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19:21 (금)
[탐방]김해의 사기장, 소산 배창진
[탐방]김해의 사기장, 소산 배창진
  • 박준언 기자
  • 승인 2013.04.10 00: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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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사는 흙ㆍ불이 창조한 자연 닮은 도자기지요"
  부친 배종태에 이어 2대째 도공의 길
       전통가마 운영ㆍ 천연재료 사용 고집
             日 전승전 대상 받아 작품성 인정

"1년에 3번만 가마에 불 지펴 마음에 드는 작품 내기 힘들어"

 

▲ "좋은 도자기는 새 생명을 잉태한 산모와 같이 인내와 정성과 염원이 더해져 탄생한다"는 배창진 사기장.
"진사(辰砂)는 오직 불의 힘과 사람의 정성만으로 문양이 결정되기에 가장 자연에 가까운 도자기입니다."

 소산(小山) 배창진(42) 사기장은 진사(辰砂)야말로 자연을 거슬리지 않고 순응하며 탄생하는 자연이 빚은 도자기라고 강조한다.

 부친 배종태 사기장에 이어 2대째 토광도예(土光陶藝)를 운영하고 있는 그는 태어날 때부터 도예가의 피를 물려받았다. 어릴 적부터 손재주가 뛰어났던 그는 중학교 3학년이 되던 해 아버지로의 권유로 본격적인 도예가의 길로 들어섰다. 평생을 도자기만 빚어온 아버지의 제자가 돼 흙을 만들고 장작을 패면서 조금씩 기술을 익혔다. 고등학교와 대학교는 도자기 학과로 진학해 옛 기술과 현대이론을 접목시켜는 연구를 거듭했다.

 전통 가마를 고집하며 흙을 만진지 30여 년. 그는 우리나라를 넘어 일본에서 그 실력을 인정받았다. 지난 2012년 일본 전승전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한국 장인의 뛰어난 기술과 우리 도자기의 아름다움을 일본에 떨친 그의 작품은 지금도 일본에서 전시 중이다.

 "진사는 단풍의 붉은 색, 봄날 돋아나는 쑥의 녹색, 검은 듯 붉은 팥색이 어우러질 때 가장 아름다운 도자기로 탄생합니다." 표면에 아름다운 선홍색 무늬를 연출하는 진사도자기는 유약에 산화동 성분을 첨가해 환원소성을 거쳐 만들어지는 도자기다. 진사의 특징은 산화동 성분이 가마에서 구워질 때 요변, 즉 가마 안에서 변하는 성질이 심해 사전에 어떤 문양의 도자기가 만들어질지 예상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진사도자기를 만들 때는 유약에 대한 숙련과 불을 다루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많은 실패를 통해 찾아낸 가마 속 온도가 1천320도입니다. 이 온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진사 문양이 생깁니다. 조금만 온도차가 나도 원하는 작품을 얻을 수가 없어요. 정성과 시간을 바탕으로 그날의 날씨와 바람과 모든 조건이 맞아야 봉황이나, 용, 산수화 같은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일 년에 3번만 가마에 불을 넣는다는 그는 마음에 드는 작품을 만나기는 참으로 어렵다고 전했다. 한번에 50여 점의 도자기를 구워내지만 그 중 스스로 흡족할 만한 작품은 한두 점에 불과하다고 한다.

 진사도자기의 붉은 색의 비밀은 원래 검은색을 띠는 산화제2구리가 소성과정에서 산화제1구리로 변하며 붉은 색을 발산하는 것이다. 소성작업은 특히 민감한 부분이다. 구리유약은 불에 아주 예민해 온도가 너무 높으면 휘발돼 모두 사라진다. 적절한 환원과정은 필수지만 너무 심하면 어둡고 칙칙한 색이 된다. 그래서 진사는 똑같은 유약을 입혀 구워도 완성된 모습은 제각각이다.

 진사의 이런 고유한 성질이 도예가와 진사애호가들에게 매력 포인트다.

 한없이 맑으면서도 붉은 진사의 색은 완벽한 느낌의 색을 만나기는 좀처럼 쉽지 않다.

 조선시대에는 진사도자기를 주점사기(朱點沙器), 진홍사기(眞紅沙器)라 불렀다.

 중국이나 일본의 도자기가 형태나 색상에서 화려함과 기교에서 극치를 달리며 울긋불긋한 색을 만들었다면, 우리 선조들은 차분한 바탕 위에서 절제된 아름다움을 표현할 때 진사기법을 사용했다. 그래서 진사도자기는 우리 민족성과도 닮아 있는 도자기다.

 "이제야 흙과 불에 대해 조금 알 것 같습니다. 도예가는 자신이 만지는 흙의 성질과 불의 움직임에 대해 잘 파악해야 합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그릇이 아닌 스스로에게 거짓이 없는 그릇을 만들어야 합니다."

 흙 만지는 일 외에는 자신은 할 줄 아는 것이 없다는 배 사기장. 그는 소박한 꿈을 가지고 있다. 바로 자신을 도예가의 길로 걷게 한 부친과 함께 전시회를 여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의 부친은 사고로 더 이상 일을 할 수가 없다.

 "부자 도자기전을 여는 것은 아마도 힘들 것 같습니다. 그래도 아버지가 곁에 계시는 것만으로도 제게는 큰 힘이 됩니다."

 스승인 아버지를 넘어서는 독창적인 도자기를 구현하는 것이 아버지께 보답하는 길이라고 믿는 배 사기장. "아직도 멀었습니다. 도자기는 기교만 있다고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 삶에 대한 애환을 하나의 작품 속에 다 담아 낼 수 있는 농익은 기술이 있어야 합니다. 아마도 수십 년은 더 흙과 불에 대한 내공을 쌓아야 할 것 같습니다."

 개인전을 열기에는 아직 실력이 부족하다며 겸손함을 보인 그는 앞으로 10년 후에나 첫 개인전을 열겠다고 했다. 그리고 살아온 만큼 더 도자기를 연구해 나이 80이 되면 인생을 마무리하는 전시회를 열고 싶다는 소망을 전했다.

 순수한 자연의 재료만으로 원초적 색을 찾고 싶다는 그는 늘 기도하는 마음으로 작품을 빚는다고 했다.

 "자연스러우면서도 경박하지 않고, 화려하지 않으면서 깊이가 묻어 나오는 도자기를 만들고 싶습니다."

■ 약 력
배창진 사기장 수상경력
2006 전국기능대회 동상
2010 경남공예대전 동상
경남차사발 으뜸사발 선정
2012 일본전승전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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