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 할
역 할
  • 김루어
  • 승인 2013.04.11 22:17
  •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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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 김루어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참으로 곤혹스러운 문제 가운데 하나가 자녀문제다. 며칠 전에 있었던 일이다. 십 수 년 전에, 한동네에 살다가 아이들 교육문제로 서울로 이사를 간 지인으로부터 전에 살던 동네에 온 김에 만나고 싶다는 전화를 받았다. 반가웠다. 딸만 둘이었지만 교육문제엔 그야말로 열성인 맹모(孟母)였는데, 나이 차이는 조금 있었지만, 그네의 큰아이가 내 작은 아이와 동갑이어서 각별하게 지낸 사이였다.
 마침 일 때문에 시내에 있던 참이라 약속한 한정식 집에 내가 먼저 도착했다. 한동네 자모회원이라는 인연 말고 특별한 연은 없었지만, 인물이 고울 뿐 아니라 성격이 다정다감하고 붙임성이 있어서 나를 친언니처럼 따르던 여인네였다. 그래서인지 이사 간 뒤에도 몇 년 동안은 전화를 주고받거나 상대지역에 가면 서로 만나기도 하는 사이였는데, 서로 사는 게 바쁘다 보니 그렇게 되었는지 십년쯤 전에 연락이 끊어져 버렸다.
 그런데, 긴 세월 만에 만난 그네는 내가 기억하는 그네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입성은 부잣집 마나님인데 안색은 초췌하기 짝이 없어 꼭 환자 같았다. 언니…… 이렇게 불러 놓고 그네는 더 말을 잇지 못했다. 표정에는 곧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물기가 있었다. 직감적으로 나는 그네의 마음을 진정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옆으로 가 손을 잡고 어깨를 다독여 주었다.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그네는 한동안 소리 없이 울먹였다.
 그녀를 만나고 돌아오는 내 마음은 곤혹스럽기 짝이 없었다. 사연은 이랬다. 대중음악을 전공하려는 그네의 둘째 딸을 순수 음악을 하라고 강권, 지난 3월 성악과에 진학시켰더니 반발하여 가출해버렸다는 것이다. 뒤늦게 후회하고 성장지를 역순하며 딸을 찾아 다녔지만 못 찾아, 마지막 기대를 걸고 초등학교를 몇 년 다닌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황당한 일이기도 하지만, 아주 남의 일이라고 할 수만도 없었다. 내 조카 가운데 한 녀석도 부모 원하는 전공으로 진학시켰더니 일 년 만에 휴학계를 내고는 군대에 가 버린 것을 보면.
 이 세상에 부모 자식 간만큼 가까운 사이가 있을까? 하지만 우리는, 가장 가까운 사이인 부모 자식 간의 갈등이나 충돌을 주변에서 드물지 않게 보거나 듣고 또는 직접 겪기도 한다. 갈등과 충돌의 종류와 원인은 양 세대 년배층위에 따라 다양하겠지만 여기서는 진학문제에 한하여 생각해본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나 정도차이는 있을 지라도 한 번쯤 겪는 문제이기에.
 진학을 두고 부모 자식 간에 갈등이나 충돌이 생기는 첫 번째 원인은 성적문제다. 이 문제는 대개 부모가 물러서는 형태로 풀린다. 아이에게 성적이상인 상급학교 진학을 요구하는 자체가 난센스이므로. 두 번째는 부모능력을 넘는 학비가 드는, 혹은 진학이 불가능한 경제 환경에서 진학하고자 하는 경우이다. 이 경우는 아이가 물러서는 선에서 문제가 풀린다. 물론, 빚을 내거나 전세금을 빼서 진학시키는 경우도 드물지는 않다.
 세 번째는 성적이나 경제적 환경은 문제가 되지 않는데, 전공에 대한 아이와 부모의 생각이 다른 경우이다. 첫 번째 두 번째 경우인 이들 입장에서는, 행복한 고민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문제는 당자들에게는 국외자가 보는 것보다 심각하다. 극단적일 경우, 지인 딸의 경우와 같은 사태도 벌어질 수 있을 만큼. 이 세상에 부모자식 간만큼 가까운 사이는 없다. 그런 부모 자식 간에 문제가 대화로 풀리지 못하고 증폭되는 경우는 왜 생길까?
 그 이유는 이때의 선택이 한 인간의 미래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고 보고 양 세대가 물러서지 않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기준으로 그 중요성을 보는데서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부모는 자기시대의 기준으로, 아이는 자기세대의 눈으로. 서로 물러나지 않고 결국 충돌할 경우, 양측이 다 기준이 있기에 당연히 논리가 수반되는 충돌이어서,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옳아 다른 한쪽은 전적으로 틀릴 수는 없는 사태이다. 하지만, 충돌결과는 대개가 부모의 뜻이 관철되는 식으로 나타난다. 현실적인 역학관계 때문이다.
 물론, 부모세대도 아이의 심복(心服)을 받은 것은 아님을 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말로 아이를 달랜다. 인생길은 이정표가 있는 포장된 길이 아니라, 돌투성이 덤불투성이 뿐만 아니라, 곳곳에 웅덩이나 낭떠러지가 있는 구절양장(九折羊腸) 길이다. 우리는 그 험한 길을 거쳐 온 노하우가 있다. 너희는 우리말을 따라 길을 가면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착한다. 요약하자면, 부모가 길을 가는 자식의 눈이 되어 주겠다는 말씀이다.
 그런데, 이는 참으로 온당치 못한 말씀이다. 내 말에 반발하는 부모세대가 있다면, 당장 아이 손을 잡고 집 앞 골목길에 양세대가 서 보시라. 그리고 부모세대가 앞에 선 뒤 뒤에 선 아이에게 눈을 감게 하고 지시에 따라 걷게 해 보시라. 아마, 채 십 분이 지나지 않아 부모세대는 생각지 못한 모습의 아이를 보시리라. 집 앞 골목길이기에 다행이었지, 험하고 험한 구절양장 같은 인생길이었다면? 그렇다, 부모의 역할은 아이에게 길이 있음을 일러주는데 까지다. 길은 아이가 가는 것이다. 그렇지만 너무 걱정 할 필요는 없다. 아이는 우리보다 두 눈이 더 초롱초롱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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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선 2013-04-12 19:34:21
가장 가까워서
욕심을 부리나 봅니다.
저도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는데
아이들 공부시키려고
발품을 파는 어머니들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하겠더라구요
하지만 아이들이 미래까지 책임지려고 하는 것은
과한 것이겠죠.
그건 아이들을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는 것이 될 테니...
과유불급이라고 했던가요
시인님의 글을 읽으면서
진정한 사랑은 스스로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몽재(이현준) 2013-04-12 13:28:18
교육이 무너지면 나라의 근간이 무너지니 말입니다. 순리대로, 자연적임을 거스리는 것 말로 순리대대로.그에 따른 문제들은 대화, 소통으로 해결되리라 믿고 있습니다. 14%가 아니라 86%가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자유롭게 순리에 따르면 제각기의 재능이 나타날것이고 빛을 발항 것입니다. 부모의 욕심으로 아이들을 바라보지 말고 아이들이 많은 얘기꺼리를 갖게 만들어야 할일입니다.

몽재(이현준) 2013-04-12 13:22:13
걱정된다 하면서 토론을 그만 둔 일이 있지요. 지금도 나는 그 때의 생각과 변함이 없는 자연순응 주의입니다. 아이들 허리에 적당한 길이의 고무줄을 매어주고 그 고무줄이 터져 끊어지지 않을 만큼의 거리까지 자유롭게, 방목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가정적으로, 국가적으로 훨씬 도움이 될것이고 교육적으로도 큰 도움이 될거라는 확신을 가진 사람입니다.순리에 역행하면 큰일 만나지요.

몽재(이현준) 2013-04-12 13:15:39
했더니 '이선생은 애를 낳아 봤냐?'고 하길래 어이없어 했지요. 나중에는 그 주임 교수분이 자기 아들이 14살인데 그아이가 대학을 가려면 14%밖에 못가니 큰일이다라는 겁니다. 마침 제 큰아이가 14살이라...꼭 같군요. 그런데 14%만 대학에 들어 갈 수 있으니 나머지 86%의 아이들은 어쩝니까? 하면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면서 우리나라 최고으ㅟ 지성인인 귀하의 생각이 이러한 것을 알았으니 이 나라의 장래가

몽재(이현준) 2013-04-12 13:10:12
가임여성이 일생동안 배란하는 것이 몇개인데 그래도 하나님께서 적절히 조절해 주시어 평균적으로 5~7명을 낳는것이 평균이라고 했지요. 그래도 많으면 부부가 소통하면 2~3명을 들 수 있고 그래도 많으면 1~2명도 충분히 가능한데 뭔가 잘못된 논리로, 사회가 마구 내 몰듯 하나만 낳자니 이게 될 말이냐, 인위적으로 남녀에게 수술을 가해 하나만 낳자니 이런정책, 이런 일을 위해 여성지도다들에게 교육한다니 정말 큰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