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19:12 (토)
강가에서
강가에서
  • 김루어
  • 승인 2013.04.04 20:28
  •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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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 김루어
 언제나처럼 강(江)은 거기에 있었다, 푸른 물결을 일렁이며. 나는 천천히 강변 공원길을 걸었다. 전에 서덜이었던 곳을 돋워 만든 공원이었다. 기억 속에만 남아 있는, 유년기에 동무들과 재잘대며 조약돌을 줍던 서덜이었다. 이젠 그네들 얼굴뿐만 아니라 이름들조차 흐리다. 마치 전생의 인연들처럼. 바람은 차지 않았다. 어른들은 배드민턴을 치고 있었고, 아이들은 공놀이를 하고 있었다. 강 쪽 공원 가장자리로는 연초록으로 뾰쪽하게 일어서는 어린 갈대들이 산들거리고 있었다, 봄바람에.
 공원벤치에 앉았다. 강을 내려다보았다. 물소리를 들었다, 강물소리를. 목련이 핀 봄이었지만 물소리는 지난겨울에 왔을 때처럼 차가웠다. 하지만 그 소리에는 겨울의 독기대신, 오래 강물소리를 들어온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아주 여린 따스함이 있었다. 그 따스함은, 귀를 기울이고 잘 들어보면, 봄의 제전의 한 소절 같은 음악이다. 신성한 봄의 음악. 분명 스트라빈스키는 봄 강물소리를 들을 줄 아는 작곡가였을 것이다. 어쩌면 그는 나처럼 오랫동안 강가에 앉아 있어 본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각 계절의 강물소리를 구분할 수 있을 만큼.
 나는 이 강가에서 자랐다. 고향집이 이 강에서 멀지 않았다. 아주 어렸을 때, 이 강에 와 내가 한 첫 번째 행동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것은 강물에 나를 비춰 본 기억이다. 거울에 비치는 나와는 다른 나였다: 흔들리는 나. 나는 흔들리지 않는데 강물에 비친 나는 흔들리고 있었다. 흔들리는 나를 보기위해 나는 자주 이 강가에 왔다. 흔들리는 이유를 안 뒤에도 강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것은 강이 내는 물소리였다. 신비한 물소리, 그것은 강물이 흘러 흘러 바다로 가면서 내는 음악소리였다. 그 음악소리를 들으며 나는 바다로 가는 꿈을 꾸었다.
 그런데, 나는 강물 소리만으로는, 음악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는 바다로 가는 방법을 알 수가 없었다. 그 음악소리를 말로 번역해야 한다는 것을 안 것은 여고시절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를 읽으면서였다. 하지만 나는 싯다르타처럼 강물소리를, 강이 내게 건네는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강물소리가 음악일 수 있다는 데까지는 가능했지만 말로 치환하는 데까지는 내 근기(根機)가 미치지 못했던 것이리라. 그 시기는 내 삶의 첫 번째 시련기와 일치한다. 가정 형편상 나는 대학을 더 다닐 수가 없었던 것이다. 더 이상, 나는 바다를 꿈꿀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루카치를 읽었다. 그가, 어둠속에 있는 내게, 하늘을 가리켰다. 어두운 하늘에 작은 별 하나가 빛나고 있었다. 나는 루카치의 별을 따라 가리라 마음먹었다. 그러나 그 별은 너무 작고 희미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어둠을 걷어내고 길을 인도해주기에는. 나는 얼마동안 그 별을 따라가다, 몇 번인가 돌부리에 채이고 웅덩이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결국은 주저앉고 말았다. 루카치도 던져 버렸다, 별을 말한 루카치 자신이 어둠속에 있었고 일생을 통하여 허둥거리며 살았다는 것을 알고는. 물론, 가장 큰 원인은 내 약한 의지 탓일 것이다.
 그 다음은 긴 세월, 비틀거리는 생활인이었다. 조그마한 성공도 있고, 작은 실패, 큰 실패도 있는. 그 세월동안, 아무리 힘들어도 강가에 가지 않았다. 아무리 흔들려도 하늘을 보지도 않았다. 눈물까지 흘리고 싶지는 않아서였다. 그러던 내가 몇 년 전부터, 오늘처럼 일이 있어 고향에 들를 때나 기회가 되면, 강가에 앉아 다시 강물소리를 듣는다. 때로는 하늘을 올려다보기도 한다. 단순히 세월 탓만은 아니다. 아마, 그것은 이제야 내가 선 자리를 제대로 알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선가(禪家)에 전해오는 말에 입처개진(立處皆真)이란 말이 있다. 공초(空超)선생은 이를, 네가 선 자리가 꽃자리다, 라고 옮겼다. 하지만 아직도 나는 때로, 강물처럼 흘러 바다에 닿고 싶고, 아직도 나는 때때로 별을 따라 가고 싶다: 내 자신만의 바다, 내 자신만의 별을 따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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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원 2013-04-07 23:20:41
'입처개진,
공초(空超) 선생은 이를, 네가 선 자리가 꽃자리다.'라니
제가 선 자리를 다시 한번 살펴봐야겠습니다
저를 이끌어 주는 별자리도 궤도에 잘 머무는지도요.

절기상 분명 봄임에도 강은 겨울만큼 차지마
물속에는 분명 계절을 감지한 변동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이는 표면에 드러나지 않아도 변화를 직감적으로 알고 변해 가라는 것이기도 하구요
늦은 밤
좋은 글로 각오까지 다져봅니다
감사합니다

강대선 2013-04-07 11:30:07
시인님.
저도 강가에서 자랐습니다. 강과 너무 가깝지도 멀리도 않는 곳이었는데
제 기억의 어느 부분은 강이 차지하고 있나 봅니다.
먼 하류를 내려다 보면서 내 신발과 오줌발과 눈물을 훔쳐간 그 물줄기가
어디로 가고 있을까 하고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강일까요
제 강이 시인님의 강과 어느 지점에서 다시 만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은 글에 강물이 출렁이고 있습니다.

이현준 2013-04-07 00:11:06
시인님께서 언급하신 立處皆眞 꽃자리...공초선생과 막역하게 교우하셨던 시인 구상 선생께서 발표하신 시가 생각납니다.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앉은자리가 꽃자리니라 시방 네가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 어떤 경우에도 꽃자리에 있음을...

이현준 2013-04-07 00:02:41
'강가에서'라는 제목을 보는 순간 성서에 있는 야곱의 금희환향할 때 강가에 서서 고향땅을 바라보며 회상하는 얘기가 떠 올랐습니다. 강가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있슴을 압니다. 어릴적, 어른이 되어서 다시 찾은 그 강가, 눈을 감고 회상하는 그 강가...바다와는 다른 잔잔한 회상의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봄에 강가를 생각하게 되었으니 행복합니다.

진(眞) 2013-04-05 09:31:07
지천에 흩어진 봄의 기운들이 마구 흘러듭니다.
그리고 찬란하게 아름다운봄바람이 마구 흔들어댑니다
'내가 선자리가 꽃자리'라며 흔들림을 바로 잡습니다...^=^
시인님 좋은 글 마음에 안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