련이 뒤돌아보니 영봉은 어느새 자기 등뒤에서 죽도를 땅에 짚고 있었다.

 “네가 내 몸 대신 소나무를 갈랐구나.”

 “됐다. 이제.”

 수련이 죽도를 거두고 무릎을 꿇었다.

 “재주가 있어 보인다.”

 “가르쳐주시소.”

 수련이 머리를 깊숙이 숙였다.

 “오냐. 내일부터 새벽예불 마치거든 곧장 이리로 오거라.”

 “예, 스님. 감사합니더.”

 “일어나거라.”

 수련이 일어섰다. 영봉은 다시 따뜻한 웃음을 지었다.

 “애기보살.”

 “예, 스님.”

 “그날은 온다.”

 “예?”

 “네가 오늘 마음 속에 품은 그날은 반드시 온다.”

 그제야 영봉의 말뜻을 알아들은 수련이 고개를 숙였다.

 “예…….”

 “그리고 아저씬 차분하게 기다리도록 해라.”

 “…….”

 “언젠가 낭군이 될 사람인걸.”

 “……!”

 “왜? 싫은고?”

 그 말에 아이가 침묵을 깼다.

 “스님 말씀이 믿기지가 않습니더.”

 “그렇겠지.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너에게로 가게 돼 있어.”

 “전 기다리기가 너무 힘듭니더.”

 발그레 붉어오는 수련의 땀에 젖은 얼굴을 바라보며 영봉이 여유롭게 웃었다.

 “허허허. 그렇게 좋은고…….”

 그 웃음에 수련의 가슴이 벅차 오르며 갑자기 두 줄기 눈물이 눈동자를 적시고 뺨을 흘러내렸다.

 눈물에 얼룩진 두 뺨을 때마침 물드는 아침노을이 어루만진다.

 이윽고 영봉이 죽도를 박달나무에 걸고 아이의 어깨를 잡았다.

 “가자.”

 “예, 스님.”

 두 사람이 산을 내려가자 구경왔던 산짐승들도 뿔뿔이 제 집으로 흩어져갔다.

 # 세월은 떠나가고 찾아오는 철새들의 날갯짓처럼 흘러 흘러갔다.

 세월과 함께 하는 인생이란 그런 것이던가.

 가면 오는 것이고, 오면 또 가는 것.

 수련이 훌쩍 건너뛰고 싶기만 했던 그 나날들…….

 그 세월은 기다림과 그리움과의 치열한 싸움이었다. 목마르게 기다리는 사람이 있기에….

 백지한이 그 나날들을 단전호흡과 택견으로 보내며 마음의 눈을 열어가고 있는 동안, 수련은 검술을 익히며 이제 소녀티를 벗었다. 영봉과의 약속을 지켜내며 대학생이 된지도 벌써 일년이 지난 것이다.

 마산 월영동에 있는 경남대학교의 3월 말.

 봄 축제가 한창인 대학구내는 풋풋한 활기로 넘쳤다. 춘사 나운규의 ‘아리랑’이 정통악극으로 재구성돼 무대에 올라와있는 한마관대강당도 사람들로 꽉 찼으나 수련은 허전하고 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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