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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민주화가 필요한 또 하나 이유
경제민주화가 필요한 또 하나 이유
  • 김은일
  • 승인 2013.03.25 19: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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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은 일 변호사
 얼마 전 거제지역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던 30대 초반의 한 청년사장이 경영난에 시달리다 연탄불을 피워 자살을 했다는 가슴 아픈 기사를 접했는데 그 내용은 이렇다.

 1997년 외환위기 때 이 청년의 아버지는 부도를 맞아 빚과 빚쟁이들만 남겨두고 집을 떠났다. 당시 중학교 3학년이던 청년은 편의점, PC방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취업이 확실하다는 3년제 거제대 조선과에 입학했다. 졸업 후 삼성중공업에 비정규직으로 들어가 1년간 일하다 삼성중공업 협력업체에 계약직으로 다시 들어갔지만 2년 뒤 회사가 200명을 정리해고한다고 하자 스스로 회사를 나왔다. 이후 재취업의 문을 두드려 보았으나 번번이 낙방.

 “처음 3개월은 순이익 350만 원, 그 다음부터는 월 600만 원 보장합니다. 사모님 안 하시면 제가 하렵니다” 청년과 어머니는 편의점 본사 직원의 말에 마음을 굳히고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시작한 편의점. 그러나 청년의 희망이 걱정으로 바뀌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본사가 약속했던 순이익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다, 일매출 70만 원 기준 월 2천만 원을 넘게 팔아도 본사 송금 35%에 인건비, 전기세 등을 제하면 적자는 나날이 늘어만 갔다. 심야 손님은 없는 지역이었으나 24시간 운영이 계약상 강제내용이라 쉬지도 못하고 본인이 하루 15시간 근무할 수밖에 없었고, 일매출 송금제 때문에 사채까지 빌려가며 본사에 송금을 해야 했다. 편의점 운영이 악화돼 가고 있었지만 5년 계약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그만두면 본사에 위약금 5천만 원을 지급해야 하고 창업비용을 모두 날리게 되기 때문에 그만 둘 수도 없었다. 하지만 본사는 사채를 빌려서라도 일매출 송금을 한 번도 어긴 적이 없는 이 청년에게 재고손실 100만 원이 발생했다는 이유로 계약해지 예고통보를 해 버렸다. 청년은 재고 물품이 쌓인 냉장고 뒤편에서 번개탄을 피우고, 수면제와 팔던 소주를 섞어 마시고 한 때는 그의 희망이었던 편의점에서 짧지만 고단했던 삶을 마감하고 말았다.

 하루에도 별별 뉴스 속 안타까운 죽음을 접하지만, 이 청년의 자살은 정말 가슴을 메이게 한다. 그 이유는 이 청년의 죽음에 청년실업, 비정규직 문제, 대기업들의 횡포와 불공정한 거래관행 등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이 집약돼 있고, 이를 제 때에 시정하지 못한 우리 사회가 이 청년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생각 때문이다.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상황에서(이 법은 가맹사업의 공정한 거래질서를 확립하고 가맹본부와 가맹점사업자가 대등한 지위에서 상호보완적으로 균형있게 발전하도록 함으로써 소비자 복지의 증진과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입법취지를 가지고 있다), 그 동안 현대판 지주와 소작농관계라는 가맹계약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법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줄기차게 있어 왔음에도 정부는 이를 방치했다. 결국 뒤늦게 국회가 나서 3~4개의 법률개정안을 발의해 논의 중에 있으나, 이러한 제도개선의 일차적 책임이 있는 정부가 그 동안 손을 놓고 있어 제도개선이 늦어진 것 같아 씁쓸하다.

 현재 국회에 계류돼 있는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보면, 가맹점 계약시 24시간 의무영업 규정을 두지 못하도록 하고, 계약 중도해지시 본사에 과도한 위약금을 부담토록 하는 규정도 금지토록 하고 있다. 또한 월 수익 얼마 보장 등의 허위ㆍ과장 광고시 허위 정보로 인해 가맹점주가 입은 피해의 3배를 가맹본부가 보상토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도입하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들이 모두 최종 입법화될 수 있을지는 국회 논의를 더 지켜봐야 하겠으나, 여야간에 별다른 이견은 없어 조만간 통과가 유력시 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내용의 법률개정이 조금만 더 일찍 이루어졌더라면 한 사람의 안타까운 생명을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뒤늦은 아쉬움이 들지만, 최소한 법안이 통과되기 전에 쓰러지는 생명은 더 이상 없도록 여야는 최대한 빨리 개정안이 통과되도록 의견을 모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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